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8/12/11 22:24



[今天歷史-4월14일] 대운하 롤모델과 반면교사

마오쩌둥의 롤 모델은 진시황이었고 반면교사는 오광과 진승, 황건적의 장각 그리고 명나라를 멸망시킨 틈왕 이자성이다. 이들은 농민 반란군의 실패한 지도자들이다.

마오쩌둥이 2차 국공내전에서 승리, 베이징에 입성한 뒤 당 지도부 인사를 모아놓고 연설에서 강조한 말은 '이자성을 잊지말자'였다.

잘 알다시피 이자성은 명나라의 주력군이 청나라 군대를 막기 위해 산하이관으로 나가 대치 상황의 트랩에 빠져 있는 허를 찔러 베이징을 함락시켜 '꿈 같은 '타천하'를 이룩했으나 물불 관계인 명나라 장수 오삼계와 청태종의 연합군에 곧 바로 베이징을 내주어야 했다.

마오가 자신을 제외한 모든 당 지도부 인사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에 개입한 것은 청나라의 산해관 돌파 방지를 최우선적 과제로 삼아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이자성의 되돌이킬 수 없는 전략적 과오를 전철로 삼았기 때문이다.

손문의 롤 모델이자 반면교사는 다름 아닌 태평천국의 난을 일으킨 홍수전이었다. 손문은 홍수전이 중체서용식으로 '번안'한 기독교 사상과 서구의 평등 정신을 본받고자 하였으나 흔들리는 이민족 왕조에 한인 지배층이 적극적으로 돕는 것을 막지 못했다.

손문이 청나라의 실권자인 한인 군벌 지도자 위안스카이에게 초대 중화민국 총통 자리를 양보한 것 역시 태평천국의 치명적 전략적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시황제' 시진핑의 롤 모델은 진시황이다. 이 점에서는 마오와 마찬가지다.

그의 반면교사는 수양제다.

시진핑이 역점을 두는 고속전철 망 확충과 중국 대륙 전역을 바둑판 처럼 사통팔달로 만들려는 것과 남북수조의 대대적 인프라 추진 등은 중국 대륙이 불가역적 통합 상태를 이룩하려는데 있다.

이는 대운하 건설을 통해 진시황에 의해 이룩한 정치, 군사적 통일에 경제적 통일을 추가하여 질적 진전을 이룩한 수양제와 아주 닮았다,.

그러나 시진핑이 진시황에 자신을 비유하는 데는 거부감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진시황보다는 그와 더욱 유사한 수양제와 비유하는 것에 강한 불쾌감을 보일 것이다.

수양제는 2세 황제 호해가 환관 조고의 강압에 의해 칼로 자결한 것처럼 반란군의 압박에 "황제는 황제답게 죽는법이 있다"라는 절규를 남기고 타살적 자결로 생을 마쳐야 했다.

시진핑은 보아오 포럼 연설에서 금융 대폭 개방과 지재권 보호 확충 등 중국 시장 개방 조치를 제시하며 미국과 대결보다는 협력에 나설 것임을 천명했다.

1위국 아테네와의 대결 상황에서 다른 약소국을 결합시켜 도전한 스파르타의 길이 아닌 2보 후퇴의 길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마오가 이자성을, 손문이 홍수전을 반면 교사로 삼았던 것처럼 시진핑도 수양제를 반면교사로 삼아 '강대강' 대응과 '대외팽창을 일단 뒷전으로 밀어 둔 것으로 보인다. <盲瞰圖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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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5년 = 수양제(隋煬帝)가 대운하 건설을 명령했다.

대운하는 만리장성과 함께 중국 민족이 건설한 대표적 인공 건조물로 세계 인류의 유산 중 하나다.

만리장성 건설이 진(秦나라를 멸망시킨 원인이 되었듯 대운하 축조는 고구려 원정 실패와 함께 수(隋) 나라를 멸망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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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만(蒙曼)은 수양제에 대해 "폭군이지만 혼군은 아니었다. 덕은 없었지만, 공은 많았다. 하지만 그의 공업은 백성의 행복감과 함께한 것이 아니다. 당대의 공은 아니지만 천추에 유리한 공을 세웠고, 당대에 죄를 범했지만 천후에 이익이 되었으니 이것이 수양제의 가장 큰 문제였다"라고 평가했다.

그 '큰 문제' 중 대표적인 것은 바로 대운하 건설이다.

수양제는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건설 할 때와 마찬가지로 100만 명의 인력을 동원했지만 대운하가 후대에 베푼 경제적 혜택과 정치적 효과는 만리장성에 비길데 없이 크다.

남북조 시대에 개발된 중국 대륙의 남부를 북부의 정치 중심지 중원 지역과 경제적으로 긴밀하게 연결시켜 중국이 유럽 대륙에서처럼 수다한 나라로 쪼개지지 않도록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처럼 중국 북부와 남부의 경제권을 연결한 대운하는 이후 역대 왕조의 복구와 확장을 거쳐 허베이(河北)성 톈진(天津)으로부터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에 이르는 오늘의 형태를 갖추었다.

가장 길었던 때는 1782㎞였으나, 해운이 발전하면서 폐쇄된 구간이 많아져 1958년 대규모 복구, 확장공사 이후에는 전장 1515㎞의 지금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수당(隋唐) 시대의 동남쪽 노선은 뤄양에서 항저우까지였다.

