최종 : 17/12/16 22:36



[今天歷史-10월9일] 北 핵실험, 印尼 중과 단교

화궈펑 당 주석에 선출, 사하로프 노벨평화상 수상, 훈민정음 반포, 아웅산 테러, 조명록 방미

2006년 10월 9일 북한이 지하 핵실험을 실시했다. 북한의 첫 핵 실험으로 이로써 북한은 기존 핵 보유국 및 국제 사회의 핵보유국 인정 여부와는 별도로 유엔 안보리 상임 이사국 5개국과 인도, 파키스탄 그리고 이스라엘에 이은 사실상의 9 번째 핵무기 보유 국가가 되었다.

북한의 핵실험은 유엔 제재결의안 통과 등 국제적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북한은 2009년 5월 25일, 2013년 2월 12일, 2016년 1월 6일과2016년 10월 9일 그리고 2017년 9월 3일에 각각 3차, 4차 , 5차 그리고 6차 지하 핵 실험을 단행햇다.
북한이 이처럼 국제적 반발에도 불구 핵 실험을 계속하는 것은 미국과의 전략적 접촉 카드로 활용함과 아울러 핵 무기를 실전화하기 위한 투 트랩 전략에서이다. 이 때문에 핵실험에 앞서 궁극적으로 미국 본토에 도달할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겨냥한 발사 실험을 하고 잇다.

북한의 핵 실험은전략적 효과를 최대한 거두기 위해 실시 일자를 선전 효과 극대화에 맞추어 정해왔던 것으로 추정된다.

1차 핵실험은 중국의 국경절 기간이었고 2차 핵실험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투신 자살한 이틀 뒤로 ㅣ미 설정한 전략적 목표에 따라 2차 남북 정상회담 상대의 비극적 죽음이라는 돌발 변수를 고려하지 않고 감행햇다. 그리고 3차 핵 실험은 박근해 대통령 당선자가 대통령 취임식을 갖기 13일 전이었다

4차 핵 실험은 미국에서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해의 벽두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전략적 인내 에 따른 무시 트랩에서 벗어나보려는 도발적 승부수로 해석된다 북한은 이러한 승부수가 뜻 한 바 대로 먹혀 들지 않자 같은 해 9월 9일 북한 정권 수립 68 주년을 맞아 제5차 핵 실험을 감행했다.

6차 핵 실험은 2017년 9월 3일 실시됏는데 9월 9일을 예상한 모두의 의표를 찌르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대북 강경 성향의 도널드 트럼프대통령이 들어서면서 날로 강화 되는 북한에 대한 조이기에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은 핵 보유를 인정한 가운데 궁극적으로 주한 미군 철수를 실현하기 위한 징검다리로서 종전 협정을 평화 협정으로 전환하기 위한 북미 양자 회담을 목표로 강대강 위협 도발을 계속하고 잇는 것이다.

북한 핵 실험은 북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 차례 그리고 김정은 제1 국방위원장( 2016년 5월 9일 노동당 제1비서를 폐지하고 노동당 위원장이됨. 같은 해 6월 29일에는 최고 인민회의에서 국방위원회를 폐지하고 국무위원회를 신설하여 국방 제1위원장을 대신하여 국무위원장이 되었다)이 4차례 실시햇다. 한국 입장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서 1 차례, 이명박 정부 아래에서 2차례 박근혜 정부 아래ㅔ서 두 차례 그리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한 차례 실시됐다.

1967년 = 인도네시아 정부가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공식 단절했다.

친 중국 정책을 취하던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정권 하의 공산당 세력은 1965년 자신들과 함께 수카르노 정권의 떠받히고 있던 군부의 최고지도자들을 일거에 살해하고 정권을 장악하려는 이른바 ‘9월 30일 사건’을 일으켰으나 실패했다.

육군 전략예비군 사령관 수하르토는 ‘9월 30일 사건’으로 부상당한 A.H. 나수티온 국방장관을 대신하여 육군을 임시 지휘하며 공산당 세력에 회복할 수 없는 심대한 타격을 가하였다.

