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8/11/19 03:46



[今天歷史-1월22일] 베이징 항복...輕敵必敗, 오판과 내부의 적

1949년 1월 국민정부군의 베이징(당시 국민정부 치하의 베이징은 수도 지위가 아니어서 '베이핑'으로 불렸다) 항복 만 6년 전인 1943년 1월 독일 나치군이 스탈린그라드(현재 명칭은 볼고그라드) 전투에서 패배, 항복했다.

중국 공산군(중공군)의 베이징 점령 1년 10 개월 뒤인 1950년 10월 중공군은 한국전에 개입, 0북진해오던 유엔군과 맞붙어 다음해 1월 38선 이남으로 밀어붙여 서울을 점령했다.

세 전투에서 진 쪽은 상대방을 가볍게 봤고 전략적으로 심각한 오판을 저질렀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나치 독일군은 소련군을 얕봤고 장제스의 국민당군도 병력과 무 기, 장비 등 군수물자에서 압도적 우위를 과신하고 공산군을 몰아붙였다.

전세가 반전한 위기 상황에서 나치군과 국부군은 치명적 오판을 했다. 포위 당한 뒤 돌파와 퇴각을 해야할 때를 실기했다.

유엔군의 주축인 미국군은 중공군의 개입이 없을 것이라는 치명적 오판을 저질렀다

그러나 미군이 나치군과 국부군과 달랐던 점은 후퇴 기회를 놓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완패와 교착의 차이는 여기서 비롯됐다.

스탈린그라드 도심에 진입한 독일군은 도시 전역을 완전 장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소련군에게 후방의 보급선이 끊기고 포위되고 말았다.

시내에 포위당한 20만 독일군은 포위망을 뚫고 퇴각해야 했다. 파울루스 장군은 이를 요청했으나 히틀러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유엔군은 한반도 북의 서부와 동쪽으로 나뉘어 진군하면서 양측 간 상호 긴밀했어야 할 소통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크리스마스 이전에 전쟁이 완료된다고 낙관하며 동복 등 동계전투 보급품을 반송하기도 했다.

결국 기습당한 유엔군은 서쪽에서는 수도 서울을 내주고 한강 이남으로 후퇴해야 했다. 동부 지역에서 진군한 군대는 흥남에서 선박편으로 부산으로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제스의 국부군에게는 상대방을 경시하고 오판한 공통점 외에 내부의 적을 추가해야 한다.

1차 국공합작 기간 국민당 내부에 침투하고 2차합작 기간 뿌리를 내린 이들 "오열(五列) 분자"에 의해 국민당군 전략은 손바닥 보듯이 공산군 지도부가 파악하고 있었다.

국부군의 베이징 방어 사령관 푸쭤이는 스탈린그라드에 포위당햇을 때 파우루스처럼 약한 후방의 포위망 고리를 뚫고 남쪽으로 후퇴해야 했다.

파울루스는 판단은 제대로 하였으나 히틀러의 반대로 주저앉고 말앗다. 하지만 푸쭤이는 퇴각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군벌 출신인 푸쭤이는 자신의 세력 근거지에서 먼 곳으로 후퇴를 주저하다 결국 포위망에 빠졌고 베이징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하고 만 것이다.

그는 1936년 12월 장제스를 감금하여 궁지에 몰린 공산군을 기사회생하게 하고 2차 국공합작의 전기를 마련한 장쉐량의 군벌주의적 전략 판단을 한 것으로 짐작된다. '오열'은 아니었을지라도 그 역시 국부군에게는 내부의 적이었다 .

원나라 이래 역대 왕조의 수도였으며 불과 20년 전 까지도 수도였던 베이징이 이처럼 허무하게 함락되었기에 스탈린그라드 항복 과 비교할 수 없는 심리적 충격을 주었다.

스탈린그라드에서 독일군은 처절하게 싸웠지만 베이징의 국부군은 저항하지 않았다. 스탈린 그라드 항복 2년 3개월 뒤 나치 독일은 무조건 항복했다. 베이징 함락 1년이 채못되어 국부군은 중국 대륙에서 사라졌다.

적을 가볍게 보다가는 오판을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가장 무서운 적은 내부의 적이다. <스위프트-버크왈드>

湘南폭동, 제정 러시아 피의 일요일 사건, 올브라이트 미국 첫 여성 국무장관 취임

1949년 1월 22일 중국공산당이 베이징(北京)을 지키고 있던 국민정부의 국민당군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냈다.

국민정부가 1929년 7월 6일 수도를 난징(南京)으로 정한 뒤 베이핑(北平)으로 불리웠던 베이징은 공산군의 1개월여 간에 걸친 포위공격을 받은 끝에 국민당군 방어 총사령관인 푸쭤이(傅作義) 가 공산군에 항복한 것이다.

