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8/05/28 03:59



[今天歷史-4월26일]淸華대학 개교...미국과 중국 적과의 동침관계

[今天歷史-4월26일]淸華대학 개교...미국과 중국 적과의 동침관계

서세 동점 이후 서양과 동양은갑을 관계가 되엇다. 갑이 압제와 수탈자였다면 을은 굴욕과 피압박 대상이었다.

갑의 '고수(叩首)가 영국이었다면 을의 '동네북' 은 중국이었다. 서방 국가들은 영국의 뒤를 쫓아 앞다투어 을에 대한 갖가지 갑질의 횡포를저질럿다.

중국을비롯한 동방 국가들은 도미노 패가 연달아 쓰러지듯 갑질의대상으로 전락햇다.

그러나어디서든 예외가 있듯이 갑이라고 해서 다 갑질만 한것은 아니다. 또한 을이라고 해서 모두갑질 댛상이 되지 않앗다. 도리어 갑이 대어 갑질의 선두 대열에 올라타기도 하엿다. 그 독보적 존제가 일본이다.

1900년 중국에서 의화단 사건이 벌어졌을 때 일본은 서방열강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여 중국에 출병하엿다.

전자의 데대표적 국가가 미국이다. 미국은 중국 청나라가 의화단 사건패배로 출병 8 개국에 배상금을 내 놓았을 때 자기 몫을 중국에 되돌려 주고 문화와 교육 사업에 쓰라는 조건을 달았다. 이에 따라 설립된 대학이 바로 칭화대학이다

미국의 이러한 '매브릭 행보'는 1차 대전 종전후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로 발전햇다. .

물론 미국도 다른 서방 국가와 마찬가지로 제국주의적 행동과 갑질을 해댔으나 영국과는 달랐던 것이다 .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을 둘러 나누면 그한 그룹은 미국ㅣ고 다른 그룹은 영국 및 다른 모든 서방국이다 ㅣ처럼 미국은 2차 대전 이후의 새로운 국제 질서의 패자를 예비햇던 것이다. .

ㅣ런 바탕이있었기에 마오쩌둥과 닉슨은 좌우의 양 극단에 위치하면서도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중국과 미국은 미중 화해 이후 장기간의 밀월 기간을 지내다 이제 본격적으로 대립 관계로 접어들려 하고있다. 그러나 이는'너 죽고 나살자'라는 제로섬 관계가아니라 '싸우면서 공영하자'라는 '적과의 동침'관계로 벼랑 경게선을벗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미중 관계는 싸움이 길어지면 서로손을 내밀고 공여이 비대칭적 으로 발전하면 적대적 관계로 돌변하게 된다.
그러나 배가 맞붗어 장기를공유한 샴쌍둥이처럼 중국과미국은 싸움은 하겟지만 하나가 죽으면 다른 쪽도 함께 죽는다는 사실을 서로 잘 인식한다는 전제 아래서 싸움을 벌일 것이다. <스위프트-버크왈드>


1911년 4월 26일 현 칭화(?華)대학의 전신인 칭화학당(?華學堂)이 개설되었다.

베이징(北京)대학과 경쟁관계인 칭화대학은 후진타오 전임 국가주석 겸 총서기에 이어 현 시진핑 국가주석 겸 총서기등 연이어 중국 최고 지도자를 배출했다.

2002년 후진타오의 총서기 선출로 시작된 이른바 '대청(大淸)시대 '는 2012년 시진핑이 총서기에 선출됨으로써 권력 재창출이 이루어졌다.

현재 진행형인 대청 시대는 2017년 10월 19데에서 시진핑이 총서기에 연임되고 2018년 3월 전인대에서 국가 주석 및 부주석의 임기는 1차 에 한해 연임한다는 임기 제한 규정이 삭제됨으로써 언제 끝날지 모르게 되엇다( 총서기 임기 규정이 없으나 덩샤오핑의 생전 설계 대로 한 차례 연임하는 관례가 마련 되었고 장쩌민과 후진타오 가 단계적으로 발전시켜 관례화를완성하였지만 시진핑의 권력 강화로 더 이상 적용되지 않게 되엇다)

칭화 대학의 이 같은 권력 재창출과 장기 집권 체제는 미국에서 하버드 대학과 경쟁 관계인 예일대가 공화당 출신의 아버지 부시 이후 민주당 출신의 클린턴을 거쳐 다시 공화당 출신의 아들 부시에 이르기까지 정권을 두 차례 교대하면서 3기 연속(1989~2009) 대통령을 배출한 것을 연상시킨다.

