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8/12/11 22:24



[今天歷史-4월16일] 미일 新가이드라인...엉클 샘의 대아시아 전략

2차대전 후 동서냉전이 벌어짐에 따라 미국과 일본 간 동맹관계의 필요성이 대두됐고 결국 최초 국제적 냉전의 열전인 한국전이 진행 중이던 1951년 양국 동맹관계를 규율하는 '미일안전보장조약'이 체결됐다.

이는 미국의 냉전 인식과 그 틀의 아시아판이었다.

유럽과 북미주를 아우르는 냉전의 서반구판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로 개념과 틀이 이미 갖추어져 있었다.

유럽에서 냉전 전략은 소련을 주적으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시아에서는 공산중국에 의한 대륙 장악 사태의 출현으로 상황이 매우 복잡해졌다.

미국 트루먼 행정부는 공산중국을 유고화하여 아시아에서는 유럽에서 전략구조와 다른 방안을 모색했으나 한국전 발발로 소련-공산중국-북한을 '붉은 추축'으로 상정한 전략 인식 하에 1951년 미일안전보장조약이 체결된 것이다.

한일의 식민지 역사 관계로 인해 미일동맹의 연장 또는 더부살이로서 한일동맹은 이루어질 수 없었고 이런 전제 아래 한국의 안전보장 방안을 구축하려는 이승만의 필사적 노력으로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별도로 성립되었다.

1951년 미일안전보장조약은1960년 미일안보조약으로 대체된다.

1951년 조약이 미국이 전적으로 주도하는 것이었다면 1960년 조약은 냉전이 최고조로 달한 국제 정세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국전 특수를 계기로 경제가 부흥한 일본의 위상을 격상하고 그 역할을 확대한 것이었다. 물론 전범국이란 기억과 경계 인식이 여전히 강한 때라 전수방위에만 국한하는 전제 아래였다.

1951년 조약은 미국 민주당 트루먼 행정부에 의해 성립됐고 이를 개정한 1960년 조약은 공화당 아이젠 하워 행정부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미일안보조약은 1960년 이후 개정되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러나 국제정세 변화에 부응하기 위해 1978년 지침이 추가됐고 1997년 그리고 2015년 새로운 지침 개정을 통해 대상과 운영 방식을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이는 '조약 개정 없는 조약 개정'으로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조약의 목적과 틀을 크게 변화시킨 것이었다.

세 차례 지침은 미국 측에서는 모두 민주당 행정부에 의해 이루어졌다.

3개의 지침을 구별하기 위해 일본에서는 1978년 미국 카터 행정부 당시의 지침을 '구 가이드라인'으로 1997년 클린턴 행정부 때의 것을 '신 가이드라인'으로 그리고 오바마 행정부 때 개정된 지침을 '방위 협력 지침'으로 명명하고 있다.

구 가이드라인은 미중화해,와 소련의 태평양 진출과 아프간으로의 팽창이 반영되어 소련을 주적으로 삼는 것이었다.

신 가이드라인은 중국의 경제성장과 이에 따른 군사굴기와 북한의 안보 위협에 따른 한반도 정세 불안정 등을 크게 반영하고 일본의 역할을 확대하였다.

2015년 방위협력 지침은 힐러리 클린턴의 '아시아로 중심축 이동' 전략이 구현된 것으로 중국의 해 굴기를 강하게 의식하여 중국을 구소련을 대체한 가상적으로 삼은 것이었다.

일본 군사활동을 전 세계적 범위로 확대하고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행진을 막아왔던 걸림돌을 실질적으로 대부분 풀어주었다.

미국의 대아시아 세계전략은 1978년 이래 민주당에 지침 개정 을 통해 조약 개정에 상당한 큰 변화를 몰고 왔다.

민주당의 상징 동물이 당나귀이니 미국 대아시아 세계전략의 변천을 '당나귀 시리즈'로 명명해 볼 수도 있겠다.

