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8/02/21 14:37



[今天歷史-2월8일]위폐범 사형...북한 아킬레스건 ‘돈줄’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김여정 카드'를 빼든 것은 올림픽을 둘러싸고 북한의 선전선동과 미국의 반(反) 선전전이 맞붙는 상황에서 회심의 한 수로 보인다.

북한은 '현송월 카드'로 초반에 상당히 재미를 보았으나 한국 내부로부터 득(得) 못지 않은 역풍을 맞은데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방카 카드'로 선전-반선전전 1라운드 막판 카운터 펀치로 완전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기레기'라고도 불리고 때로는 '레밍'로도 불리는 족속들이 '평양 모란'을 언제 봤냐는듯 '워싱턴 로즈'에 쏠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정은 정권은 허겁지겁 재반전을 꾀한다는 기대에서 북한 선전선동 부문의 '최고 존엄'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동복 여동생 김여정 선전선동부 부부장을 내려 보내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의 김여정'에 '평양 이방카'로 맞붙겟다는 심산이다. '워싱턴 로즈'와'평양 백두화'간 '아우라와 호기심 경쟁'이다.

북한은 본게임에 앞서 확실한 선수금을 받아두겠다는 심산이다.

다름아닌 안보리 제재의 여행 금지 대상자 한명을 끼워넣어 대북 국제제재 공조에 대해 상징적이며 의미있는 구멍을 뚫자는 속셈을 드러냈다.

한국 정부는 유엔에 예외 요청을 했다. 북한은 이로써 이 사안에서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

북한은 북미 간 의미 있는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옷깃만 스치면' 북미 간 선전, 반선전의 승자는 자신이라는 계산을 해놓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벡두화 카드'는 사전에 이미 계산한 것이라기 보다는 중국과 러시아의 의미 있는 그리고 효과적인 '돈줄 죄기' 결과로 보인다.

날로 고립되는 북한에 '햇빛' 구실을 해온 러시아가 만경봉호가 남으로 내려간 비슷한 시점에 화물을 적재한 또다른 만경봉호의 러시아 항구 입항을 불허했다. 안보리 제재를 준수하고 있다는 말과 함께.

아울러 북한의 러시아 송출 인력을 출국시키겠다는 발표도 나왔다.

'러시아 너마저도'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을까.

중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북한에 대한 돈줄 죄기에 다양한 방식으로 미국의 이니셔티브에 동참했다.

그중 주목할만한 조치는 가상화페에 대한 철저하고 무자비한 단속이다.

중국은 북한이 한때 외화 가득원으로 활용했던 위조달러에 대한 엄격한 단속으로 결과적으로 북한의 돈줄을 심각한 지경에까지 죄였던 적이 있다.

최근 중국이 선도한 글로벌 가상화페 단속은 물론 중국의 내부 사정에 기인한 바가 절대적이지만 북한의 '타는 목마름'을 적시는 '물방울'이 새는 구멍에 '콘크리트 치기'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판단된다.

일본에서 발생한 가상화폐 NEM 대규모 해킹사건을 일으킨 곳이 북한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한국에서도 비트코인에 대한 해킹 시도가 많이 발생했다는 국정원의 국회 보고가 있었다.

미국도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녘에 난다'는 말처럼 가상화폐 단속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이제 비트코인 등 가상화페를 통한 떼돈 벌기와 돈세탁은 매우 힘들게 됐다. 치명적 피해자는 북한일지 모른다.

2005년 9월 19일 6자회담 9.19 공동성명은 북한의 비핵화와 북한체제 안전보장과 경제지원을 교환한다는 컨셉에 따라 이루어졌느데 이를 장기 '블능화'시킨 계기는 위조달러 추적이 계기가 되었다.

미국 재무부는 위조달러와 돈세탁 등을 통해 조성된 비밀 불법자금의 저장고로 마카오 방코 델타 아시아 은행을 지목하고 북한 계좌 동결조치를 취했다. 이는 김정일 비밀 자금의 구좌였던 것이다.

미국의 김정일 비밀구좌 동결 조치는 2006년 9월이었고 두 달 전 북한의 대량 미사일 발사 실험이 실시됐고 다음달 10월 9일에는 북한이 첫 핵실험을 실시했다.

김정일은 비밀계좌 동결을 전후해 확실히 여유없이 매우 조급하게 움직였다.

2007년 '핵불능화' 합의로 계좌 동결은 풀렸고 약간의 진전은 있었으나 또다시 늪에 빠졌다.

결국 김정일은 김정은 후계체제 구축과 미국과의 밀당을 반복하다가 2011년 12월에는 심장마비로 급사했다.

비트코인 등 가상 화페를 둘러싼 보기 드문 워싱턴과 베이징 간 공조와 북한의 더 확실한 미소 흘리기는 미국이 또 다시 북한의 아킬레스건을 발견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들게 한다.

