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8/11/15 17:18



[今天歷史-1월30일] 장쩌민 통일방안...하나의 중국, 一中一臺

국공내전 결과로 중국이 중국 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과 대만섬의 중화민국으로 분단된 뒤 양안관계를 규정하는 프레임을 양자 모두 '하나의 중국'으로 견지했다.

그러나 양안은 같은 물리적 목표를 추구하나 상반된 화학적 결과를 지향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즉 공산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 아래 대만 지역 '해방'을 추구했고 중화민국 즉 대만의 반공체제는 같은 원칙 아래 실지 본토 수복을 내세웠다. 같은 프레임 안에 전혀 성질이 다른 것을 채우자는 것이었다.

1949년 분단 된후 반세기 동안 요지부동하게 유지됐던 이 프레임은 21세기로 접어들기 직전 깨어졌다.

대륙의 일당독재 공산당과 대만의 국민당은 여전히 '하나의 중국'을 견지하고 있으나 대만의 민진당은 '두개의 중국'으로 방향을 맞추고 있다.

21세기 들어 두 차례 집권한 민진당은 궁극적으로 독일 민족이 독일과 오스트리아로 분리되어 있듯이, 또한 중국 민족 갈래인 화교가 다수인 싱가포르처럼 대만이 같은 민족의 중국과 별개인 독립국을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대만이 중국 대륙과 문화적으로 정치적으로 한 덩어리 역사였기에 독일, 오스트리아의 경우와 전혀 딴판이다.

싱가포르도 화교가 다수이기는 하지만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완전 절연된 역사 속에서 살아왔기에 대만의 처지와 다르다.

하지만 국공내전 패배 후 대만 섬으로 들어온 대만섬 출신이 아닌 대륙인인 외성인과 대만섬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성인 간 관계가 정복-피지배 관계라는 심리 저변의 인식이 해소되지 않고 있기에 21세기 이전의 프레임으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다.

내성인이 대만 주민의 83% 전후 압도적 다수라는 점도 대만 섬의 원심력이 약화하지 않는 요인이다.

2014년 12월 지방선거와 2016년 1월 대선(총통선거)과 총선에서 민진당이 싹쓸이 압승한 것은 원심력의 파워가 마침내 정점을 넘어간 것이 아니냐는 판단마저 들게 했다.

2015년 11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 대만 총통 간 역사적 양안 수뇌의 회담이 양안간 윈-윈식 경제교류가 날로 활발해지는 상황에서 열렸지만 의미 있는 구심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진시황 사후 초한전에서 초나라의 항우가 패배하고 유방이 승리한 결정적 요인은 항우가 선명하게 '분(分)을 지향했기 때문이다.

유방도 시황제처럼 강력하게 합(合)을 지향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유방은 '합'에 크게 기울어진 상인의 수지타산 쪽이 대세가 되자 이에 따랐고 이 결과 승리했고 결국 천하 대세는 그 방향으로 신속하게 흘렀다.

현재 '하나의 중국'과 '두 개의 중국을 구심력과 원심력의 2변 3각 프레임에서 원심력이 거세어 보이나 장기적으로는 구심력이 크게 증대될 것이다. 스위프트-버크왈드
李宗仁전 국민정부 대리 총통 베이징서 사망, 1차 영일동맹

1995년 1월 30일 장쩌민(江澤民)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대만에 대해 8개 항의 통일방안을 제시했다. 이를 통산‘강팔점(江八點 : 장파디엔)’으로 불리며 이후 중국의 공식적인 통일 방안으로 견지되어 왔다.

장쩌민은 당 중앙위원회 대만사무판공실,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및 대만 민주자치동맹 등의 기관이 공동으로 주최한 신춘 다과회에 참석, 현 단계의 양안관계를 발전시키고 평화통일을 달성한다는 목적 아래 8개 항의 원칙을 천명했다.

장쩌민이 행한 연설의 제목은 '조국통일의 대업의 완성을 촉진하기 위해 계속 분투하자(爲促進祖國統一大業的完成而繼續奮鬪)'이였다.

8개항은 다음과 같다.

1.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하는 것은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기초이며 전제이다;

2. 대만이 외국과 민간 성격의 경제, 문화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에 대해서 중국은 이의를 가지지 않는다;

3. 해협 양안의 평화통일 회담을 진행시키는 것은 중국의 일관된 주장이다;

4. 평화통일 실현에 노력하며 중국인은 중국인과 싸우지 않는다;

5. 21세기 세계경제의 발전에 직면하여 양안간 경제교류 및 합작을 강력히 발전시켜야 한다;

6. 중국의 각 민족 구성원이 창조한 5000년의 찬란한 문화는 항상 전체 중국인의 정신적 유대를 유지하는 것이며 또한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하나의 중요한 기초이다;

7. 2100만 대만동포는 대만출신이건 타 지역 출신 여부를 막론하고 모두 중국인이다. 대만 동포의 생활방식과 주체적인 삶에 대한 소망은 충분히 존중되어야 하며 대만동포의 모든 정당한 권익은 보호되어야 한다;

8, 우리는 대만 당국 지도자가 정당한 신분으로 중국을 방문하는 것을 환영하고 또한 대만 측의 초청을 받고 대만을 방문하는 것을 기대한다.

