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8/10/16 17:15



[今天歷史-4월25일] 홍콩총독, 明 황제...외환보다 내우가 더 위험

창업(創業) 보다 수성(守成)이 더어렵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당태종과 위징이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일의 어려움과 세워진 나라를 지키면서 새로운 체제를 완성하는 일의 어료움을 토론한 뒤의 결론이다.

ㅣ와 빗대어 내우(內憂)와 외환(外患 중 어는 것이 더 위협적이냐는 질문을 던지면 '외환 보다는 내우가 더 치명적이다'라고 해야 할할지 않을까

영국 식민지 홍콩의 마지막 총독 크리스패튼은영국 역사 상 최초의 여성 총리로 최장수 총리의 기록 갱신을 행진중이던 마거릿 대처가 외국에 나가있을 때인 1990년 11월 그녀가 속한 보수당 반란을 주도하여 그녀를 쓰러뜨렷다

노동당의 해롤드 윌슨 총리정부와 보수당의 에드워드 히드 총리 정부를 무너뜨렸던 막강 파워 탄광 노조도 대처를무너뜨리지못하고 그녀에 게 '철의여인'이란 뢍관을 씌워 주었다.

'대통령제라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라는 말을 들을정도로국민적 인기가 크게앞섰던 제임스캘러헌 총리 가 정권을 대처의 보수당에게내 준 뒤 세 번이나대처와 총선에서 맞붙었으나 모조리 완패했다.

이 '난공불락 대처'를 무너뜨린 인물이 바로 야심만만한 보수당 내 젊은 지도자 패튼이었다,. 그자신은 모반 레테르 때문인지 '킹'이 되지 못햇으나 '존 메이저'를 후임총리 로 옹립하였고 다음 총선에서 정권 재창출마저 이룩햇다.

적시에 세대 교체를 통해 보수당을 새롭게 재편성 하여 보수당의 장기 집권의 길을활짝 열었다.


'킹 킬러'이자 '킹 메이커'였다 창업과 수성에 모두성공한 셈이다.

하지만 대처에게 패튼은 '호위 무사'여서 등을내준 지크프리트의 급소를비수로 찔러 절명케한 '하겐'이었다.
또한 제갈공명의 진중 병사 직후 촉군의 지휘권을 장악하려던 위연의 목을뒤에서 단칼에 배어버린 위연이 역시 등을내준 그의 측근 ' 마대'였다.

명나라 말 주력군이 북쪽 국경선으로 몰려간 허를 찔러 베이징성문 앞에 들이닥친 이자성의 농민 반란군에게 성문을 열어준 인물은 명나라 마지막 황제 숭정제가 가장 신임하던 환관이었다.

만주족의 청나라 군대가 산해관을 돌파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힘에의해서가 아니라 그곳을 지키고 있던 명나라 장수 오삼계가 문을 열어줬기 떼문이엇다.

연거푸 두 번씩이나 등 뒤에 비수가 찔림으로써 한족의 명나라는 멸망하고 이민족의정복 왕조 청나라가 세워질 수 있었다.

정치 권력 의 시작과 끝을 다음과 같이요약 할 수 있겠다.

'창업 보다 수성이 훨씬 어렵고더 치명적인 것은 외환이 아니라 내우다.' <盲瞰圖子>

파룬궁 시위, 중국 유엔에 화학무기금지협정 비준서 제출, 중국 공산당 항일 인민전선 제의, 네팔 대지진

1992년4월 25일존 메이저 총리의 보수당 정권의 영국정부가 홍콩의 28대 총독으로 크리스 패튼 보수당 당수를 임명하였다.

1990년 마거릿 대처 총리의 사임을 몰고 온 보수당 반란의 주역으로 메이저 정권 탄생의 산파였던 패튼은 앞서 치러진 영국 총선에서 낙선했다. 패튼은 홍콩의 마지막 총독이 되었다.

추억...홍콩의 마지막 총독 크리스 패튼 2005/10/04 21:36

1644년 = 명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崇禎帝)가 만세산(萬歲山 : 현재의 景山)에서 목을 매어 자살하였다.

농민 반란군 틈왕(闖王) 이자성(李自成)은 명군의 주력이 청군을 막기 위해 산해관(山海關)으로 가 있는 사이 40만 명의 보병과 60만 명의 기병을 이끌고 베이징에 들이닥쳤다.

숭정제는 백관을 소집하여 대책을 물었으나 백관들은 머리를 조아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숭정제는 이러한 모습을 보고 “짐은 망국의 군주가 아니지만 신들은 모두 망국의 신하들이구료”라고 내뱉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숭정제의 자업자득이었다. 숭정제는 원숭환(袁崇煥)과 같은 유능한 장수가 후금(1616년 건국, 1636년에' '청으로 이름을 바꿈)군과의 싸움에서 많은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처형했다. 의심 때문이었다.

원숭환은 그가 지키던 성을 공격하던 흐금의 지휘부에 대해 포르투갈에서 도입한대포로 대응, 누르하치를 부상입혀 결국 이 후유증으로 그를 숨지게 하였다. 하지만 이후금의 이간책과 숭정제를 둘러싼 총신들의 모함은 숭정제의 의심에 불을 댕겨 숭정제가 원숭환을 처형하게 만들었다. 명나라 멸만 14년 전인 1630년이었다.