미국 재무부 관리가 한국을 방문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백두화'의 3일간 남행은 '기레기'의 '레밍 퍼포먼스 어게인'보다는 '돈줄 조이기'의 활로를 찾기 위한 '미션 임파서블'인지 모른다. <스위프트-버크왈드>

러일전쟁 발발, 조선 일본 유학생 2·8 독립 선언

2001년 2월 8일 중국 공산화 이후 최대 위조지폐 사범의 주범 7명에 대해 사형이 집행됐다.

이들은 1995년 5월부터 1999년 6월까지 광둥(廣東)성 산웨이(汕尾)시 등에서 총 6억 위안에 달하는 위조지폐를 대량으로 인쇄했다.

이들은 1심인 광둥성 산웨이시 중급인민법원과 2심인 광둥성 고급인민법원에서 사형판결을 받았으며 최종심인 최고인민법원도 2001년 2월6일 원심을 확정했고 이틀 뒤인 8일에 집행이 이루어졌다.

최고인민법원은 위조지폐 제작은 국가경제의 안정과 사회 안정을 극히 위태롭게 하는 경제범죄라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2005년 9월 이후 미국 재무부의 금융제재로 불거진 북한의 위조달러화 제조 혐의에 대해 중국측이 결코 북한에 호의적이 아닌 것도 이러한 중국 당국의 인식과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北-美 위조달러 北공모 논란속 中 위조달러 암시장 유통 확인 2005/11/26 01:37

지난해 위안화위폐 1,500억원어치 적발 2005/05/20 07:06

1904년 2월 8일 일본군이 선전포고 없이 중국 뤼순(旅順)항에 정박 중이던 러시아 함대를 공격하는 것을 시작으로 러일 전쟁이 발발했다.

일본은 다음 날인 9일 대한제국(조선) 제물포 항(인천)에 정박하고 있던 러시아 군함 2척에 대한 공격을 가했으며 뤼순항 기습 공격 이틀 뒤인 10일에서야 정식으로 선전포고 했다. 러시아는 일본과 전투를 시작한지 8일이 지난 뒤에 선전포고 했다.

일본이 이처럼 러시아를 선전포고에 앞서 기습 공격한 지 꼭 41년 6개월 뒤인 1945년 8월 8일 러시아의 후신 소련은 일본에 선전포고하고 바로 하루 뒤인 8월 9일 0시를 기해 일본의 괴뢰국 만주국에 대한 대대적 공격을 가했다.

소련군의 만주국 내 일본군에 대한 공격은 선전포고 뒤 군사 공격이라는 형식을 갖추기는 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기습 공격이었다.

소련의 대일 선전포고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과 마찬가지로 기습을 통해 미국과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던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사상 첫 핵 하 공격을 받은지 하루 뒤였다. 소련의 이 같은 공격은 '역사를 의식한 보복'이었다.

일본의 조선(대한제국) 병탄과 중국 침략의 길을 열어준 러일전쟁은 미국-스페인 전쟁, 보어 전쟁과 더불어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제국주의 단계로 접어드는 3대 전쟁의 하나로 꼽힌다.

이들 전쟁의 승자는 미국,영국 그리고 일본으로 모두 해양국가이다.

미국은 이후 중남미를 '자신의 뒤뜰'로 삼았고 스페인의 아시아 식민지였던 필리핀을 넘겨 받아 명실상부한 태평양 국가가 되었다.

영국은 뒷날 '영국의 베트남 전쟁'이었다라는 평가를 받았던 보어 전쟁에서 고전 끝에 승리하여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식민지로 만들어 아프리카 종단정책의 하단을 확보했다.

러시아군은 러일전쟁 초기 군 병력에서 일본군을 크게 앞섰으나 준비 부족, 군사 기술의 낙후, 군 지휘관의 소극적인 대응 등으로 인해 일본 지상군에 밀렸고 끝내 주전쟁터가 된 중국 만주지역(동북 3성 지구)가 육지로 인접해 있는 이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결국 지상전에서 결정적 군사적 패배를 당하지 않은 가운데서 강화조약을 맺었다.

러시아 국내에서 벌어진 혁명 사태 그리고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작전 판단 과오 등으로 무리한 항해로 강요당한 쓰시마 해전에서 결국 대참패를 당했고 이는 러시아 패배를 결정지었다.

뤼순과 제물포 기습 이후 전쟁의 경과는 다음과 같다.

1904년 4월 8일 = 일본군이 뤼순 항의 러시아 태평양 함대를 무력화시켰다

1904년 8월 10일 = 일본함대 황해(서해)에서 포위를 돌파하려던 러 태평양 함대 대파

1904년 8월 하순 = 랴오양(遼陽) 회전에서 일본 승리

1904년 9월 4일 = 일본군 랴오양 점령

1905년 1월 2일 =러시아 해군 육전대 4만8000명 뤼순에서 일군에 항복

1905년 3월 = 50만 러시아군 35만의 일본군 진격에 후퇴 :

1905년 5월 27일 = 희망봉을 돌아 1만8000 해리를 항해한 러시아의 발트함대가 대한해협에서 벌어진 쓰시마 해전에서 일본 해군에 의해 궤멸됨.

