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8/05/28 03:59



[今天歷史-5월11일] 實踐是檢驗眞理的唯一標準

독일 철학자 헤겔 영향 하 철학자를 헤겔 좌파와 헤겔 우파로 나누는 것처럼 마오쩌둥 영향 하의 공산중국 지도자와 이론가를 분류해 보자

덩샤오핑과 후야오방은 비록 문화대혁명 때 숙청되기도 하고 탄압을 받기도 하였지만 그들이 마오라는 '태산'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고 볼 수 없다.

천안문에 지금도 여전히 걸려있는 마오의 대형 초상화가 이를 상징적으로 입증해 준다고 하겠다.

덩샤오핑이 별도의 독립적으로 우뚝 선 '고산 준령'인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전쟁과 평화' 톨스토이와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도스토예프스키 중 누가 더 높고 그 그늘이 더 넓은지는 각자의 판단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덩과 후야오방 그리고 '덩의 왼팔'이던 자오쯔양 등을 '마오 우파'라고 하면 '마오 좌파'는 화궈펑, 왕둥싱 그리고 4인방 등이다.

이런 식으로 나누면 개혁개방 초기 선전부장을 지낸 덩리췬의 위치는 어디일까. 그는 덩샤오핑 집권 절정기 이후 그의 사후에까지 '좌왕(左王)'으로 불렸다.

덩리췬의 이데올로그로서 위상은 그가 '지하 총서기'라는 별명에서 보듯 '투덜이' 중 한 사람으로 가볍게 볼 존재가 전혀 아니었다.

그는 덩샤오핑의 권위에 전혀 주눅들지 않았으며 그의 이론 공세는 덩샤오핑의 아킬레스건을 집요하고 아프게 건들였다.

그렇다고 해도 '마오 좌파'일까. 이 역시 '전혀 전혀' 아니다.

덩리췬은 문화대혁명 시기 혹독한 탄압은 받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정치 중심과 이론 부문에서 밀려나 있던 존재였다.

그리고 그는 바로 '마오 좌파'를 일망타진한 '이론의 창' 골격을 만든 인물이다.

'실천이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표준'이라는 덩의 트레이드마크중 하나인 이 슬로건은 '실천이 진리를 검증한다'라는 말로 압축한 마오의 '실천론'에서 차용하고 그 이론적 골격을 빌어왔다.

이런 점에서 보면 덩리췬은 마오이즘의 좌우파 어느쪽에 속하지 안은 '중도파'로 자리매김해야 할 것 같다.

덩리췬이 한 세기의 장수를 누리고 2015년 사망했을때 시진핑 총서기를 비롯한 중국공산당 상무위원들 모두가 조문하고 존경심을 표현했다.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공산중국은 마오쩌둥이 세운 나라라는 점을 일깨워주었다.

2년 뒤 시진핑은 '마오라는 태산', '덩샤오핑 이라는 더 웅장한 더 높고 큰 산'의 그늘에 있지만 새로운 산을 만들었다.

그 산의 높이와 규모는 산에서 멀리 떨어진 뒤에야 정확히 가늠할 수 있다. '시진핑'은 멀리 아스라한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보다 압도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단지 그 산에서 몇발짝 걸어가 있을 뿐이다.<스위프트-버크왈드>

유엔 이스라엘 가입 승인, 샴 왕국 국호 타이(태국)로 변경, 서독 하원 동서독 기본조약 비준, 유엔 핵확산 금지조약 무기한 연장 결의,인도 3차례 핵실험 공표, 인도 인구 10억 돌파


1978년 5월11일 광명일보(光明日報)가‘실천이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표준(實踐是檢驗眞理的唯一標準)’이라는 제목의 특약 평론원(特約評論員)'의 글을 게재했다.

이 글을 신화통신이 당일 보도했으며 다음 날인 12일에는 인민일보와 해방군보에도 동시에 전재됐다.

문장은 마르크스주의의 실천 문제와 관련하여 마르크스주의는 절대불변의 교조가 아니라 실천을 통해 내용을 풍부히 해야 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성경(聖經)상에 기록된 것은 반드시 옳다”라는 잘못된 인식이 존재함을 지적하고 이는‘4인방’이 인민의 정신에 가한 족쇄로 반드시 분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장이 발표되자 많은 당내 인사가 지지하였으나 당 주석 화궈펑(華國鋒)과 마오쩌둥(毛澤東)의 경호를 책임졌던 정치국 상무위원 왕둥싱(汪東興)은 이에 동조하지 않았다.

화궈펑은 당중앙 선전부 책임자에게 진리 표준 문제에 대한 토론에 대해 “의견을 표시하지도 말고(不表態), 개입하지도 말라(不卷入)‘라는 지시를 내렸다. 묵살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왕둥싱은 “이 글이 겨누는 것은 실제로 마오의 사상이다”라며 “이것은 어떤 당 중앙의 의견이냐?"며 노골적인 반발과 함께 토론에 제동을 걸려 하였다.

