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8/11/15 17:18



[今天歷史-2월1일]중국 5대 전구... 毛鄧同舟의 軍개혁

“권력은 총구로부터 나온다(槍杆子裡面出政權).당이 총을 지휘하여야지 총이 당을 지휘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黨指揮槍 而決不容許槍指揮黨).”

'존중되지만 따르지는 않는다'는 말처럼 박제된 우상의 존재가 된 마오쩌둥이지만 여전히 따르고 지켜지는 공산 중국의 정치권력 교리 중 하나가 바로 이 같은 마오의 어록이 표현하고 있다

경제 부문에서 물구나무 선 마오쩌둥을 바로 서게한 덩샤오핑이지만 이 교리는 충실히 따르고 지켰다.

하지만 각론에서는 공자의 가르침과 주자학의 지침이 '사이비(似而非)' 사이인 것처럼 전혀 다르기도 하다.

마오는 인해전술이 상징하듯 대병력을 중시한다. 또한 히트앤드런 식의 게릴라 전술과 정신 전력을 강조헸다.

그러나 덩샤오핑은 100만 병력 감군에서 알 수 있듯이 대병력 우선 신화를 타파했다. 또한 현대 무기와 전술을 도입하는데 과감한 자세였다.

시진핑은 마오를 따르고 덩을 쫓았다.

2016년 2월 선포한 시진핑의 군개혁은 마오의 교리인 '권력 총구 창출론'과 '당의 총 지휘론'을 의식했기에 집권 1기 맨마지막으로 이루어졌고 가장 철저한 개혁 조치를 담았다.

시진핑은 마오의 교리에 충실하게 군권을 확고하게 장악했기에 같은 해 10월 18기 6중전회에서 '핵심'으로 지칭되었고 한해 뒤인 2017년 10월 19대에 자신의 이름을 붙인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이 당장에 명기됐다. 이어 오는 3월 전인대에서 헌법에 등재될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2016년 2월 1일 시진핑 브랜드의 군 개편은 내용면에서 거시적으로는 저우언라이의 현대화 노선를 구체화하고 방향 면에서는 덩샤오핑을 쫓으면서 덩을 극복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덩출어람(鄧出於藍)'이다.

기존의 7대 군구를 5대 전구로 바꾸었는데 육군의 압도적 우위인 군구 (軍區)를 육해공군의 통합지휘 체제 전구(戰區)로 질적 변화를 구현했다.

홍군 시절부터 뿌리를 둔 4대총부를 폐지하고 중앙군사위 직속 15개 부문을 새로 설치했다.

'중국 특색의 군부에 대한 문민(文民)통제'로 미국의 확고한 원칙 '시빌리언 컨트롤(Civilian Control)'을 지향한다.

시진핑 군개혁은 마오쩌둥의 핵심 원칙을 지키면서 현대전에 걸맞는 체제로 방향를 겨냥하고 있다.

마오와 덩이 한 배에 탄 것이며 정반합의 프로세스가 작동했다. 시진핑의 '합(合)'에서는 덩샤오핑의 군 감축과 현대화를 발전시켜 이를 극복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마저 실천에 옮긴 것이다.

시진핑의 '중국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군사 면에서 '중국 굴기'가 반드시 필요하며 이를 실현하려면 미국 따라하기가 필수적이라는 인식이 시진핑의 군 개혁에는 담겨 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어느 전투에서나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 百戰不殆).'<스위프트-버크왈드

네덜란드 대만서 축출, WTO 대만 옵서버 자격 부여, 중국 첫신용카드 발행, 광서제 만주족과 한족 통혼금지 해제

2016년 2월 1일>/b> =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겸 중앙군사위 주석이 종전 7대군구를 통폐합한 5대 전구(戰區) 창설을 선언하고 베이징에서 전구 창설대회를 주재했다.

시 주석은 이날 베이징 바이(八一) 대루에서 훈시를 통해 5대 전구의 발족이 "중국꿈과 강국꿈을 실현하기 위한 전략적인 결정이자 통합작전 지휘체제의 구축을 향한 역사적인 진전으로 국가안전을 효과적으로 지키는데 있어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5대 전구는 동부, 남부, 서부, 북부, 중부 전구이며 선양, 베이징, 지난, 난징, 청두, 란저우, 광저우에 두었던 7대 군구는 폐지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전구마다 육해공군 등을 총괄하는 통합작전 지휘체제를 구축했다.

