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8/08/22 09:03



[今天歷史-2월9일]中, 美 越침공 경고...영원한 국익만이

"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으며, 단지 영원한 국익만이 존재할 뿐이다(We have no permanent allies, we have no permanent enemies, we only have permanent interests.)"
-영국 파머스턴 경

'기억하라 제물포', '바랴그호는 다시 격침 되지 않는다.'

2월 9일은 국국제 관계에있어 만고불변의 경구를 일깨우는 사건이 벌어졌던 날이다.

-1965년 2월 9일 중국은 미국의 베트남전 군사 개입 움직임에 강력하게 경고했다. 그로부터 14년 8일 뒤인 1979년 2월 17일 중국은 베트남을 무력 침공햇다.

-1904년 2월 9일 대한제국 제물포 항(현재 인천 )항 앞바다에 에 정박하고 있던순양함 바랴그 호 등러시아 군함 두척이 일본함대의 공격을 받고 바랴그 함은 항복을 거부하고 자침했고 다른 한 척은 격침됐다.

전자의 사레는 '국제 관계에 있어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업고 오직 영원한 국인만 있을 뿐'이라는 경구를 연상시킨다.

후자는 '기억하라 ( Rember ...)', 결코 잊지 않느다(Not Forget('을 사상기시킨다.

1965년중구과 북베트남(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월맹'으로 호칭)은 운명 공동체의 친구사이였다. 1979년 2월의 양자 관계는 '너죽고 나 살자'의 철천지 원수 관계로 변모햇다. .

베트남전 기간 남베트남(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 월남'으로 불림) 은 미국이 모든 것을 쏟아붓는 최상단의 친구엿다.

1973년 떠날 때는 사랑이 식어 '너 보기가 역겨운' 냉정해진 연인 사이의 관게가 됏다.

1975년 '적'의 품에 강제로 안길 때 미구은 팔짱을 끼고 바라만 보았다.

'영원한 국익만'이란 경구를 남긴 19세기 영국 정치가 파머스턴 경 1차 아편 전쟁때ㅔ때 외상이었고 흔히 애로우 호 사건'으로 불리는 2차 아편 전쟁 시기에는 총리엿다.

파머스턴총리는 의회가 전쟁 불가 결의안을 통과시키자 의회를 해산시키고 전쟁을 강행했다. . '

양심,체면 을 주저없이 버리고 '더러운 전쟁'을 벌인 것은 국익을 위해서엿다.

파머스턴은 어제를관찰한바에 따라 오늘을 이끌었고 내일을 예언햇다. 고금동서는 물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게다.

러시아에서는 매년 러일젅쟁 바랴그함 자침 추모 행사를 갖는다.특히 바랴그 함 자침 110 주년 때는 주한 러시아 대사가 인천 앞바다까지 나가 해상 추모행사를 가졌고 푸틴러시아 대통령이 2013년 11월 방한햇을 때 인천으로가 추모비룰 참배한 적이 잇다.

이는 '진주만을 잊지 말자'와 '마사다는 다시 함락되지 않는다'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기억 ㅢ식'을 연상하지 않을 수없개 한다. <스위프트-버크왈드>

<일본 러일 전쟁서 제물포 항 정박 러시아군함 2척 격침, 全聚德,>

1965년 2월 9일= 중국정부가 베트남전과 관련한 성명을 발표하고 미국에 대해 베트남을 침공하는 것은 중국을 침범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성명은 베트남은 사회주의 진영의 일원이기 때문에 실제행동으로 베트남을 지원하는 것은 사회주의 국가의 거부할 수 없는 국제의무라고 강조했다. 이어 성명은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베트남 인민을 지원, 미국의 침략자를 철저하게 격퇴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 성명은 미국의 존슨 행정부가 1964년 8월 통킹만 사건을 빌미로 북베트남 지역을 폭격하고 남 베트남에 지상군 병력을 대량 파견하는 등 베트남 전에 본격 개입한데 따른 중국측의 반응이었다.

베트남 전은 베트남 민족에 의한 민족해방전쟁의 측면과 함께 공산 중국의 확산을 봉쇄하려는 동서 냉전의 일환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미국은 중국의 팽창을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전진 봉쇄한다는 세계 전략적 고려에 따라 베트남에 대규모 병력을 동원, 원정한 것이고 중국은 미국의 궁극적 목표가 자신을 겨냥하고 있음을 알고 베트남을 물심양면으로 지원, 이에 대항했던 것이다.

