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8/11/15 17:18



[今天歷史-1월23일]푸에블로 피랍...‘평양 모란’ 신드롬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을 국빈 방문한 지난해 12월 13일은 일본 침략군이 당시 중국 수도 난징에서 대학살을 벌인지 80주년 기념일이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베이징을 비우고 기념식 참석을 위해 난징으로 갔다.그러나 기념식에서 국가주석의 치사는 없었다.

난징대학살 80주년 기념행사를 주시하였을 일본 정부에게는 장광설보다도 강한 임팩트를 주었을 것이다.

베이징의 리커창 총리는 "베이징을 떠나 있다"라는 '새빨간 공개 거짓말'을 하고 국빈 부부가 남의 집에 도착한 첫날 저녁 '혼밥'을 먹도로 만들었다.

한국 새 대통령의 취임 첫 방중이자 국빈 방문이 시작된 날과 각골난망(刻骨難忘)의 치욕적인 기념일이 겹친날 중국 최고지도부는 '친구가 먼곳에서 찾아오니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보다는 치욕을 '뼈에 새겨 잊지 않는다'는 자세에 무게를 실었다..

미국은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침몰한 전함 아리조나호를 침몰한 상태대로 진주만 해저 바닥에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진주만을 잊지말자"는 선언은 미국과 일본이 세계에서 미국과 영국 못지 않은 강고한 동맹 관계를 이룩하고 있는 이 시점에도 견지되고 있다.

수심이 깊지 않은 진주만 해안 바닷 속에 잠겨있는 아리조나 전함의 선체는 하늘에서 보면 그 선박 형태 그대로 알아 볼 수 있을 정도이다.

아리조나호 침몰지 부근에 세워진 진주만 기념관은 매년 100만 명이 찾고 있다.

필자가 신문사 재직하던 1991년에 진주만 기습 50주년 특집기사를 준비하던 중 침몰 한 상태 그대로 보존한 아리조나호의 항공 촬영 사진을 접하게 되었다.

당시는 일본이 경제 면에서 미국을 추월할 기세등등한 시기여서미일 관계의 갑을 관계 역전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착시 현상이 지배적인 때였다.

특집기사가 1면 머리에 올려지면서 아리조나호 항공 촬영 사진은 머릿기사에 붙여 크게 게재됐다.

미국의 과거 기억 방법이 모두에게 새삼 눈비비며 다시 바라 보게 한 사진이었다.

올해 1월 21일는 북한 124군 부대의 청와대 기습 도발 사건이 벌어진 지 5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북한 현송월 모란봉 악단 단장이 방문한 날이었다.

평창 올림픽 공연 행사 사전 답사 명목으로 온 이 '북녀(北女)'에 '남남(南男)'은 사죽을 못쓰는 자세였다. 방송은 하루종일 도배됐고 1.21 사태는 묻혀졌다. 아니 지워졋다.

북한 체제선전 요원은 대박을 터트렷다. 문재인 정부가 끌어주고 남의 방송들이 밀어주는 가운데 말이다.

현송월은 하루 전 방문하겠다는 당초의 약속을 중단과 번복을 통해 남측을 초조하게 만들어 분위기를 고조시킨 뒤 1월 21일에 내려왔다.

2000년 6월 15일에 남북 공동선언이 발표됐는데 그날은 바로 1 년 전 북한의 처참한 패배로 끝난 1차 연평해전이 일어난 날이었다.

1차 연평해전은 1주년뿐만 아니라 6.15 기념식으로 인해 10년 이상 망각이 강요됐다.

북한 요구로 김대중 대통령의 방문 일자가 하루 늦춰진 점을 상기하면 현송월의 방남 지연도 의도적 인상이 짙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가미가제 공격보다 미군의 사기를 더 크게 떨어트렸던 것은 '도쿄 로즈'의 선전 방송이었다.

'평양 모란'의 선전 효과는 '도쿄 로즈'를 연상하게 한다.

태평양 전쟁 뒤 도쿄 로즈는 단죄됐다. 당사자인 일본계 미국인에 대해 죄를 물을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사면에는 인색했다.

그의 사면은 냉전이 끝난 뒤에서야 이루어졌다.

미국은 'Forgive' 보다 'not Forget'에 방점을 찍는다.

23일은 미국에 치욕을 안긴 푸에블로호 사건 50년이 된
날이다.

