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8/04/27 06:20



[今天歷史-4월2일]中 인터넷도박 ‘검은물’ 기하급수 팽창

한중수교 초기 3년간 중국에 주재하면서 중국에서 멀리서 바라보며 또 책자나 전문 등 간접 경험을 통해 형성된 중국인에 대한 고정관념 중 몇 가지가 깨졌다.

그중 한 가지는 중국인이 대륙적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만만디'라는 신화다.

'만만디'는 느긋하다는 이야기인데 우리나라 사람의 급한 성질을 찜쪄 먹을 만큼 급한 중국인을 무수히 보았다.

호방하다는 의미에서 대륙적이라고 하지만 속이 좁은 이들도 적지 않았고 쫀쫀하기는 우리나라 사람은 물론 '축소 지향'과 '섬 나라 근성'이라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의 별명을 모두 듣는 일본 사람보다도 더 심한 중국인도 자주 마주쳤다.

그런데 하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던 것은 규모에서다. 그 긍정적인 면도 물론 많지만 부정적 측면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작은 나라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대국적 스케일에 입을 벌리곤 하였다.

부패,도박,황색 산업 등에서도 일찌감치 앞섰다. 공산중국 수립후 한동안은 이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개혁개방 이후 억눌려왔던 용수철이 튀어 오르듯 순식간에 우리를 추월한 것 같았다.

한중수교 초기 일부 우리나라 사람은 '졸부티'의 고개를 쳐들고 중국을 활보하던 때 사업차 중국을 찾은 우리 기업가 한 사람이 '검은물 사람들- 재중동포 즉 조선족이 흑사회(黑社會)에 관련이 있다고 의심하는 이들을 지칭하던 명칭-중에 속한 듯 보이던 중국 사업자로부터 접대를 받은 경험을 말하면서 혀를 내둘렀다.

프랑스제 고급 꼬냑 XO를 여러 박스 들여와 쌓아 놓고 술 접대를 하였다는 것이다.

이점에서는 정말 대륙적이었다. 검은돈의 규모와 지하경제 규모는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상을 부러워하던 이 시절에 이미 앞섰는지 모른다.

중국 경제 규모가 급상승하면서 부패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치솟았다. 도박 산업과 황색 산업도 동반 상승했다.

2015년 중국 당국에 적발된 인터넷 도박사이트의 월간 판돈 규모는 무려 우리나라 돈으로 70조원에 달했다.

최근 중국 지방 도시의 부시장이 4000억 상당의 뇌물을 수수한 죄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는 뉴스를 접했다.

이러한 뇌물 규모는 20여년 전 두 전직 대통령의 부패 규모와 맞먹는 수준이다.

지방 소도시의 부시장이 그럴진대 최고위층의 부패 규모는 두 말할 것도 없이 천문학적이다.

시진핑 집권 이후 강력한 사정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부패 규모의 기하급수적 팽창 행진은 꺾이지 않은 것 같다.

시진핑 2기에서 국무원과 동급의 감찰원을 새로 설립하고 공산당원이 아닌 관료와 사업가에 대한 사정을 강화하는 것은 이러한 위기 의식을 뒷받침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시진핑 체제 1기의 사정이 권력 강화를 위한데 초점이 맞추어졌다면 2기 체제의 사정 방향은 PRC( People's Rpublic of China),즉 중화인민공화국이 'ROC( Republic ofCorruption)'라는 '부패 공화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자는데 두었다.

1976년 마오쩌둥 사망 후 당주석, 국무원 총리와 군사위 주석 등을 겸하며 최고 지도자를 지낸 화궈펑은 2002년 14대를 앞두고 탈당계를 제출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는데 그때 한 중화권 시사잡지가 화 전 주석이 최 지도부가 모인 자리에서 "국공내전 당시 부패가 극에 달했던 국민당 정권 때와 무엇이 다르냐"고 질타했다고 전한 바 있다.

중화민국의 영문 이니셜과 '부패 공화국'의 영문 약자는 'ROC'로 같다. <스위프트-버크왈드>

董必武, 張大千, 아르헨티나 포클랜드 점령, 이스라엘 총리 사상 첫 이집트 방문

2015년 4월2일 = 중국 경찰은 월간 판돈 규모가 4000억원(약 70조5120억원)에 달하는 인터넷 도박을 적발해 모두 1071명을 구속했다.

광둥성 공안청이 적발한 이 인터넷 도박사이트의 회원은 40만명에 이르며 사상 최대 규모다.

광둥성 공안은 2014년 2월 관련 수사에 착수해 도박단 일당과 도박꾼을 검거하고 도박자금 3억3000만 위안을 압수했다.

도박단 일당은 2010년부터 사이트를 열고 인터넷 도박을 벌여왔으며, 서버를 중국뿐만 아니라 대만에도 두고 운영 거점도 태국에 설치해 법망을 피했다.

공안청은 이번 인터넷 도박을 광둥성 산터우(汕頭) 출신 2명이 주도했다고 설명했다.

