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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頓悟頓修] 속은 것으로 속였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3일 전격적으로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을 해임했다
이를 두고 미국 언론에서는 틸러슨 전 장관의 이름과 '엑시트(exit) 결합하여 '렉시트'라는 말이 나왔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찬성 국민투표 가결처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트럼프와 틸러슨의 불화는 이전부터 잘 알려졌고 틸러슨의 사임 이야기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무성했다.
그런데 미국의 북미정상회담 수락 발표로 가장 사임 가능성이 낮은 시점에 과거 입방아에서조차 나오지 않았던 '파면(fire)' 방식으로 모욕적으로 쫓겨났다.
1년 이상 함께 일했던 미국 행정부 내에서 대통령과 부통령에 이어 서열 3위의 국무장관을 해임하는데 눈꼽만치의 예우도 갖추지 않았다.
아무도 예상하지 않은 트럼프의 북미 정상회담 발표 당시 틸러슨은 아프리카를 순방 중이었다.
북폭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정말로 정말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인 정상회담 발표로 바뀌는 과정에서 틸러슨은 아무런 언질도 받지 못했고 논의의 대상도 되지 못했다.
닉슨-키신저 팀이 미중 화해 비밀외교 추진 과정에서 왕따가 됐던 로저스 당시 국무장관의 처지를 연상시켰다.
로저스가 그러햇듯이 틸러슨도 '의전 국무' 역할마저도 감수할 생각에서였는지 아프리카 순방 일정을 하루 앞당겨 귀국길에 올랐다. 강경화 외교부장관과 미국에서 회담 일정도 잡았다.
트럼프의 발표로 5월로 일정이 잡힌 북미 정상회담의 준비에 적극적으로 나설 생각이었던 것 같다.
어찌됐든 유화 국면으로 전환한 이상 대북 문제에서 비둘기파로 트럼프와 대립각을 세운 자신의 활동 공간이 있지 않겠느냐는 판단 때문이었으리라. 그러나 그것은 '아주 아주' 대단한 착각이었다.
틸러슨은 '문자 전송 해고'보다 더 치욕적인 '트위터 해임'을 통보 받았다. 당사자인 자신과 수백만 명이 될지도 모를 팔로워들과 동등하게 자신의 파면 사실을 동시에 알게된 셈이다.
'트윗킬 또는 'tweetfire'라는 시사 용어가 나올판이다.
트럼프가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드문 대북 비둘기파의 수장을 이처럼 철저하고 무자비하며 잔인한 굴욕을 감수시키며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우선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에 대한 기죽이기다.
김정은은 자신의 고모부 장성택을 고사포 처형함으로써 북한 정권 최고 지도자로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또한 자신의 권좌를 대체할 수도 있는 이복형 김정남을 화학무기를 사용,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 국제 공항에서 암살해 목적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는 고사포를 쏘지도 않았고 화학무기를 동원하지도 않았고 단지 '트윗팅'을 통해 대북 문제에서 자신에게 딴지를 걸었던 틸러슨을 제거했다.
한마디로 '네가 막가파냐, 나도 막가파다'라는 과시다.
틸러슨이 당하듯이 어깃장을 놓으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경고다.
두 번째 메시지는 속는 것처럼 보였지만 속는 체 하면서 상대를 속였다는 점을 모두에게 간단하고 확실하게 알렸다는 것이다.
압박 완화와 시간 벌기를 노렸을 김정은 일파에게는 전략적 불안을, '트럼프 너마저도'라고 불안했던 대북 우파들게는 안도를 주는 일석이조 효과였다.
트럼프는 틸러슨 후임으로 매파 중 매파인 마이크 폼페이오를 네정했다
트럼프 행정부에 들어와 CIA 국장을 맡은 폼페이오는 북한 핵시설 폭격 필요성 주장에 목소리를 높여왔고 북한의 ICBM 완성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그의 시간표에 따르면 ICBM 완성 시점은 이미 지나갔을 정도로 울트라 대북 강경파다.
폼페이오의 국무장관 임명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안보 라인 수장은 모두 군 출신 일색이 되었다.
국방장관은 해병대장 출신의 제임스 매티스다. 그는 2003년 이라크 침공 당시 바그다드 진격이 더디다며 휘하 지휘관을 '즉결 해임'한 일로 '미친 개'라는 별명이 붙여진 인물이다.
백악관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 안보 보좌관은 현역 육군중장이다.
신임 폼페이오는 맥매스터의 웨스트포인트 후배로 육군 장교 출신이다.
틸러슨을 폼페이오로 교체함으로써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은 '비둘기와 매의 공존'에서 '전시 상황실(War Room)으로 돌변했다.
평화를 논의하자는 것인지 항복 조건을 따지자는 것인지 헷갈린다.
허수아비로나마 틸러슨이 있을 때에는 전자의 구색을 맞추었으나 한 사람을 바꾸어 전혀 정반대의 라인업이 된 것이다.
트럼프는 국무장관 교체를 알리는 트윗팅에서 폼페이오가 웨스트포인트 수석 졸업생임을 부각시켰다. 인천 상륙작전의 맥아더가 웨스트포인트 수석 졸업생이다.
세 번째 메시지는 김정은에게 아버지 김정일이 했듯이 속이려 했다면 그 꿈을 일찌감치 깨라는 압박이다.
트럼프 트위팅에서 틸러슨과 대표적 의견 차이를 이란과 핵 합의를 들었다.
틸러슨은 전임 오바마 행정부의 이란 핵합의를 파기하려는 트럼프에 강력하게 반대했다.
트럼프 생각으로는 사기당한 이란 핵합의와 같은 안을 들고 나와 만날 생각은 갖지 말라는 이야기다.
내가 속은 대로 아니 한국 정부가 전달한 내용을 내가 믿은대로 실천해라는 식이다.
네 번째 메시지는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설득과 경고다.
과거와 같이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지키기위해 속임당하기를 하지말라는 의사 표시다.
트럼프의 틸러슨 파면 트위팅은 정의영 안보실장이 중국 외사영도소조 조장 시진핑 국가주석, 미국통인 양제츠 국무원 외교 담당 국무위원 그리고 일본통인 왕이 외교부장을 한날 모두 만나고 나서 러시아로 가는 도중에 날렸다.
중국의 외교 최고 의사 결정팀이 정의용으로부터 김정은의 말을 상세하고 세밀하게 전해들은 직후 트럼프는 자신의 입장과 뜻이 어디에 있는 가를 명확하게 전달한 것이다.
핵 폐기를 둘러싼 김정은의 의도와 뜻과 문재인 정부의 스탠스가 어디 잇는가를 잘 알았을터이니 심사숙고하여 앞으로 상황 전개에 현명하게 대처하라는 주문이다.
러시아와 강경화의 굴욕은 이들 존재를 북미 대화의 테이블에서 밀어냈음을 의미한다.
러시아에게는 더 이상 발목잡기 장난을 치지 말라는 경고이고 강경화에 대해서는 귀찮게 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트럼프의 가장 회심의 수는 북한이 정의용 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에 대해 의심의 불길을 지피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북한은 정의용-서훈 팀이 트럼프와 그 참모진에게 김정은의 말과 의사를 어떻게 전달했는지에 대해 상식적 차원의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속이기 도사들이 상대방도 속이기 술책을 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퍼뜩들었을 수도 있다.
트럼프가 5월에 직접 만나자고 손을 '광속으로' 내민 것도 의외였지만 '평화'판을 정하고 즉시 비둘기를 제거하고 매를 들여놓는 영락 없는 '뒤통수 치기'도 전혀 생각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스위프트-버크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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