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8/05/23 06:22



[今天歷史-1월26일]英 홍콩점령...‘중국夢’과 ‘오딧세이夢’

'서세동점'의 사실상 출발이 아편전쟁 다음해인 1841년 1월에 있은 홍콩 점령이라고 한다면 그 종말은 1997년 7월1일 홍콩 주권의 중국 귀속이다.

십자군 운동의 영광 출발이 예루살렘 점령이고 그 실질적 종말이 쿠르드족 츌신 이슬람 영웅 살라딘에 의한 예루살렘 왕국의 수도 예루살렘 함락이었듯이 서세동점의 시작과 끝에는 홍콩이 있다.

홍콩 주권 귀속 뒤 '굴기 중국', '새로운 중국'의 '시황제'를 꿈꾸는 진핑은 '중국의 꿈'을 꾸고 있다.

그러나 트로이 전쟁이 그리스 함대의 철수로 완전히 끝나지 않았듯 '서세'의 '예루살렘 교두보'를 지켜온 영국이 홍콩에서 떠났지만 동과 서의 대립은 아직 마침표가 찍히지 않았다.

'중국몽'과 가위눌림인 '오딧세이꿈'이 겹쳐져 꿔지는 것이다.

홍콩의 영국 마지막 식민총독 크리스 패튼이 '남겨 놓고 간 '트로이 목마'는 자유와 서구적 민주체제이다.

서방의 과거 악업에 짓눌려 홍콩인에 의해 사장되었던 목마는 불사조처럼 부활하고 있다.

홍콩의 젊은 세대는 목마를 성 안으로 끌어들이려 하는 것이다.
중국이 공산 독재 체제를 유지하려면 할수록 성문을 미는 목마의 힘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스위프트-버크왈드

< 5反운동

1841년 1월 26일 영국군이 아편전쟁 와중에 홍콩을 점령하였다. 영국 군대는 이로부터 156년 5개월 4일뒤인 1997년 6월 30일 철수했다.

[今天歷史-7월 1일] 홍콩 주권 회복, 중국공산당, 대한민국

추억...1997년 홍콩과 덩샤오핑, 그리고 패튼 2004/09/24 05:41

영국은 1833년부터 중국 해안의 도서를 점령할 계획을 세우고 장소를 물색하던 중 1834년 홍콩섬을 주목하게 됐다.

홍콩섬이 전략적, 상업적으로 유리한 입지를 갖고 있다고 판단한 영국은 1840년 아편전쟁을 일으키고 눈독을 들여왔던 홍콩섬을 점령한 것이다. 당시 홍콩은 광둥(廣東)성 신안(新安)현 관할 아래 있었다.

영국은 홍콩을 점령한 이후 반세기에 걸쳐 청나라와 3개의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고 홍콩섬과 주룽(九龍)반도, 그리고 신계(新界) 등 이른바 3개 홍콩지구를 식민지로 만들었다.

첫 번째 불평등 조약은 1842년 8월 29일에 체결된 난징(南京) 조약이다. 이 조약 3조를 통해 홍콩섬이 영국에 할양됐다.

두 번째 불평등 조약은 1860년 10월 24일 체결된 '베이징(北京)조약’이다. 이 조약을 통해 주룽 반도 남쪽 지역이 영국에 할양됐다.

세 번째 불평등 조약은 1898년 6월 9일 체결됐다. 앞서 두 조약이 각각 1차 아편전쟁과 2차 아편전쟁 등 영국과 관련한 전쟁에서 청나라가 패한 데 따라 체결되었으나 세 번째 조약은 일본과의 전쟁(청일전쟁,1894~ 1895) 에서 패한 청의 조정을 압박하여 체결됐다.

또한 이 조약은 전적으로 홍콩 문제와 관련된 것이다. 정식 명칭은 ‘中英展拓香港界址專條’이다.

이 조약에 따라 선전허(深?河) 이남 지역과 주룽반도 제센제(界限街) 이북 지역 및 부근 도서들-이를 신계(新界)로 통칭한다-이 영국에 99년간 조차(租借)됐다. 만기는 1997년 6월 30일로 정했다.

영국이 할양받고 조차한 홍콩 지구의 총면적은 1066㎢ 였다.

중국과 영국은 1984년 신계의 조차가 끝나는 1997년에 홍콩 지구 전체를 중국에 되돌려 주는 것을 내용으로 한 홍콩 문제에 관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결국 중국은 1997년 7월 1일 홍콩 지역에 대한 주권을 회복했다.

1984년 영국 마거릿 대처 총리는‘주권(主權)’과 ‘치권(治權)’의 분리를 내세우며 홍콩에 대한 식민통치를 존속시키려 했지만 중국의 확고한 주권 회복의지를 파악한 뒤 결단을 내린 것이다.

1952년 =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중소도시 지역에서 ‘5반(反)’ 운동 전개를 촉구했다.

‘5반’은 ▲뇌물제공 ▲탈세 ▲국가재산 절취 ▲임금착취 ▲경제정보 절취 등 5개 비리에 대해 반대한다는 것이다.

중공 중앙은 노동자계급, 법을 지키는 자산계급(守法的資産階級)과 기타 시민이 단결하여 불법적인 자산계급에 대해 강력한 투쟁을 전개할 것을 촉구했다.

이는 중국 공산화 이후 갖가지 방법으로 저항하는 자산계급을 축출하기 위한 군중 운동의 성격을 지녔다.

한편 마오쩌둥(毛澤東)은 이에 앞서 1952년 1월 1일 신년사를 통해 당정군민(黨政軍民) 내부의 부패, 낭비, 관료주의를 배격할 것을 촉구했다. 이를 ‘3반(反)’운동이라고 한다.

이 두 가지 군중운동을 ‘3반, 5반 운동’으로 부른다.

시진핑(習近平) 당 총서기 겸 국가 주석이 2012년 집권 이후 강력히 추진하는 반부패 운동에는 마오쩌둥의 3반운동과 5반운동의 그림자가 어린다.


2018/01/26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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