시 주석은 각 전구가 "전략적인 국가안전 위협에 대응하고 평화를 유지하며, 전쟁을 억제하고, 전쟁에서 승리해야 하는 사명을 띠게 됐다"고 역설했다.

아울러 시 주석은 각 전구의 사령원과 정치위원에게 군기를 수여했다.

5대 전구 사령원은 모두 1950년대 생이며 한웨이궈 중부전구 사령원이 1956년생으로 가장 젊다.

병력 30만 추가 감축 등 대대적인 인민해방군 질적, 양적 개혁에 나선 시진핑 지도부는 그간 비대한 지상군을 지휘할 육군 사령부를 설치하고 전략미사일 부대인 제2포병을 로켓군으로 개편하는 동시에 사이버와 우주전략 등을 담당하는 전략지원부대를 신설했다.

또한 시 주석은 종전 총참모부를 비롯한 4대 총부를 해체하고 중앙군사위 직속으로 15개 부문의 기관을 설치했다.

1662년 = 정성공(鄭成功)이 대만을 식민 통치하던 네덜란드인의 항복을 받아냈다. 대만섬 상륙 9개월만이었다.

중국에서는 이를 정성공의 대만 수복으로 부른다. 정성공이 대만을 점령한 것은 샤먼(廈門)과 진먼(金門)을 근거지로 하여서는 반청복명(反淸復明)의 꿈을 실현 할 수 없다고 보고 보다 항구적이며 안전한 근거지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네덜란드의 식민주의자는 1624년 대만을 점령한 뒤 38년 동안 식민통치하고 있었다.

1661년 4월 21일 대선단을 이끌고 대만을 향해 출항한 정성공은 폭풍우를 무릅쓰고 항해를 강행, 4월 29일 대만 해안에 상륙하는데 성공했다.

상륙 뒤 정성공 군대는 네덜란드 식민주의자의 군사 요충이었던 적감성(赤嵌城 :현재의 타이난 台南)을 포위 공격하여 격전 끝에 이를 함락했다.

네덜란드 총독은 세 불리를 깨닫고 원병이 올 시간을 벌기 위해 세공(歲貢)을 바치겠다고 했으나 정성공은 대만을 돌려주는 외에 다른 길이 없다며 식민 세력의 근거지인 대만성(현재 안핑安平)으로 진공하여 이를 포위했다.

9개월에 걸친 포위 공격을 받은 끝에 식량과 무기가 떨어진 네덜란드인은 2월 1일 항복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로부터 5개월 뒤 정성공은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말았다. 대만을 향해 진공하면서 10년 동안 반청 근거지 구축에 힘을 기울이겠다고 밝힌지 불과 1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향년 38세였다.

蘇貞昌 “대만은 해양국가” 2006/01/31 17:21

뤼슈롄 鄭成功 계승 해양입국 주장 2003/11/09 22:27

鄭成功, 그리고 고구려 2004/01/06 01:42

1995년 = 세계무역기구(WTO), 대만에 옵서버 자격 부여.

1987년 = 중국은행 베이징 지점(北京分行)이 중국에서는 처음으로 신용카드를 발행했다. 신용카드의 명칭은 ‘창청(長城)’이었다.

중국은행 베이징지점의 신용카드는 2004년까지 1500만 장이 발행됐다.

중국 신용카드 누계 발급 장수는 2013년 말 시점에 3억9000만장에 달했다.

중국은행업협회가 발표한 '2013년 중국 신용카드 산업 청서'에 따르면 2013년 신규 신용카드는 6100만장으로 누계 신용카드가 2012년 말보다 18.0% 증가했다.

2013년 신용카드 사용액은 13조1000억 위안(약 2201조600억원)으로 30.9%나 늘어났다.

청서는 인터넷과 모바일 결제에서 보안대책을 강화하려면 인터넷 금융부문의 규칙과 제도를 조기에 제정하고, 제3자 결제기관에 대한 감독관리를 엄격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1902년 = 청조 광서제(光緖帝)가 만주족과 한족의 통혼 금지를 해제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2018/02/01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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