이는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겪었던 처지를 연상시킨다. 충무공은 목숨을 보존하여 또다시 닥친 나라의 위기를 구햇으나 원숭환은 그러지 못했다. 결국 이는 명나라의 멸망의 한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4월 23일 창화문(彰化門 : 현 廣安門)을 열어 농민 반란군으로 하여금 베이징 성 외성을 쉽게 점령하게 한 인물은 숭정제가 가장 신뢰하던 중신인 환관 조화순(曹化淳)이었다.

숭정제는 조화순을 수성총관(守城總管)으로 임명했지만 애초부터 싸울 의욕도 없어 곧바로 투항한 것이다.

24일 숭정제는 두 명의 황자인 영왕(永王)과 정왕(定王)을 평민 차림으로 변복시켜 자금성(紫禁城)을 탈출하게 하였으며 주황후(周皇后)에게 자살을 명령했다. 이어 장평공주(長平公主)와 소인공주(昭仁公主)를 자신의 손으로 죽였다.

25일 새벽 종루에 직접 올라 종을 쳐 백관을 소집하였으나 단 한명의 중신도 오지 않았다.이들은 대신 입성하는 이자성 군대를 향해 환영 만세를 불렀다.

숭정제는 환관 왕승은(王承恩)과 함께 만세산으로 올라 자결한 것이다.

숭정제는 산발하여 얼굴을 가렸는데 죽어 조상을 뵐 면목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한쪽 다리는 신발이 벗겨진 채였다. 왕승은도 함께 자살했다.

숭정제의 시신은 3일 뒤에 발견되었으며 3개월 전 사망한 전귀비(田貴妃)의 묘에 묻혔다. 이 것이 현재 명 13릉 중 가장 초라한 사릉(思陵)이다.

1999년 = 파룬궁(法輪功) 수련자 1만여 명이 베이징(北京)의 중국 요인 거주지인 중난하이(中南海) 외곽에서 파룬궁에 대한 탄압중지를 요구하며 침묵시위를 벌였다.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베이징에서 벌어진 시위 중 최대 규모로 중국 지도부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중국 당국은 이해 7월 파룬궁을 반정부, 비합법 단체이자 사교(邪敎)로 규정하고 파룬궁 수련자에 대한 보다 강력한 탄압을 전개했다.

공안당국은 수십만 권의 파룬궁 관련 책자를 불태웠으며 4만 명의 파룬궁 수련자들을 구금했다.

파룬연변(法輪演變)-1 2001/02/27 16:12

파룬연변(法輪演變)-2 2001/02/27 17:01

1997년 = 중국은 유엔본부에서 유엔에 ‘화학무기 금지협정’비준서를 제출하였다. 중국은 78번째의 비준서 제출국이 되어 협정의 원(原)체결국이 되었다.

중국은 1993년 1월 13일 첸지천(錢其琛) 부총리 겸 외교부장이 파리에서 조약에 서명했으며 8기 전인대 제 25차 회의에서 비준안을 통과시킨 뒤 장쩌민(江澤民) 주석이 4월 7일 비준서에 서명하였다.

1936년 = 중국 공산당 항일 인민전선 제의. 이 제의를 담은 선언에서 처음으로 국민당을 항일통일 전선에 포함시켰으며 장제스(蔣介石)의 타도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와 함께 제출한 6개항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일체 내전의 정지와 항일전쟁을 통해 적을 토벌;

(2) 전국의 홍군과 전국의 육해공군을 화북 지역에 집결시켜 일본군을 타도;

(3) 전국 항일 국국대표대회를 소집하고 국방정부와 항일 연군을 조직한다;

(4) 언론, 집회, 결사, 출판, 신앙의 완전 자유를 보장하고 모든 정치범을 석방한다;

(5) 외교 교섭의 공개 실천;

6) 중국 민족과 국가를 평등하게 대우하는 세계 다른 나라들과 연합.

중국 공산당의 이런 통일전선 전략 구사는 만주 사변으로 근거지에서 밀려난 장쉐량의 동부군을 동요시키기 위한 목적이 담겨 있었다. 동북군은 내전 우선 원칙에 따라 일본과의 전쟁 보다 공산당 토벌에 주력하려는 장제스에 강한 불만을 품고 있었다. 이해 4월 9일 장쉐량과 공산당의 저우언라이는 비밀 회담을 갖고 내전 종식과 항일전에서 협력하기로 합의하였다. ㅣ과정에서장제스가 일본에 항복하지 않는 한 그를 떠날 수 없다는 장쉐량의 확고한 자세를 확인한 공산당이장쉐량 맞춤형 선언을 발표한 것이다. 장제스는 이선언을 일축햇으나 장쉐량은 크게 흔들렷다.

결국 이해 12월 12월공산군 토벌 독려를 독려하기 위해 장쉐량의 동북군 본부가 소재한 시안에온 장제스를 연금하는 시안 사변이 벌어졌다. 장쉐량은 일 두고 병간(兵諫)이라고 자신을 합리화하였으나 공산당의 통일전선 전술에 말려든 셈이다.

<세계사 속의 오늘>
네팔에서 규모 7.8의 대지진이 발생했다(2015). 이지진은 네팔 뿐만 아니라 인접한 인도, 중국,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와 부탄에까지광범위 하게 피해를 입혔다. 사망자는 8,400 명 이상이고 부상자는 1만 6,000 명을 넘었다.

2018/04/25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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