'평양 모란'이 남쪽 청와대를 비롯 곳곳에서 만개였는데 워싱턴에서는 어떨까. <스위프트-버크왈드>


장쩌민 4명에 상장 계급장 수여

1996년 1월 23일 장쩌민(江澤民) 중앙군사위 주석이 참석한 가운데 저우쯔위(周子玉) 등 4명에 대한 상장(上將) 계급 수여식이 거행되었다

상장은 현재 인민해방군의 최고 계급으로 쓰리스타이지만 우리의 대장에 해당된다.(중국 장성 계급에는 준장 계급이 없이 소장, 중장, 상장. 대장, 원수 계급이 있으나 대장과 원수의 계급은 현재 부여되고 있지 않다.)

마오쩌둥(毛澤東). 덩샤오핑(鄧小平) 등 전임 군사위 주석과는 달리 군 경력이 없는 장쩌민이 군사위 주석을 맡은 이후 당에 대한 군의 통제를 상징하기 위한 이벤트로 상장 수여식을 공개해 오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도 2012년 11월 당 총서기와 함게 군사위 주석 직에 오른 뒤 4차례에 걸쳐 21명이 상장 계급장을 달았다. 2012년 말 1명, 2013년 6명, 2014년 4명, 2015년 10명이다.

시진핑,
측근 대거 상장 승진...군 기반 강화
2015/08/01 22:38.

중국 중앙군사위, 치젠궈 등 4명 상장 승진 2014/07/12 04:05

시진핑, 취임 후 2번째로 상장 6명 승진 인사
2013/07/31 23:14

장쩌민은 2004년 9월 군사위 주석 직을 후진타오(胡錦濤)에게 넘겨 주기 직전인 2004년 6월 20일 15명에게 상장을 부여했다.

이는 그가 1993년 3월 국가주석을 겸임, 당정군의 최고 직위를 모두 차지한 지 두 번째로 많은 숫자이다.

가장 많은 상장 수여는 국가주석 겸임 1년 3개월 뒤인 1994년 6월 8일로 19명을 승진시켰다.

상장(上將) 승진 중국 軍警장성 15명 명단 2004/06/2112:01

장쩌민이 2002년 6월 7명의 상장을 승진시켰을 때 당시 이를 전한 CNN은 장쩌민이 1989년 11월 덩샤오핑으로부터 군사위 주석 직을 인계받은 후 상장에 승진한 장성의 수가 100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CNN은 이 때문에 장쩌민이 군사위 주석을 내놓더라도 상당기간 영향력을 계속 행사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군 喬淸晨등 7명 상장 승진 2002/06/03 22:05

부패와 비리로 당적이 박탈되어 조사를 밪던중 2015년 3월 15일 방광암으로 사망한 쉬차이허우(徐才厚) 전 중앙군사위 부주석과 역시 비리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궈보슝(郭伯雄) 전 중앙군사위 부주석과 함께 1998년 9월 29일 장쩌민에 의해 상장 계급이 부여됐다.

이들은 장쩌민이 중앙군사위 주석에서 물러난 이후 이를 인계한 후진타오 밑에서 중앙군사위 부주석으로서 '좌(左)보슝 우(右)차이허우' 역할을 하며 중국 군부를 실질적으로 이끌었다.

마찬가지로 군 경력이 없는 후진타오(胡錦濤)도 장쩌민으로부터 군사위 주석 직을 이어받은 직후인2004년 9월 25일 장딩파(張定發) 해군 사령원과 징즈위안(靖志遠) 제2포병 사령원 등 2명을 상장에 승진시켰다.

장딩파와 징즈위안은 앞서 후진타오가 장쩌민으로부터 군사위 주석직을 물려받은 9월 19일 공군 사령원 차오칭천(喬淸晨)과 함께 군사부문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당 중앙군사위에 진입했다.

이중 장딩파는 지병으로 2006년 8월 해군 사령원 직에서 물러났으며 이해 12월 12일 63세로 사망했다.

후진타오는 2006년 6월 24일 류웅즈(劉永治) 인민해방군 정치부 부주임 등 10명을 상장에 승진시키고 승진식을 거행했다.

후진타오, 10명 상장 승진...군부 장악 2006/06/25 22:09

중국 공산화 이전의 홍군과 인민해방군에서는 계급제가 없었다. 군의 위계질서는 담당한 직책에 의해서 형성되었다.

인민해방군의 계급제는 1955년 9월 23일 제1기 전인대 상무위원회 제22차 회의에서‘군관복역조례(軍官服役條例)’가 통과되면서 도입됐다.