닉슨 행정부의 미중화해 성공은 미국에게 대중봉쇄를 위해 '고비용의무(無)효율' 베트남전을 유지할 필요성을 크게 감소시켰다. 결국 이는 미국의 전면적인 베트남 철수로 이어졌다.

미국 민주당 행정부의 베트남 전 대규모 개입과 뒤 이은 공화당 행정부의남부 베트남에 대한 안보 차원의 '스페어 타이어' 조차 남겨 두지 않은 완전 철수를 두고 당시 미국 어언론은 "밀물처럼 들이 닥쳤다가 썰물처럼 빠져 나갓다"라고 표현햇다.

미국의 화끈한 양보로 중국은 베트남 국경 지역에 배치한 24 개 사단 병력을 소련과의 국경 지역으로 돌릴 수 잇엇고 이는 소련 침공에 대한 우려를 크게 덜 수가 있었다.
1904년 = 일본 해군함대가 대한 제국 제물포 항(인천 항)에 정박중이던 러시아의 순양함 바랴그 함과 코리예츠 함을 공격하여 자침, 자폭하게 하였다. 하루 전 일본 해군이중국 리순 항의러시아 함대를 기습 공격함으로써 러일 전쟁이 발발햇다.

러시아인들은 중국인들이 청일전쟁에서 일본 해군과 맞서 싸우다 장열하게 전사한 중국 북양 함대의 군함 함장 등세창(鄧世昌)을 기리는 것처럼 항복을 거부하고 자침한 바랴그 함의해군 승조원들을 영웅으로 기리고 있다.러시아에서는 매년 이들을 기리는 행사를 가져 왔는데 러일 전쟁 발발 110주년을 앞둔 2014년 2월 3일 주한 러시아 대사 등이 인천에 와서 자침 지역으로 나가 해상 추모식을 거행하기도 햇다. 앞서 2013년 11월 블라디미르 푸틴러시아 대통령이 방한 햇을 때 인천을 찾아 연안 부두 추모비를 참배했었다.
1980년 2월 9일 중국 공산화 이후 문을 닫았던 베이징(北京) 오리전문 요리점 전취덕(全聚德 : 취안쥐더)이 옥호를 회복하고 영업을 시작했다.

전취덕의 오리요리는 베이징을 대표하는 요리로 공산화 이전 서양인들이 베이징을 상징하는 3D(Duck, Dust, Diplomacy)의 하나로 꼽을 정도였다 .

전취덕은 1864년 양전인(楊全仁)이라는 사람에 의해 베이징 첸먼(前門)에서 처음 문을 열었다. ‘전취덕’이라는 이름이 지어진 데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진다.

양전인이 오리요리점을 내기위해 산시(山西)성 사람이 운영하던 말린 과일 가게를 인수하였는데 그 가게의 이름은 ‘덕취전(德聚全)’이었다. 양전인은 새로운 옥호를 정하기 위해 풍수선생을 찾아갔다.

풍수선생은 상점의 터는 장사가 잘될 길지이나 상점이름이 이를 막고 있으니 그 이름을 뒤집어쓰면 아주 장사가 잘될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전취덕’이란 글자 뜻은 상점 주인의 이름 전인(全仁)과 는 짝을 이룬다며 전취덕을 옥호로 하면 하늘이 도울 것이라고 말하였다.

풍수선생의 말을 그럴듯하게 여긴 양전인은 당시 베이징의 명사로부터 글씨를 받아 금박을 입힌 편액으로 만들어 상점 위에 높이 달았으며 이후 풍수선생이 예고한대로 상점은 날로 번창해나갔다는 것이다.

현재 다른 베이징 오리요리점이 전기로와 가스로 등을 사용하고 있으나 전취덕은 전통적인 화목 사용을 고집하고 있다. 화목(火木)을 사용하여야 만이 오리특유의 신선한 맛이 살아난다는 설명이다.

전취덕은 현재 베이징 시에서 첸먼 본점 외에 왕푸징(王府井), 허핑먼(和平門) 등에 분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네이멍구(內蒙古)의 바오터우(包頭)를 비롯, 난창(南昌). 쿤밍(昆明), 그리고 구이린(桂林) 등지에도 지점을 두고 있다. 또한 일본, 태국, 쿠웨이트 등에도 전문 요리사를 파견하고 있다.

2018/02/09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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