'신가이드라인'을 클린턴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한다면 '방위협력 지침'은 '오바마-클린턴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불러 봄직하다. <스위프트-버크왈드>

三家村札記와 燕山夜話, 세월 호 사건 발생

1996년 4월16일 미국과 일본 정상이 ‘미일안보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공동성명은 소련 해체에 따른 동서냉전 종식 후 새롭게 변화한 안보 환경에 양국이 공동 대응하기 위한 방위 협력 신가이드라인(이를 '신<新> 가이드라인'으로 약칭)을 제정하기로 했다.

미일 안보 공동선언 발표를 위해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은 한국을 거친 뒤 일본을 3일간 방문하였다.

먼데일 주일 미국대사는 이 선언을 두고“전후 미일 관계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건”이라고 평가했다.

선언은 냉전 후에도 미일동맹의 기본구조가 지속될 것임을 재확인한 것으로 공동성명에 의거 1997년 9월 미국과 일본 간 이른바(방위협력) 신 가이드 라인이 체결됐다.

이어 1999년 5월24일 중의원(衆議院)에서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다.

법안이 구현한 신 가이드라인이 냉전시기 구 가이드라인과 다른 점은 초점이 소련에서 한반도, 중국 등으로 옮겨졌다는 점이다.

신 가이드라인 관련 법안들은 ▲주변사태 법안 ▲자위대법 개정안 ▲미국·일본 물품역무 상호제공협정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히 주변사태 법안이 한국·중국 등 주변국의 심한 반발을 샀다.

신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주변 사태가 발생해 미군이 출동할 경우 일본 자위대가 미군에 대한 후방지역 지원, 즉 물품과 용역을 제공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렇지만 ① 애매한 후방지역 지원 ② 일본 활동 영역의 최대한 확보 ③ 무기 사용권 ④ 군사행동 사후승인 ⑤ 북한·중국을 겨냥한 안보체제라는 점 등으로 인해 일본의 재무장과 군사대국화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는 평가와 함께 한반도를 비롯한 주변국에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견해가 거세게 일었다.

신 가이드라인은 미일 양국의 21세기 아시아태평양 안보전략 및 아시아-태평양 전략구조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는 빌 클린턴 부인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입안하고 본격적으로 추진한 '아시아로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 전략의 맹아이다. 일본의 우경화 정책 등도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결국 오바마 행정부와 아베 신조 정부는 2015년 아베 총리의 미국 방문 기간인 이해 4월27일 신 가이드라인을 개정했다. 미일 외교 국방장관 연석회의를 통해서다.

중국의 G2 부상과 중국의 군사대국화 및 해양 팽창 그리고 북한 핵 위기 고조 등 국제정세 변화에 부응하기 위해서다.

개정된 새 가이드라인(개정 되기 전 신 가이드라인과 구별하기 위해 일본 언론에서는 '방위협력 지침'으로 지칭하며 우리 언론도 이를 따르고 있다)은 기존의 일본 주변으로 한정돼 있던 미일동맹 행동반경을 전 세계로 확대하는 방안과 대중 억지력 강화로 요약된다.

개정 방위협력 지침에는 미국의 '아시아로 중심축 이동' 전략과 일본의 헌법해석 변경을 통한 집단자위권 행사 방침이 반영됐다.

미국과 일본은 '신 가이드 라인' 때부터 강하게 제기돼 온 한반도 전쟁 상황 시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입 가능성에 대한 우리의 우려를 의식, 방위협력 지침에 '제3국 주권에 대한 완전한 존중'이란 표현을 삽입했다.

제3국의 주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방위협력 지침을 행사하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한반도' 또는 '한국'등 분명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정부는 "미일 양국은 자위대가 한반도 영역으로 진입할 때 한국의 동의를 명확히 한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제3국'이란 표현은 결국 우리나라를 지칭한다는 해석이다. 아울러 정부가 전쟁 등 급박한 상황에서 선포하는 전쟁 수역에는 공해도 포함되기 때문에 우리가 허락하지 않는 한 자위대는 절대로 한반도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없다고도 했다.

그러나 이는'포괄적인 표현'에 대한 어디까지나 아전인수적 우리만의 해석일 뿐이다.