1975년 = 중국공산당 창당 주역의 한 사람인 둥비우(董必武)가 베이징(北京)에서 사망했다. 1885년생으로 향년 90세였다.

후베이(湖北) 황안(黃安 : 훙안紅安) 출신으로 일본 유학 중 손문(孫文)을 지도자로 한 중국동맹회에 들어가 1911년 우창(武昌)에서 신해혁명(辛亥革命)에 참가하였다.

1920년 후베이에서 공산주의 소조를 만들었으며 1921년 중국공산당 창립대회인 중국 산당 전국대표대회에 참가하였다. 국공합작으로 국민당 중앙위 후보위원에도 올랐으나 국공분열로 소련에 망명하였다.

1932년 귀국하여 소비에트구(區)에 들어가, 중앙당교장이 되었고, 1934년 장정(長征)에도 참가하였다. 린보취(林伯渠), 쉬터리(徐特立) 등과 함께 당(黨) 원로로서 둥로(董老)라고 불렸다.

제2차 국공합작 뒤에는 충칭(重慶) 사무소에 주재하여 국민참정회 의원으로 있었고, 일본 패망 이후 저우언라이(周恩來)를 도와 국민당 정부와 교섭에 참가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과 더불어 부총리가 되었고, 1954년 최고인민법원장, 1959년 국가부주석을 역임하였다.

문화대혁명에서도 비판의 대상에 오르지 않았고, 류사오치(劉少奇) 실각 후 국가주석 대리를 맡았다.

1973년 당정치국 상무위원, 1975년 국가주석제 폐지로 의전적으로 국가원수 역할을 하는 인민대표대회 상무 부위원장이 되었다.

사회주의 법제방면에 공헌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1983년 = 중국 저명한 화가인 장대천(張大千)이 타이베이(台北)에서 사망했다. 1899년생으로 향년 84세였다. 쓰촨(四川)성 네이장(內江) 출신인 그는 일본에서 회화와 염색공예를 배운 뒤 귀국 후 화가로서 대성하였다.

1949년 해외로 출국한 장대천은 인도, 홍콩, 남미 등을 전전한 뒤 1970년대 후반기부터는 타이베이에 정착하였다.

해외를 전전하던 30년 동안 아시아, 유럽, 미주에서 많은 전시회를 가져 중국화를 세계에 알렸다. 한국에서도 1978년 11월 세종문화회관 전시실에서 전시회를 가진 바 있다.

장대천은 엷은 먹으로 대략 그린 다음 짙은 먹으로 그림을 분해해 가며 표현하는 당(唐)대의 화법(畵法)을 되살려 발전시킨 이른바 '대발묵(潑墨) 기법' 으로 유명하다. 그가 발묵화법으로 그린 산수화는 꿈 속의 도원경을 연상시킨다.

<용어 설명>

발묵[潑墨] 화법 먹물이 번지어 퍼지게 하는 동양화 의 산수화법(山水畵法).

이는 작가의 심정과 감동을 화면에 쏟아붓는 듯한 자유분방한 표현으로 전통 화법인 골법용필(骨法用筆)을 완전히 무시한 조방(粗放)한 화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발묵법은 중당(中唐)의
왕묵(王墨:王默)이 유명한데 《당조명화록(唐朝名畵錄)》에 의하면 그는 어느 곳에 사는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발묵을 잘하여 당시 사람들이 왕묵(王墨)이라 불렀다 한다.

특히 산수(山水)와 송석잡수(松石雜樹)를 잘 그렸는데 성품이 소야(疎野)하고 술을 좋아하여 그림을 그릴 때는 항상 술에 취해 있었으며, 그러면서도 아무렇게나 먹물을 묻혀 붓을 움직여 나가면 산이 되고 돌이 되고 구름이 되고 물이 되어 순식간에 그려지는 산석운수(山石雲水)는 자연조화 그대로여서 운하풍우(雲霞風雨)가 신교(神巧)하기 그지 없었으나, 묵오(墨汚)의 흔적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에는 4가지 특징이 있는데, ① 순전히 습묵(濕墨)으로 그림을 그려서 필흔(筆痕)을 볼 수 없는 것, ② 붓을 사용하지 않고 손 ·발 또는 머리털로 그리는 것, ③ 붓을 대기 전에 마음 속에 아무런 계획도 없이 모든 것을 붓이 가는 대로 맡겨버려 임시로 변화를 가져오는 것, ④ 많이 취한 뒤에 흥에 겨워서 하는 것 등이다. 이러한 화법은 정법(正法)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쉽게 배울 수 없는 순간적인 경지를 표현하는 데 필요한 묵법이다.

세계사 속의 오늘

아르헨티나가 영국령 포클랜드(아르헨티나는 말비나스로 호칭)를 무력 점령했다(1982).

이스라엘 총리 메나헴 베긴이 이스라엘 건국 이후 처음으로 이집트를 방문했다(1979).

2018/04/02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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