푸쭤이의 투항에 따라 31일 공산군의 베이징 무혈입성이 이루어졌으며 내전의 3대전투 중 마지막인 핑진전투(平津戰役)가 끝을 맺게 되었다.

패장 푸쭤이는 항복 한 달 뒤인 이해 2월 21일 공산군 총사령부가 있던 시바이포(西柏坡)로 가서 마오쩌둥(毛澤東)을 만났다.

마오는 반나절 동안 접견에서 그가 저항을 포기하고 항복, 베이징을 보전한 사실을 치하했다. 푸쭤이는 반나절 동안 단 한 마디만 했다고 한다. “내가 죄를 지었다(我有罪)”라고.

푸쭤이가 항복한 이날은 주더(朱德)와 천이(陳毅)가 이끄는 부대가 1928년 후난성 남부에서 폭동을 일으킨 지 21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중국공산당은 이를 ‘상남(湘南 : 샹난 기의(湘南起義)’로 부른다.

1927년 8월 1일 ‘난창 폭동(南昌起義)’에 참가했던 주더-천이 군은 이 폭동 후인 3월 중순 ‘상남공농민주정부’를 수립했으나 3월 말에 군벌군의 반격을 받고 패퇴하였다. 결국 주더-천이 군은 마오쩌둥(毛澤東) 부대가 있는 징강산(井岡山)으로 이동, 4월에 마오 군과 합류하였다.

양 부대는 중국 공농홍군 제4군으로 재편되어 마오가 군사위 서기 겸 당 대표를, 주더가 군장(軍長), 즉 군사령관을 맡았다. 총병력은 1만명 내외였다. 이 군대가 훗날 중국 공산군의 주력으로 성장했다.

세계사 속의 오늘

러시아 페테르스부르크(현 상페테르부르크)르에서 피의 일요일 사건이 발생했다(1905).

러시아 정교회의 게오르기 가폰 신부(그는 황제와 노동자들 간의 타협을 추구한 인물로 이 사건 후 외국에 망명했다가 귀국한 뒤 1907년 사회 혁명당 인사에 의해 비밀경찰 밀정으로 간주되어 암살당했다)가 이끄는 노동자, 농민 시위대 10여 만 명은 니콜라이 2세의 초상화를 앞세우고 성가를 부르며 황제가 머무르고 있던 동궁(冬宮: 겨울 궁전)으로 행진했다.

잇단 패전을 겪고 있는 러일 전쟁을 조속히 끝내 줄 것을 요청하는 청원서를 제출하기 위해서였다.

동궁을 경비하고 있던 러시아 군경은 시위대에 밀리자 발포를 했고 그 결과 1,000명의 사망자를 포함, 4,6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사건은 짜르와 짜르체제에 대한 러시아 민중의 마지막 환상을 앗아갔다. 이로부터 12년 뒤인 1917년 마침내 러시아 제정은 종말을 고하고 만다.

'피의 일요일' 사건은 러일전쟁이 진행되던 때에 일어난 사건이다. 중국 뤼순 항 요새를 지키고 있던 러시아 군대는 이해 1월 초 항복했다.

뤼순 함락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러시아 수도에서 터진 이 사건으로 러시아가 전쟁을 계속할 동력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일본 스파이는 가폰 신부가 이날 시위를 조직하도록 공작을 한 것으로 알려졌고 또한 이 첩자는 러시아 군의 데단히 중요한 비밀문서를 취득, 일본 지휘부에 건넴으로써 러일전쟁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하엿다.

매들린 올브라이트가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에 취임했다(1997).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은 앞서 1996년 12월 5일 올브라이트를 국무장관에 지명했다.

올브라이트 이후 2018년 현재까지 5명의 국무장관이 뒤를 이었는데 이중 2명이 여성일 정도로 미국에서 임명직 최고위 공직 직책인 국무장관에 대한 문은 여성에게 활짝 열려 있는 셈이다.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행정부 2기에서 콩돌리자 라이스가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 1기에서 힐러리로뎀 클린턴이 각각 2번째. 3번째 여성 국무장관이 됐다.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취임 10년 뒤인 2007년 1월 20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부인인 힐러리가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기 위해 출마를 선언했다.

당시 상원의원이던 힐러리는 “나는 이기기 위해 뛰어 들었다(I'm in to win)"이라고 말했다.힐러리는 그렇지만 2008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에게 패배, 꿈의 실현을 뒤로 미루어야 했다.

힐러리는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되었으나 11월 실시된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에게 예상 밖으로 패배, 미국 정치 세계에서는 적어도 댗통령 직에 관해서는 유리천정이 여전히 견고함을 보여줬다.

2018/01/22 13:19


경제| IT | 사회 | 정치 | 양안 | 문화 | 대만 | 홍콩 | 한중Biz | 한반도 | 인물동정

 
Copyright 2000 ChinaWatc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