당시 인도네시아 공산당 지도자들 중 상당수가 화교였으며 중국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었다.

1966년 3월 수카르노로부터 사실상 전권을 이어받는 수하르토는 인도네시아 공산당을 지원했다는 이유를 들어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한 것이다.

양국 외교관계는 1990년 8월 6일 리펑(李鵬) 중국 총리의 인도네시아 방문과 함께 회복되었다.리펑의 인도네시아 방문 기간인 8일 중국은 인도네시아 발리 섬에서 인도네시아가 지도국인 아세안(ASEAN)의 기본원칙인 ‘동남아 우호협력조약(TAC)’에 서명하고 아세안과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전략적 동반자 선언’을 발표했다.

수하르토의 인도네시아가 중국과 외교를 단절한지 만 36년을 하루 앞두고 중국과 인도네시아는 동반자 관계로 관계를 격상시킨 셈이다.

1976년 = 화궈펑(華國鋒) 중국 공산당 주석에 선출됨.

세계사 속의 오늘

소련의 핵물리학자 안드레이 사하로프가 소련인으로는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고(1975), 만국우편연합(UPU)이 스위스 베른에서 발족했다(1874).

우리나라 역사 속의 오늘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했고(1446), 한글학회가 ‘우리말 큰사전’(전 6권)을 30년만에 완간했다(1957).

전두환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을 수행 중이던 서석준 부총리 등 17명이 북한 공작원에 의한 버마(현 미얀마) 아웅산 묘소 폭탄테러로 순국했다(1983).

희생자는 서석준 부총리외에 이범석 외무부장관, 김동휘 상공부장관, 서상철 동자부장관, 함병춘 대통령비서실장, 이계철 주버마대사, 김재익 경제수석비서관, 하동선
기획단장, 이기욱 재무차관, 강인희 농수산차관, 김용한 과기처차관, 심상우 의원, 민병석 주치의, 이재관 비서관, 이중현 동아일보 기자, 한경희 경호원, 정태진 경호원 등이다.

버마 당국은 이 사건이 북한 김정일의 친필지령을 받은 북한군 정찰국 특공대 소속 진모(某(후에 김진수로 이름이 밝혀짐)) 소좌, 강민철대위, 신기철대위 등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수사결과를 밝혔다.
이들은 미얀마 주재 북한 대사관 정무 담당 참사관 전창휘의 집에 은거한 후, 전두환 대통령 일행이 버마에 도착하기 하루 전 새벽에 아웅산 묘소로 잠입하여 지붕에 2개의 폭탄을
설치한 것으로 밝혀졌다.

버마 정부는 북한과단교하고 버마 주재 북한 대사관원들에 대해 출국 명령을 내렸다.

테러직후 북한 공작원 중 신기철은 현장 부근에서 사살됐고 붙잡힌 나머지 2명은 이해 12월 9일 양곤지구 인민법원 제 8특별 재판부에서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김진수는 은 1986년 사형이 집행됏고 강민철은 복역하다 2008년 5월 18일 중증 간 질환으로 사망했다.

아웅산 테러 직후 버마 외에 코스타리카·코모로·서사모아 등 3개국이 북한과의 외교를 단절하였으며, 미국·일본 등 세계 69개국이 대북한 규탄성명을 발표했다.

버마는 미얀마로 국명이 바뀌고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간남북간 정상회담이 열린 훨씬 뒤인 2007년 4월 북한과의 외교관계를 복원햇다.

일본헌병이 조선이 경찰권을 장악했고(1907) 미군정청이 치안유지법 등 12개 일제악법을 폐지했다(1945).

유엔 사령관 맥아더 장군이 퇴각하는 북한군에게 항복을 요구했고(1950), 북한의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미국을 방문했다(2000).

내무부가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조직원 검거를 발표했다(1979).

2017/10/09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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