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8/05/28 03:59



[今天歷史-5월15일] 고르바초프 중국 방문, 장쩌민 소련 방문

소련 아프간 철수 군사개입 종식, 美 오키나와 27년 군사통치 종식

1989년 5월 15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중국을 방문했다.

당시는 한 달 전인 4월 15일의 후야오방(胡耀邦) 중국 공산당 전 총서기의 급서로 야기된 천안문 민주화 시위가 절정을 이루고 있을 때여서 천안문 광장은 학생들에 의해 장악된 상황이었다.

중첩된 세기적 정치 이벤트를 바라보며 세계는 '고르바초프의 길’ 이 사회주의의 유일한 재생의 길이라는 ‘착시현상’에 빠졌다.

정치개혁 우선의 소련과 경제개혁에 초점을 맞추고 정치개혁은 외면한 중국 간의 개혁 이념대결에서 소련이 승리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고르바초프는 불과 2년 7개월 뒤인 1991년 12월 25일 권좌에서 물러났고 이로써 소련 공산주의 체제도 완전히 무너졌다. 그러나 6·4 유혈진압을 일으켜 한동안 국제사회의 ‘왕따’가 되었던 중국 공산체제는 존속할 뿐만 아니라 날로 영향력을 확대했다. 급기야 21세기에 접어들어 18년째를 맞은 지금에는 미국과 어깨를 겨루는 G2로 부상했다.

하부구조(경제)가 상부구조(정치)를 결정한다는 통속화한 마르크스 이론에 딱 접합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고르바초프의 방중은 중국이 관계개선의 선결과제 중의 하나로 제기하였던 소련군의 아프가니스탄 철군이 시작된 1988년 5월 15일로부터 꼭 1년 뒤에 이루어졌다. 소련군의 아프간 철수는 고르바초프의 결단에 따른 것이다.

또한 고르비의 방중 만 2년 뒤인 1991년 5월 15일 장쩌민(江澤民) 중국 공산당 총서기 겸 군사위 주석이 소련을 방문했다. 장쩌민의 소련 방문은 고르비 방중에 대한 답방 형식이었다.

장쩌민과 고르바초프는 양당이 독립자주, 완전평등, 상호존중, 내부문제 불간섭의 원칙에 따라 교류를 한다는 데 합의하였다. 또한 양 지도자는 중소 양국 동단(東端) 국경선 협정 서명식에 참석하였다.

이 고르바초프와 장쩌민의 만남은 중국과 소련의 공산당 최고 지도자간의 마지막 대면이었다. 고르바초프는 장쩌민과의이 회동 3개월 뒤인 이해 8월 소련 공산당 보수파의 불발 쿠데타 이후 소련 공산당 서기장 직에서 물러났으며 12월에는 소련마저 해체되었고 고르비 역시 대통령 직에서 사임했다.

소련이 해체된 지 1년 3개월 뒤인 1993년 3월 전인대에서 장쩌민은 국가주석에 취임했는데 이는 공산당 당수가 대통령을 겸직하는 당정 최고지도자 일원화라는 고르비의 개혁을 중국 공산당도 수용한 것이다. 이는 소련의 해체가 개혁의 선후와 개혁의 속도에 있음을 중국 지도부가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1988년 = 소련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가 시작되었다. 이는 1988년 4월 체결된 ‘아프간 문제 해결을 위한 제네바 협정’에 따른 것이다.

협정은 1988년 5월 15일부터 3개월 이내에 아프간에 주둔한 병력의 절반을 철수시키고 9개월 내에 병력 11만 5,000명을 전부 철수하도록 규정했으며 소련은 고르비의 방중 3개월 전인 1989년 2월 15일 이를 완료함으로써 약속을 이행했다.

[今天歷史-2월 15일]東北抗日聯軍, 소련 아프간 철군 완료

<세계사 속의 오늘

미국이 오키나와(沖繩)를 일본에 반환함에 따라 27년간의 군사통치를 종식시켰다(1972).


2018/05/15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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