미일 방위협력 지침 개정 내용 발표에 앞서 2015년 4월16, 17일 양일 간 개최됐던 한미일의 사상 첫 3자 외교차관 회의에서는, 미일 방위협력 지침 개정 내용에 우리나라 주권 존중에 대한 입장이 추가될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우리나라 동의가 없는 상황에서 자위대가 한반도 주변으로 진출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은 정작 지침의 표현은 해석을 필요에 따라 여러 방향으로 할 수 있는 '회색 지대(글레이 존)'에 두었다.

일본은 '평화헌법'의 해석을 변경했고 미국은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의 입장으로 이를 묵인한 바 있다.

새 지침 발표에서 미일 대표는 의미와 주변국의 우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해명했다.

-두 나라의 군사협력을 세계적으로 확대하며, 협력의 영역도 탄도 미사일과 사이버·우주 공격, 해양 안보에까지 확대한다.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 열도를 염두에 둔 듯) 낙도(落島) 방위를 위한 공동 대처도 포함된다.

- 미사일 방어 관련 협력과 정보 공유도 확대해 일본이, 미국을 향하는 미사일, 또는 일본 근해의 미 군함을 공격하려는 미사일을 격추하는 등 방어 활동도 할 수 있다.

-한반도 주변 지역에서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경우 한국의 주권을 존중한다는 내용도 반영됐다.

하지만 주권 존중이란 포괄적 표현으로 처리됐다. 케리 미 국무장관은 "지난 1997년 미일 방위협력 지침 개정 이후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일어난 많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지침을 마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기시다 일본 외무상은 "전후 70주년을 맞아 이뤄지는 미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일 군사협력이 새로운 장을 열게 됐다"고 말했다.

새로운 방위협력 지침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두 장관은“특정 국가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북한을 포함해 다각적인 안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러한 양국 대표의 설명과 해명에도 불구하고 미국 입장에서는 추가 군비편성 없이 일본을 이용해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는 이익을 얻었고 반면 일본은 미국과 협력한다는 전제 하에서 전 지구촌 어디라도 자위대를 보낼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양국 모두 간절히 원하는 것을 얻은 셈이라는 마키아벨리즘적 해석을 할 수 있다.

일본 의회는 미일 방위협력 지침을 구현하기 위해 자위대가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안전보장 관련법을 통과시키고 2015년 9월30일 공포했다.

아베 정부는 2016년 3월22일 안보관련법이 6개월 이내 시행하도록 돼있음에 따라 시행 기한 마지막 날인 3월29일부터 시행토록 결정했다.

이와 함께 일본 각의는 유엔 평화유지활동(PKO)에 자위대에서 사령관을 파견하기 위한 자위대법 시행령 등 관련 26개 정령도 일괄해 개정했다.

안보 관련법 시행으로 미국 등 일본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다른 나라가 공격을 당하면서 일본에도 영향을 미치는 '존립 위기 사태'가 발생하면 자위대는 즉각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일본이 직접 공격을 받지 않는 단계에서도 자위대가 집단자위권을 행사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사태를 그대로 방치할 때는 일본에 대한 직접적인 무력공격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는 '중요 영향 사태' 경우에도 미군 등을 후방지원할 수 있게 된다.

이 같은 안보 관련법으로 자위대는 한반도 유사시 후방지원을 비롯한 어떤 행태로든 실제로 개입할 수 있는 길이 사실상 열린 셈이다.

아울러 PKO 등 해외에 파견된 자위대가 무장세력에 습격을 받은 비정부기구(NGO)를 구원하는 '출동 경호' 등도 해금됐다.

미일 방위협력 개정에 앞서 2014년 7월1일 아베 일본 내각은 각의 결정을 통해 집단자위권 행사 확대를 용인하는 헌법해석 변경 조치를 취했다.

이 결정에서 일본의 안전에 현저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 집단자위권을 행사하는 것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헌법해석 변경과 방위협력 지침 개정으로 일본은 2차대전 종전 후 맥아더 점령군 사령부가 만든 평화헌법에 의거해 '전쟁할 수 없는 국가'에서 헌법해석 변경을 통해 '세계 어느 곳에서도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로 탈바꿈할 수 있는 길이 트였다.