38척 중 3척만이 일본 해군의 저지망을 뚫었으며 나머지는 모두 격침됨.

발트함대의 궤멸 이후 러시아군은 제대로 싸움다운 싸움을 하지 못했으며 러시아의 황제는 때마침 발발한 국내혁명을 진압하기 위해 정전을 희망했다.

또한 중국과 필리핀 등 서태평양 지역에서 식민주의적 이권을 보호하기 위해 일본에 대해 전비와 군사 전략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미국과 영국은 러시아의 발트함대 괴멸 이후 일본을 더는 지원하지 않았다.

일본도 만주지역에서는 막대한 인명 손상에도 불구하고, 결정적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다. 해전에서와는 달리 육전에서는 내상 깊은 승전이었다.

더구나 미국과 영국이 팔짱을 끼는 태도로 돌아서자 일본은 더는 전쟁을 수행할 수 없는 기진맥진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결국 미국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의 중재 아래 1905년 9월 5일 포츠머스 강화조약이 체결됐으며 일본은 만주와 한반도에 대해 배타적 통제권을 확보하게 됐다.

전쟁 와중에서 만주지역의 중국인과 한반도의 조선인이 큰 피해를 입었다.

우리나라 역사 속의 오늘

일본에 유학 중인 조선(한국) 유학생들이 일본 도쿄에서 2·8 독립 선언을 발표했다(1919).

한국의 독립을 요구하는 선언서와 결의문을 선포한 이 사건은 도쿄 조선청년독립단이 주동한 것으로, 대표는 최팔용·윤창석·김도연·이종근·이광수·송계백·김철수·최근우·백관수·김상덕·서춘 등이었다.

이들은 미국 대통령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제창에 자극받아 도쿄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 한국유학생 대회를 열어, 남녀 유학생 6백여명이 모인 자리에서 최팔용(1891~1922)이 대표로 나가 이광수가 작성한 선언서와 결의문을 낭독, 만장일치로 가결하였다.

대표들은 일본 의회에 청원서를 제출하려다가 일본 경찰의 제지로 실패했다.

선언서의 첫 머리는 "조선청년독립단은 우리 2천만 민족을 대표하여 정의와 자유의 승리를 얻은 세계 만국 앞에 독립됨을 선언하노라"고 시작하였다.

선언서는 한일합방이 한국민의 뜻에 반하는 것인만큼 일본은 한국을 독립시킬 것, 미국과 영국은 일본의 한국합병을 솔선 승인 한 죄가 있으므로 속죄의 의무를 질 것을 요구하고 이에 응하지 않을 때는 우리 민족이 생존을 위해 자유 행동을 취해 독립을 달성할 것 이라고 선언했다.

4개항의 <결의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본단(本團)은 한일합병이 우리 민족의 자유의사에서 나오지 아니하고 우리 민족의 생존발전을 위협하고 동양의 평화를 요란케 하는 원인이 된다는 이유로 독립을 주장함.

②본단은 일본의회 및 정부에 조선민족대회를 소집하여 대회의 결의로 우리 민족의 운명을 판결할 기회를 요구함.

③본단은 만국회의에 민족자결주의를 우리 민족에게 적용하기를 요구함. 이 목적을 달하기 위해 일본에 주재한 각국 대·공사에게 본단의 의사를 각 그 정부에 전달하기를 요구하고 동시에 위원 3명을 만국평화회의에 파견함. 위 위원은 이미 파견된 우리 민족의 위원과 같은 행동을 취함.

④앞의 모든 항목 요구가 실패될 때는 우리 민족은 일본에 대해 영원히 혈전을 선언함. 이것으로써 발생하는 참화는 우리 민족이 그 책임을 지지 아니함.

일본경찰은 주동자 60여 명을 체포, 그중 최팔용·김도연·백관수·윤창석·송계백·서춘·김상덕·이원군 등 9명에 대해 일체의 방청을 금지한 재판을 열고 출판법 위반을 걸어 최팔용·서춘은 1년, 그외는 9개월에서 3개월까지 금고에 처했다.

2·8독립선언은 곧장 국내의 민족지도자·학생들에게 알려져 3·1운동을 일으키는 한 계기가 되었다.

2·8 독립 선언 24년 9개월 23일 뒤인 1943년 12월 1일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과 영국 처칠 총리는 장제스 중국 총통과 함께 카이로 선언을 통해 한국의 독립을 약속했다.

미국과 영국의 한국병탄 승인 속죄 의무 이행 요구를 받아들인 셈이다.


[今天歷史-11월2일] 랜싱-이시이 협정, 毛 3번째 소련 방문/a>

2018/02/08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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