장쩌민의 통일 방안 제시 10년 뒤인 2005년 3월 4일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겸 총서기가 양안관계 4개원칙을 밝힌 이후 이 것이‘강8점’을 대신하여 중국의 새로운 양안 관계 지도원칙으로 강조되어 왔다.

후진타오의 양안 4원칙은 발표 당시 '4개결불(四個決不)‘원칙으로 명명되었으나 얼마 뒤부터는 '강8점‘을 의식, '호4점(胡四點 : 후쓰디엔)‘으로 불렸다.

4개결불(四個決不)-호4점(胡四點)

중국의 통일 방안은 1978년 12월 덩샤오핑이 집권 한 뒤 무력 통일을 배제하지 않는 가운데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제시함으로써 마오쩌둥의 무력 통일 방안에서 극적인 전환이 이루어졌다.

이후 장쩌민과 후진타오는 덩샤오핑의 통일 방안 기조를 발전, 진화시킨 원칙을 제시햇다.

이들 방안에는 양안 관계의 진전이 반영됐다. 장쩌민 집권 시기에는 반관반민 대표 간의 접촉이, 후진타오 시절에는 대만 집권 민진당의 대만 독립 추진이 노골화하는 배경 아래 야당 처지가 된 국민당과 공산당 대표 간의 역사적 회담이 이루어졌다.(후진타오의 통일 원칙 발표는 국공 3차합작 회담 직전에 이루어졌다).

시진핑도 2015년 11월 7일 싱가포르에서 마잉주 대만 총통과 양안 정상 회담을 갖고 양안 관계의 한 터닝포인트를 마련햇다.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주석과 중화민국 총통 즉 양안 정상이 대좌하기는 1949년 공산 중국이 대륙을 장악하고 국민당의 국민정부가 대만으로 쫓겨온 이래 66년 만의 일이다.

1945년 10월 10일 장제스와 마오쩌둥이 국민당과 공산당의 최고 지도자로 직접 대면하여 쌍십협정을 체결한 때로부터 따지면 70년 1개월을 사흘 앞두고 국민당과 공산당의 정상이 직접 대면한 것이다.

후진타오는 장쩌민의 통일방안 발표 10년 뒤인 2005년 자신의 방안을 제시했고 시진핑도 그로부터 10년 뒤인 2015년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2016년 1월 16일 대만 총통선거와 총선에서 대만 독립을 강령으로 내새운 민진당이 모두 압승함으로써 양안 관계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

아울러 같은 해 11월 치러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예상을 깨고 승리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자 시기인 11월 2일 민진당의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과 전화 회담을 갖고 이어 '타이완 카드'를 중국과의 현안에 연계함으로써 더욱더 상황이 꼬이게 됐다.

1969년=1949년 1월 21일 장제스(蔣介石)가 연이은 국공 내전 패배에 책임을 지고 사임, 잠시 국민정부 총통 직을 물러나 있는 동안 그를 대신하여 임시총통으로 있었던 리쭝런(李宗仁)이 베이징(北京)에서 사망했다. 향년 78세.

총통 직을 내놓고 고향으로 낙향한 뒤에도 여전히 막후에서 실권을 행사한 장제스와 불화하여 1949년 12월 미국으로 떠난 리쭝런은 저우언라이(周恩來)의 대만 통일방안에 대해 지지하는 입장을 표명하였으며 1965년 7월 20일 베이징으로 돌아갔다.

당시 베이징 공항에는 저우언라이가 직접 나와 그를 영접했다.

리쭝런은 국부군의 쑨리런(孫立人)과 공산군의 린뱌오(林彪) 등과 더불어 일본군과의 사단급 규모 이상 대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몇 안되는 중국인 장성 중 한 사람이다.

그는 1938년 일본군과 3월 22일부터 4월 7일까지 벌어진 산둥(山東)성 타이얼좡(台爾庄)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투로 쉬저우(徐州)를 탈취하려던 일본군 정예병력 3만명이 섬멸되었다.

세계사 속의 오늘

`영국과 일본이 1차 영일(英日)동맹을 체결했다(1902).

2018/01/30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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