2002년 후진타오 총서기 체제 1기 지도부가 출범할 떼 최고 의사 결정기구 중국 공산당중앙위원회 상무위의 위원 9명 중 4명이 칭화대 출신이었다. 당시 상무위에는 중국 최고 명문 대학의 자부심을 지닌 베이징대출신은 1명도 없었다. 2기에서 베이징대 출신 리커창이 상무위에 진입햇고 그는 시진핑 체제 하에서권력 서열 2위의 총리가 되었다.

중국 공산화 이후 중국을 찾은 외국 정상 들이 가장 많이 방문한 대학은 베이징대였고 그 뒤를 칭화대가 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면서 거의 비등한 현상을 보인다.

아들 부시 대통령은 중국 방문 시 베이징 대가 아닌 칭화대를 방문, 강연했으며 같은 해 중국을 방문한 블라디 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베이징 대를 찾았다.

하버드 대 로스쿨을 나온 버락 오바마 바로 전임 미국 대통령은 칭화대가 아아닌 베이징대를 강연 장소로 택했다. 오바마는 컬럼비아 대학 학부 출신이다.

도널드 트럼프 현 미국 대통령은 2017년 11월 중국 국빈 방문 때 2박 3일 일정에 대학 방문을 하지 않았다. 이는 전임자들과 다른 행보로 그의 ' 미국 정계의 매브릭'이라는 별명에 무게를 더 실어 준다.

트럼프는 미국 아이비 리그 중 하나인 펜실베니 대학 와튼 스쿨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학사 출신이다.

한국의 경우 경희대법학과를 나온 문재인 대통령은 베이징대학에서 강연을 했다. 앞서 전임 박근혜 대통령은 서강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이공계 출신인으로 대통령 제직 중 방중 때 칭화대에서 강연을 했고 놈무현 대통령도 칭화대를 찾았다.

한편 김대중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이 강연을 위해 선택한 대학은 베이징대였다.

중국 공산화 이후 베이징 대학과 칭화대학은 각각 인문계와 이공계 중심 대학으로 개편됐다. 이후 정치 지향적이며 권위에 도전적인 베이징 대학의 학풍과 상대적으로 덜 정치 지향적이며 모범생 스타일이많으며 권위에 순종적인 칭화 대학의 학풍이 더욱 더 심화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공산 중국 체제가 강화면서 비판적 성향의 베이징 대 출신 보다 칭화대 출신 이 관계와 정계에 더 많ㅣ 진출하였다.

개혁 개방 이후 양 대학은 문과와 이과를 모두 아우르는 공산화 이전의 종합 대학 형태로 전환됐다.

칭화학당은 의화단 사건 진압을 위해 중국에 출병했던 미국이 청 정

부로 받게 된 배상금 중 일부를 돌려줌에 따라 설립되게 되었다.

1900년 청나라는 중국에 출병한 8개국 군대와의 전쟁에서 패배함에 따라 11개국과 굴욕적인 신축조약(辛丑條約)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에 따라 중국이 내놓아야 할 전쟁배상금은 4억 5,000만 양이었으며 미국에 할당된 액수는 3,200만 양이었다.

1904년 미국 정부는 청 정부와의 협상 끝에 배상금 일부를 1909년부터 1940년까지 월 단위로 중국에 돌려주기로 결정하였다. 미국 정부는 돌려준 돈의 용처를 문화교육사업에 한정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 대목은 2007년 미국이 마카오의 방코 델타 아시아(BDA)에 동결된 북한의 불법 자금을 해제하면서 이를 인도적 사업에 사용할 것을 요구한 것을 연상시킨다.

1909년 청 정부는 베이징에 ‘유미학무처(游美學務處)’를 설치하였으며 이를 전후하여 4명의 학생을 미국에 유학시켰다. 이를 제도화하기 위해 1911년에는 미국의 대학을 본뜬 칭화학당을 설립하기에 이른 것이다.

신해혁명 후 칭화학당은 칭화학교로 이름을 고쳤으며 1925년에 대학부를 설치하고 4년제 대학생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1928년 국민당 정부는 칭화학교를 접수하고 학교 명칭을 국립칭화대학으로 변경했다.

다음 해 대학에 걸맞지 않는 구제도를 폐지, 미국유학예비학교에서 정규 대학으로 면모를 일신시켰다.

대청(大淸)시대
중국 칭화대 4년 연속 중화권 최고명문 선정

2014/11/18 22:01
칭화대학 부속병원 신설 방침 밝혀 2004/04/23 23:00

淸華대 2003년에도 최고 명문대 위치 고수 2003/06/11 15:46




2018/04/26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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