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8/10/16 17:15



[今天歷史-5월17일] 류사오치 추도대회 거행

미국 대법원 인종분리 정책 위헌 판시, 미국 수중 핵실험 성공, 한국 쿠데타 군부 국회 해산, 한국 신군부 계엄령 전국 확대와 김대중 연행

1980년 5월17일 류사오치(劉少奇)의 추도대회가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서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그가 4인방의 박해로 감옥 병실에서 비참하게 사망한지 10년6개월 여만이다.

추도대회는 당 주석 화궈펑(華國鋒)이 주재하였으며 미망인 왕광메이(王光美) 등 가족, 친지 및 당정 고위간부 등 1만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천안문 광장, 각급 기관, 부대, 공장, 상점, 각급 학교 등에서는 반기가 게양됐다.

덩샤오핑(鄧小平) 당 부주석 겸 국무원 부총리가 추도사를 읽었다. 덩은 1976년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사망했을 때에도 역시 추도사를 읽었다.

문화대혁명 당시 류사오치는 '1호 주자파'로 홍위병에 지목당했으며 저우언라이는 4인방이 '비공비림 운동'의 '살아 있는 공자'로 공격받았다.

덩샤오핑은 '2호 주자파'와 '저우언라이의 후계자'로 공격받았으나 마오의 사후까지 살아남아 류사오치와 저우언라이가 이어 온 실용주의 노선을 부활시켰다.

문화대혁명이 발발할 당시 당 부주석과 국가주석을 겸임하였으며 문혁 발동 이전 마오쩌둥(毛澤東)에 이은 2인자이자 후계자였던 류사오치는 문혁이 본격적으로 발동한 1966년 5월 이후 4인방과 홍위병 세력으로부터 맹렬한 공격을 받아 결국 모든 직책을 박탈당한 뒤 혹심한 박해를 받는 가운데 1969년 11월12일 허난(河南)성 카이펑(開封)에서 사망했다.

[今天歷史-11월12일] 김일성 전후 첫 방중, 孫文, 劉少奇

1978년 12월 11기 3중전회(18일~ 22일)를 통해 실권을 장악한 덩샤오핑은 11기 5중전회에서 류사오치에 대한 복권을 실현한 뒤 성대한 추도대회를 열기에 이른 것이다.

추도대회에 앞서 정저우(鄭州)에 보관되어 있던 류사오치의 유골이 베이징으로 옮겨졌으며 추도대회 후 유언에 따라 바다에 뿌려졌다.

추도사를 읽은 덩샤오핑도 1997년 2월 사망한 뒤 류사오치의 예를 좇아 화장되어 그의 유언대로 홍콩 앞 바다에 뿌려졌다.

저우언라이 역시 화장되어 중국 산하에 뿌려졌다. 이들 세 사람은 미이라로 천안문 광장에 누워 전시되고 있는 마오와는 전혀 반대의 길을 간 셈이다.

세계사 속의 오늘

미국 대법원이 공립학교에서 인종분리 정책을 위헌으로 판시했으며(1954), 미국이 수중 원폭실험에 성공했다(1955).

우리나라 역사 속의 오늘

박정희 소장을 중심으로 한 군부 쿠데타로 설치된 군사혁명위원회가 국회해산, 정당활동 정지, 국무위원 출두 등을 명령했고(1961), 이로부터 19년 뒤 같은 날 정부가 1979년 10월26일 발생한 박정희 대통령의 시해 사건으로 발령된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계엄사령부는 계엄포고 10호를 발표한 뒤 김대중을 내란 음모 혐의로, 김종필 씨를 부정축재 혐의로 체포했다(1980).

이로부터 17년 7개월 뒤인 1997년 12월 김대중과 김종필은 이른바 'DJP 연합'을 결성, 양김 세력을 중심으로 한 공동정부 수립을 슬로건으로 내세워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 정권을 장악했다.

2018/05/17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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