9월 26일 마오쩌둥(毛澤東)이 주더(朱德) 등 10명에게 원수 계급을,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쑤위(粟裕) 등 10명에게 대장 계급을 수여했다.

이후 국방부 및 각 군구 별로 계급 수여식이 거행되어 총 53만 1000명에 대해 소위 이상의 계급이 수여되었다. 소장 이상의 장성은 1040명으로 원수와 대장이 각각 10명이었으며 상장 55명, 중장 175명, 소장 800명이었다.

인민해방군의 계급제도는 문화대혁명을 한해 앞둔 1965년 5월 22일 제3기 전인대 상무위원회 제 9차회의 결정에 의해 폐지되었다. 이때까지 소장 이상 장성급 계급 부여 누계는 1614명이었다.

계급제는 1982년 12월 4일 제5기 전인대 제5차회의가 통과시킨 헌법 규정에 의해 회복되었다.

이후 계급제 도입을 위한 준비과정을 거쳐 1988년 7월 1일 제 7기 전인대 상무위원회 제 2차회의에서 ‘중국 인민해방군 계급조례(中國人民解放軍軍衡條例)’가 통과되었다.

이에 따르면 장교의 경우, 장성 4급, 영관(校官) 4급, 위관 3급 등 총 3등 11급의 체제였다.

새로운 조례에 따라 1988년 9월 14일 훙쉐즈(洪學智) 등 17명에게 상장 계급이 수여되었고 이해 10월 1일 전군에 걸쳐 계급수여식이 거행되었다.

당시 위관급 40만 500명, 영관급 18만 명, 장성급 1452명에게 계급이 수여되었다.

장쩌민이 1993년 이후부터 당 중앙군사위 주석 직을 후진타오에게 넘겨주기 3개월 전인 2004년 6월까지 취한 주요 상장 계급 수여는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다.

- 1993년 6월 7일 장완녠(張萬年) 등 6인 ;

- 1994년 6월 8일 쉬후이쯔(徐惠滋) 등 19명 ;

- 1996년 1월 23일 저우쯔위(周子玉) 등 4명 ;

- 1998년 3월 27일 차오강환(曹剛川) 등 9명 ;

- 1998년 9월 29일 궈보슝(郭伯雄), 쉬차이허우(徐才厚) 등 2명

-2002년 6월 2일 차오칭천(喬淸晨) 공군사령원 등 7명
-2004년 6월 20일 유시구이(由喜貴) 등 15명

후진타오가 군사위 주석에 취임한 2004년 9월 19일 이후 상장 계급 수여는 다음과 같다. 2007년 이후부터는 매년 7월 한 차례씩 정기적으로 상장 수여가 이루어져 왔다.

- 2004년 9월 25일 장딩파(張定發) 등 2명

- 2006년 류융즈(劉永治) 등 10명

- 2007년 7월 해군 사령원 우성리(吳勝利), 부총참모장 쉬지량(許其亮)과 총후군부 정치위원 쑨다파(孫大發) 등 3명

- 2008년 7월 총정치부 류전치(劉振起), 선양(瀋陽) 군구 정치위원 황셴중(黃獻中) , 지난(濟南) 군구 사령원 판창룽(範長龍) 등 3명

- 2009년 7월 마샤오톈(馬曉天) 부총참모장, 군사과학원 류위안(劉源) 정치위원과 청두(成都) 군구 장하이양(張海陽) 정치위원 등 3명

- 2010년 7월 장친성(章沁生) 부총참모장 등 11명

- 2011년 7월 쑨젠궈(孫建國)와 허우수썬(候樹森) 두 총참모부 부총참모장을 비롯한 6명

- 2012년 7월두 진차이(杜金才 60) 총정치부 부주임과 류야저우(劉亞洲 60) 국방대학 정치위원 등 6명

장쩌민이 군사위주석에 오른 1989년 11월 이후 현재(2016년 1월 23일)까지 26년 2개월 여 동안 상장에 오른 장성의 수는 162 명이다.

2014년 2월까지 상장에 오른 148명 중 35명(23,.6 %)이 산둥성 출신이다.

1989년 이래 인민해방군 148명 상장 4분의 1 산둥성 출신
2014/02/25 16:33


한국사 속의 오늘

동해 북한 원산항 인근 공해 상에 있던 미국 정보함 푸에블로 호가 북한 함정에 나포됐다(1968). 북한 124군 부대의 청와대 기습 기도 사건이 벌어진지 이틀 후 일이었다.

[Pensees]푸에블로와 미루나무2012/04/07 01:46

2018/01/23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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