뤄양에서 카이펑(開封)을 거쳐, 통제거(通濟渠)를 따라 화이허(淮河)으로 들어가, 춘추시대에 오(吳)가 개설한 항구(후일 山陽瀆)를 통해 양쯔강에 도달, 이 강의 남안(南岸)에서 장난허(江南河)을 따라 항저우에 이른다.

한편 동북(東北) 노선은 뤄양에서 베이징(北京)까지 이어졌다.

뤄양에서 출발, 황허(黃河)을 건너 영제거(永濟渠)를 따라 톈진(天津)을 지나 베이징에 도달했다.

수의 운하는 당을 거쳐 송대(宋代)에 이르기까지 그대로 이용되었는데, 남송(南宋) 때에 화북(華北)을 금(金)에게 점령당했기 때문에 남북의 연락이 끊겼다.

13세기 후반에 원(元)이 중국을 통일하고 베이징을 도읍으로 세우자,남방의 물자를 수송할 필요에서 운하 정비가 급선무가 되었다.

당시 황허는 남류하여 화이허로 유입됐으므로, 남쪽의 항저우에서 강남운하, 양저우 운하를 지나 화이인(淮陰)에서 황허를 거슬러 올라가 카이펑 부근에 도달, 육운(陸運)을 이용하여 웨이허강(衛河)으로 들어가 톈진으로 이어졌다.

여기에서 육운(陸運)의 불편을 없애기 위해, 산둥(山東)의 쓰수이(泗水)과 원장(汶江)을 이용해 화이인에서 다칭허(大淸河)으로 통하는 지저우허(濟州河)을 새로 건설하였다.

계속해서 둥핑(東平)으로부터 린칭(臨淸)까지 후이퉁허(會通河)을 건설하여 웨이허로 연결되게 했다.

그리하여 텐진으로부터 바이허(白河)을 거슬러 퉁저우(通州)에 이르게 했고 그곳에서 퉁후이(通惠河)을 건설하여 베이징에 도달하도록 했다.

명(明)은 성조(成祖)가 베이징으로 천도하여 운하의 정비에 주력했으며, 신종(神宗) 때에 쉬저우(徐州)를 지나는 우회로(迂回路)를 폐지하고, 화이인, 지닝(濟寧)간의 직통 수로를 건설함으로써 현재와 같은 대운하의 항로가 이루어졌다.

청조(淸朝)도 역시 베이징에 도읍했기 때문에 남방의 물자 수송에는 오로지 대운하가 이용되어 대대로 이 유지에 많은 노력이 경주되었다.

그러나 청 말기에 이르러서는 해운(海運)이 왕성해지고 운하는 그 수리가 철저하지 못하여 막혀 버린 곳도 많아졌다.

한편 1958년에는 하천계획을 겸한 대규모 확장·복구공사가 이루어져 운하 연안에는 13개의 항구가 건설되고 수문 등이 설치되었으며 베이징의 쭤안먼(左安門) 밖에는 4000톤급 기선의 접안이 가능한 부두가 건설되었다.

현재에는 많은 개수가 실시되고, 수송 외에 관개에도 이용되고 있다.

중국 대운하 보호-복원키로 2007/01/22 10:30

1918년 4월 14일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시 차이허썬(蔡和森) 집에서 마오쩌둥, 차이허썬, 샤오쯔성(肖子升), 리웨한(李維漢) 등 14명이 참석한 가운데 신민학회가 창립됐다.

마오쩌둥이 주도한 조직은 중국공산당 성립 이전 후난성의 반봉건, 반제국주의의 핵심조직이었다.

학회의 종지(宗旨)는 처음에는 “학술을 혁신하고 풍행을 고양하며 풍속을 개량한다(革新學術, 砥礪品行, 改良人心風俗)”라는 것이었다.

이처럼 초기에 계몽과 개량주의 성격을 띠었던 학회는 1919년 5 · 4 운동 이후 회원이 늘고 마르크시즘과 노동운동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종지가 “중국과 세계를 개조한다(改造中國與世界)”로 바뀌었다.

신민학회는 창립 초기 마오의 주창에 따라 러시아 혹은 프랑스로 유학을 하여 당시 세계의 가장 진보적인 사상과 학설을 배워 이를 기초로 중국이 필요로 하는 사상을 선택하고 받아들이자는 캠페인에 주력하였다.

이에 따라 학회회원의 활동은 국내외 두 지역에서 활발해졌는데 국내는 후난이고 국외는 프랑스였다. 국내에서는 러시아혁명의 경험을 되살리는 문제에 관해 토론을 많이 가졌다.

5 · 4 운동 이후 신민학회 회원들은 대거 중국사회주의청년단과 공산당 소조에 가입하였으며 1921년 공산당 성립 후에는 학회는 활동을 정지하였다.

1997년 = 대만이 미국으로부터 F-16기를 처음 도입했다.


세계사 속의 오늘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D.C. 포드 극장에서 존 윌키스 부스에게 피격당해 다음날 사망했다(1865).

남부동맹의 총사령관 리 장군이 항복 문서에 서명 5년간에 걸친 남북전쟁(1861~1865)이 종결된 지 6일 뒤였다. 일본에서 입헌군주제를 수립했다(1875).

우리나라 역사 속의 오늘

임진왜란이 발발하고(1592, 양력으로 5월 25일) 백두산 화산이 분출했다(1702).

2018/04/14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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