아베 정권은 궁국적으로 헌법개정을 통해 일본을 보다 완벽하게 '전쟁 할 수 있는 국가', 이른바 '보통국가'로 만들려 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냉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1960년 체결한 미일안보조약(미일 상호협력 및 안전보장조약)을 근거로 1978년 일본이 외부로부터 직접적인 무력 공격을 받았을 경우를 상정하여 미일 방위협력지침을 마련하였다.

이는 미일안보조약의 시행령으로, 이를 '구(舊) 가이드라인‘이라고 했다.

'구 가이드라인'은 소련군이 일본을 침공하였을 때, 즉 일본이 직접적인 무력 공격을 받을 경우에 대비한 미국과 일본 군사협력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소련의 붕괴와 동서냉전 종식으로 일본이 구 가이드라인이 상정하였던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거의 없어지고, 대신 한반도 문제 등 지역 분쟁의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이유로 신 가이드라인을 만들기로 합의한 것이다.

신, 구 가이드라인의 근거가 된 미일안보조약은 미국과 일본 간의 군사관계를 규정한 조약이다.

1951년 9월8일 맺은‘미국과 일본 간 안전보장조약'을 대체한 것으로 1960년 1월19일에 조인됐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제6조에 따라서 미국은 일본에 군대를 배치할 수 있으며, 일본은 이에 따른 설비와 비용을 제공해야 할 의무를 진다.

② 제6조는 미군에게 기지를 제공하는 목적을“일본의 안전에 기여하며, 극동의 평화 및 안전유지에 기여하기 위함”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③ 제3조는 “무력공격”에 대응할 각자의 능력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것을 규정하고, 제5조는 “일본의 통치하에 있는 영역에서 어느 한쪽에 대한 무력공격에도 공동으로 대처한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조약은 1970년 6월23일 이후 쌍방 어느 쪽이든 조약의 폐기를 통고할 수 있고, 그 경우 통고 1년 후에 폐기함을 규정하고 있다.

1966년= 4월16일 베이징일보(北京日報)가 3개 면을 할애하여 ‘삼가촌찰기(三家村札記)’와 ‘연산야화(燕山夜話)’에 대한 비판을 전개했다.

‘삼가촌찰기’는 ‘전선(前線)’이란 잡지의 칼럼 이름으로 1961년부터 덩퉈(鄧拓), 역사학자 우한(吳含), 그리고 베이징 시위 통전부장 랴오모샤(廖沫沙) 등이 돌아가며 집필했다.

‘삼가촌찰기’와 덩퉈가 베이징만보(北京晩報)에 쓰던 또 다른 칼럼 ‘연산야화’는 당시 좌편향의 착오와 기풍을 비평하고 풍자하여 많은 독자의 호응을 얻었다.

1966년 3월28일 마오쩌둥(毛澤東)은 캉성(康生) 등과 대화를 하던 도중 ‘삼가촌찰기’와 ‘연산야화’를 직접 거명하여 비판하였고 뒤이어 베이징일보의 비판이 실리게 된 것이다.

5월10일 '문혁의 붓‘으로 불리던 야오원위안(姚文元)이 쓴 ’삼가촌을 평함(評‘三家村’)‘과 '삼가촌찰기‘의 반동 본질’이라는 글이 해방일보와 문회보에 게재됐다.

야오원위안은‘삼가촌찰기’는 치밀한 계획 아래 목적과 계획을 갖고 조직적으로 반당, 반사회주의적 진공(進攻)을 감행하였다고 비판하였다.

야오원위안의 글 이후 중국 전역에서는‘삼가촌'을 비판하는 운동이 전개되었다.

<우리나라 역사 속의 오늘

인천을 출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청해진해운 소속)가 전남 진도군 병풍도 앞 인근 해상에서 침몰해 탑승객 476명 가운데 172명만이 구조됐고, 295명이 사망하고 9명이 실종됐다(2014).

특히 세월호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 324명이 탑승, 어린 학생들의 희생이 많았다.

선장과 선원들이 승객에게 선체에 남아있으라고 한 뒤 자신들만 먼저 피신, 지시를 따라 선체에 남아 있던 학생들 다수가 제대로 된 구조도 받지 못한 채 익사, 전 국민에게 충격과 침통을 안겼다.

2018/04/16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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