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8/10/16 17:15



[今天歷史-5월5일] 중국 민항기 춘천 불시착

민항 여객기 한 대가 35년 전 오늘 춘천에 불시착한 것을 계기로 그 바로 30년 전까지 서로 죽이는 전쟁을 벌였던 한국과 공산중국이 수교를 이룩하는 물꼬가 트였다.

미세먼지는 생각지도 못햇던 그 푸르른 5월 하늘의 어린이날에 벌어진 이 사건은 법적으로 공중 테러라는 하이재킹 범죄 행위로 정리됐지만 한국과 중국 양국에 윈-윈 게임'을 예비한 축복이었다,. 그러나 성취가 이루어지기까지는 9년 이상이 걸렸다.

악수를 하려면 먼저 손을 펼쳐야 하기 때문이다. 갑 입장에서는 손가락 하나로 악수를 할 수 있지만 을 쪽은 네 손가락을 펴고서도 갑의 한 손가락조차 잡을 수 없다.

한중수교 과정에서 을의 입장인 한국은 마지막 다섯 번째 손가락을 펴고 손에 웅켜쥐었던 것을 떨어뜨려야 했다. 그것은 대만과의 외교관계였다.

즉 중화민국을 불인정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을 '하나의 중국'으로 인정한다는 것이었다.

북한은 한중 수교26년 만에 미국과의 수교기회에 가장 근접했다. 북한이 그 기회를 잡게된 것은 꽉 쥐고있던 손을 펼쳐보이겟다고 약속햇기 때문이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한국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안보실장을 거쳐 전해온 '코걸이 귀걸이 식 메시지'를 북한이 그동안 꽉 움켜쥐고 있던 핵무기를 털어버리는 것으로 간주햇고 올해 부활절 기간에 평양을 비밀 방문한 국무장관 지명을받은 폼페이오 CIA 국장의 귀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입을 통해 확인햇다.

며칠 전 국무장관에 정식 취임한 폼페이오 는 북한이 쥐고 있다고 미국이 간주하는 것이 핵무기 뿐만 아니라 화학 무기를 포함한 대량 살상 무기로 대상을 확대했다.
폼페이오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처리 방식에관해서도 'CVID'의 'C'를 'P'로 대체한 'PVID'로 더욱 강화한 개념을 내놓았다.

'완전한(complete)'을 '영구적인(permanent)'로 대체한 것으로 손
바닥의 다섯 손가락을 다펴게 한 뒤 뒤집어 볼뿐만 아니라 악수 뒤 다시 주먹을 쥘수 없도록 다섯 손가락 끝을 '접합수술'하겠다는 엄포다.
트럼프는 여기에 다른 한 손도 펴겠다는 의욕이다. 그손에 쥐고 있는 것 은 '세계 최악의 인권 탄압'이다.

몰론 다른 한쪽 손처럼 확실하게 쫙 열어 보이겠다고 나가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손가락 하나 정도는 이번 기회에 분명하게펴보이겠다는 자세다.

북한은 핵위기 사태가 표면화한 1993년 이래 지금까지 4반세기 동안 주먹 쥔 손을 펼쳐 보일듯 하다가 도로 꽈꽉 웅켜주기를 반
복햇다.
그러나 중국이 확실하게동참하고 러시아 마저도 마지못하지만 참여하고 있는 국제 대북 경제 제재에 강화로 더 이상 주먹을 움켜쥐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판단을 한 것 같아 보인다.

북한은 한주먹도 엉거주춤 펴려 하고 다른 주먹은 아예 한손가락 조차 펼치지 앟으려 하려는 속셈이 분명한데 과연 그렇게 할 수있을까.
갑을 관계가 확실히정리된 이 상황에서 북한 입장에서는 까딱 잘못하다가는 손목이 잘릴 위험성이 있다. 아니 두 주먹이 움켜쥔 것을 단번에 털어 내기 위해' '머리'와 '몸체'를 분리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있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현제 한손에들려 있는 '올리브 가지'만이 시선을 지배하고 있지만 잘 보이지도 않고 보려고 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보이고잇는 다른 한 손에 들려잇는 것이 '단두대''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스위프트-버크왈드>

사회주의 청년단 1차 전국 대표대회, 중국 공산당 수정주의와의 투쟁 선언, 나폴레옹 사망, 마르크스 탄생

1983년 5월 5일 중국 민항기가 줘창런(卓長仁) 등 6명에 의해 피랍되어 한국의 춘천(春川) 비행장에 불시착했다.

이 사건은 한국과 중국이 처음으로 공식 접촉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한국 정부는 이 초대받지 않은 '빈객'을 잘 대접하여 중국으로 돌려 보냈고 민항기 기체 역시 송환햇다.

납치범들은 재판을 거친 뒤 추방형식을 통해 대만으로 보냈다.

한국과 중국은 이 실마리를 발전시켜 이 사건 9면 3개월 뒤인 1992년 8월24일 수교를 맺었다.

납치 주역으로 동료들과 함께 대만에 온 줘장런은 영웅대접을 받고 막대한 보상금도 받았으나 사업에 실패한 뒤 동료 1 명과 함께 기업인 납치 살해사건을 일으켜 1992년 대만 당국에 체포됐다. 이 해는 아이러니컬하게도 한중수교가 이루어진 해이다.
이들은 신분의 특수성 때문에 오랫동안 재판을 받았으나 결국 체포 9년 후인 2001년 8월 살인죄가 인정되어 처형됐다.

중국민항기 前납치범 卓長仁-姜洪軍 사형집행 2001/08/10 23:08

1958년 = 중국 공산당이 수정주의와의 투쟁을 선언했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와의 관계에서 전쟁불가피론을 견지하는 중국과 평화공전으로 전환한 소련 간의 이념 갈등이 표면화한 것이며 소련 공산당의 지도 아래 탄생한 중국 공산당이 세운 중국이 소련과 대립할 정도로 성장했음을 의미한다.

1922년 = 현재 중국 공청단(공산주의청년단)의 원조인 중국 사회주의 청년단이 광저우(廣州)에서 제1차 전국대표대회를 개최하였다.

>세계사 속의 오늘

‘자본론’의 저자 카를 마르크스가 탄생하고(1818)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대서양의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사망했다(1821).3년 시차를 두고 생과 죽음이 교차한 마르크스와 나폴레옹은 각각 미래와 과거를 상징한다. 나폴레옹이 브부르주아 혁명인 프랑스 대혁명의 확산의 상징이라면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혁명인 러시아 혁명의 기초다지기을 대표한다. 나폴레옹은 1769년 생으로 향년 52세였다.

구 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가 창간됐다(1912).

2018/05/05 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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