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7/10/21 00:10



[今天歷史-10월12일]북중 국경밀약, 청 대만부 성 승격

신사군 창설, 한-대만 우호조약 체결, 대만본섬과 진먼-마쭈 섬과 일반 직통 전화 허용, 콜럼버스 신대륙 발견, 다나카 일본 전 총리 실형 선고, 발리 섬 테러, 고종 대한제국 황제로 즉위, 유관순 열사 순국,학제 6-3-3-4제로 개편, 한국 공군 창설, 대통령 직선제 통과, 한국 첫 시험관 아기 성공

1962년 10월 12일 북한과 중국이 평양에서 조중변계조약(朝中邊界條約)을 맺었다. 이에 앞서 북한의 김일성이 중국을 비밀리에 방문, 협상을 가졌으며 서명은 평양을 방문한 저우언라이(周恩來)총리와 김일성이 했다. 이 조약은 1964년 3월 20일부터 정식 발효되었다.

북한과 중국 양국은 현재까지도 이 조약을 유엔에 등록하지 않는 등 조약의 구체적 내용은 완전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대체적 내용은 양국 간의 경계를 압록강∼백두산 천지∼두만강으로 하고 백두산과 천지를 양분했으며 간도(間島)는 중국의 관할로 한다는 것이다. 또한 강의 수량에 따라 섬이 되기도 하고 물에 잠기기도 하는 모래톱까지 포함, 압록강과 두만강의 하중도(河中島 : 강 가운데의 섬)를 나누어 가졌다.

이중 압록강의 경우 205개의 하중도(항시 수면 위에 모습을 드러내는 섬은 40여 개) 중 북한이 127개 중국이 78개를 나눠 가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중국에서 발간된 압록강 지도에 따르면 가장 큰 섬인 위화도(12.27km²)와 두 번째로 큰 섬인 황금평(11.45km²)은 물론 다지도(9.55km²) 구리도(6.6km²) 우적도(4.1km²) 유초도(2.82km²)등 압록강 상의 큰 섬들은 모두 북한 땅이다.

현재 우적도는 퇴적작용으로 아예 중국 쪽에 붙어버려 지금은 사실 섬이라고 할 수도 없고, 황금평도 거의 중국 쪽에 붙어 있다. 그러나 두 섬 모두 북한이 영유권을 가지고 있다.

중국과 북한은 2011년 황금평에 양국 공동으로경제 특구를 개발하기로합의햇다고 발표했다.
북한이 토지를 중국은 자본과 기술을 제공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일성이 한중 국경선과 관련 이와 같은 조약을 체결한 것은 한국전쟁 당시 중국의 지원군 파병에 대한 보답을 한다는 명목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가 터졌을 때 이 조약이 주목을 받았는데 백두산 일부와 간도를 넘겨준 이 조약을 통일한국은 승계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밀약이라 하더라도 체결 당사국간엔 법적인 구속력을 갖고 있으므로 통일 한국이 이 조약을 승계하면 압록강∼백두산 천지∼두만강 국경선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하지만 통일 한국이 조약 승계를 거부하면 다르다. 우선 유엔에 등록되지 않은 조약은 제3국에 대한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

1978년 ‘조약에 관련된 국가 상속에 관한 빈 협약’은 국경의안정성 보장을 위해 자동 상속의 형식을 취하였지만 이 역시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불평등 조약, 강박에 의한 조약, 보호국의 권한 외 행위에 의해 체결된 조약과 같이 무효나 종료 사유가 있으면 조약의 상속이 인정되지 않는다.

[동북공정] 북-중 국경밀약에 관한 2000년10월16일자 중앙 기사

1937년= 신사군(新四軍)의 지도부가 임명됐다.

일본군이 상하이(上海)를 함락하고 난징(南京)을 위협하자 국민정부는 중국 공산당과 남부지역의 홍군 게릴라 부대로 1개 군을 창설하기로 합의하였다. 이들 공산당 게릴라들은 공산당의 주력 부대가 장정(長征)으로 서부 지역으로 옮겨간 뒤 각지에 흩어져 활동 중이었다.

국민정부 군사위원회는 1937년 10월 12일 남부 8개성 13개 지구에서 활동 중인 홍군 유격대를 국민혁명군 신편 제4군(新編 第四軍, '신사군'으로 약칭)으로 개편하고 군장(軍長)에 예팅(葉挺)을 임명하였다. 지휘관의 임명절차는 2차 국공합작에 따라 중공중앙(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이 건의하면 국민정부 군사위원회가 승인하는 식이었다.

이 같은 절차를 밟아 부군장에 샹잉(項英), 참모장에 장윈이(張雲逸), 정치부 주임에 위안궈핑(袁國平), 정치부 부주임에 덩쯔후이(鄧子恢)가 임명되었다.

한편 공산당은 이와 별도로 중앙군사위 신사군 분회를 설치하고 서기에 샹잉, 부서기 천이(陳毅)를 임명했다. 1938년 초 각지의 유격대를 집결시켜 지대로 나누었으며 총병력은 1만 300명이었다.

[今天歷史-1월 6일] 新四軍

1964년 = 한국과 대만 타이베이(台北)에서 우호조약체결.

1885년 = 청(淸)정부 대만부(台灣府)를 행성(行省)으로 승격.

1989년 = 대만 본 섬과 진먼(金門), 마쭈(馬祖)도 간에 정식으로 전화통화가 이루어지게 함.

세계사 속의 오늘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고(1492), 이탈리아가 통일을 달성했다(1870).

다나카 가꾸에이(田中角榮) 전총리가 록히드 사건으로 도쿄(東京)지방법원에 의해 4년의 유기징역형을 선고 받았고(1983), 인도네시아 발리 나이트 클럽에서 폭탄테러로 180명이 사망했다(2002).

우리나라 역사 속의 오늘

대한제국이 출범하고 고종 황제가 즉위했다(1897). 유관순(柳寬順)열사가 18세의 나이로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했다(1920).

문교부가 학제를 6.3.3.4제로 개편했고(1948), 대한민국 공군이 창설됐다(1949).

서울의대 연구팀이 한국 최초로 시험관 아기 출산에 성공했고(1985),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1987).

2017/10/12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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