'실천은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표준'이란 말은 덩샤오핑이 '실천이 진리를 검증한다'이라는 마오쩌둥의 말을 변용하여 처음 제기했다.

마오의 말을 인용하여 마오 노선과 정책을 맹목적으로 추진해온 화궈펑과 왕둥싱 등 이른바 범시파(凡是派)를 공격했다.

덩은 1977년 7월17일 3차복권을 통해 정치국 상무위원과 당 부주석에 선출된 뒤 행한 중앙위 연설서 이를 말했던 것이다.

당 주석 화궈펑은 이를 묵살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화궈펑이 선전부문을 장악하고 있어 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덩의 영향력 밖에 있었다.

덩의 노선 공세 확산이 화궈펑의 무대응 전략으로 저지되자 덩샤오핑 지지 세력은 비공산 민주당 제정파의 연합 기관지로 지식인 게층을 주독자로 하는 광명일보를 통해 선전 공세에 나선 것이다.

광명일보의 논평이 나온 뒤 정부 산하 신화통신이 보도하고 이를 근거로 당기관지 인민일보와 인민해방군 기관지 해방군보가 뒤따른 것은 덩 세력이 당 선전 매체와 군 선전매체를 접수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이러한 일련의 덩 세력의 이데올로기 공세의 선전 논리 설계자는 훗날 '좌왕(左王)', '지하 총서기'로 불리게 되는 덩리췬(鄧力群)이었다.

[Pensées] 三金’과 ‘三鄧’ 그리고 ‘벌겋게 물든 서산’2015/02/26 20:36


상황이 이렇게 전개됨에도 불구하고 화궈펑은 계속 묵살 전략으로 대응했다. 반면 왕둥싱은 덩샤오핑을 우회적으로 지적하며 강하게 맞섰다.

화왕의 이러한 분열된 응전이 있자 덩샤오핑(鄧小平), 예전잉(葉劍英), 리센녠(李先念), 후야오방(胡耀邦) 등은 공개적으로 광명일보의 논평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을 발표 하였고 토론은 전국적으로 확대, 전개되어 나갔다.

6월에서부터 11월까지 중앙 당정군 각 부문, 대다수 성, 시, 자치구의 주요 책임자가 이에 관한 글 혹은 강화를 발표하였다.

이런 와중이던 이해 9월16일 덩샤오핑은 지린(吉林)성 시찰에서 행한 이른바 '지린 담화'에서 화궈펑과 왕둥싱의 '범시 노선'을 직접 겨냥하여 비판했다.

이는 문화대혁명 초기 조반파와 당권파 간 팽팽한 대립 국면이 당권파로 기울어지는 상황을 단번에 조반파 쪽으로 반전되게 한 마오쩌둥의 "사령부를 포격하라"를 연상하게 하는 덩샤오핑의 회심에 찬 승부수였다.

[今天歷史-9월16일] 덩샤오핑 兩個汎是 비판

결국'실천 유일 표준론'은 덩샤오핑의 집권을 가져온 이해 12월 개최된 11기 3중전회의 사상적 기조가 되었다.

덩샤오핑의 이런 권력 장악 정치 공학 수순은 다름 아닌 마오쩌둥이 중앙에서 멀리 떨어진 상하이시의 문회보를 통해 당권파인 류사오치 세력이 장악한 당 중앙과 그 선전매체를 포위 공격한 것과 본질적으로 같다

4인방의 야오원위안은 상하이시 당위원회 기관지 해방일보의 편집위원이었으나 그의 '심편 해서파관을 비판한다'라는 글을 메이저인 해방일보가 아닌 지식인을 주 독자로 한 문회보에 실었던 것과 덩샤오핑이 인민일보에 비해 마이너인 광명일보를 활용한 것과 같다.

마오의 '외곽 때리기' 첫 타격 수단이 비중앙과 비주류인 상하이의 문회보였다면 덩 버전 '외곽 때리기'의 첫 타격 수단 역시 '들러리' 광명일보였다.

덩샤오핑은 1992년 남순강화 때도 다시 한번 이런 수순을 밟았다.

정치공학 측면에서 마오쩌둥은 '실패한 덩샤오핑'이고 덩샤오핑은 '성공한 마오쩌둥'이다.

1937년 = 일제는 조선인 노동자 10만여명을 만주로 강제 이주시키기로 결정하였다.

1967년 = 중국의 문화대혁명에 영향을 받은 홍콩의 좌파 노동자들이 폭동을 일으켜 영국 홍콩 총독부가 주룽(九龍)지구에 계엄을 선포했다.

세계사속의 오늘

유엔총회에서 37표 대 12표의 표결로 이스라엘의 유엔 회원국 가입을 승인하였고 같은 날 샴 왕국이 국호를 타이로 변경했다(1949).

서독 하원이 동서독 기본조약을 비준했다(1973). 유엔이 핵확산금지조약의 무기한 연장을 결의하였고(1995). 인도가 3차례의 지하 핵실험 실시를 공표했다(1998).

인도 인구가 10억을 돌파했다(2000).

2018/05/11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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