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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point]중국, 대미 문제서 ‘양보’란 말을 할 수 없는 이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겸 당 총서기는 2014년 9월3일 열린 '중국인민 항일전쟁 겸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69주년' 좌담회에서 이렇게 밝혔다.
"중국 인민 항일전쟁의 위대한 승리로 일본 군국주의가 중국을 식민지화, 노예화하려는 기도를 철저히 분쇄해 국가 주권과 영토 보전을 사수했다. 근래 이래 외세 침략에 대한 저항에서 패배해온 민족적 굴욕을 철저히 씻었다. 그래서 세계에서 중국의 대국으로서 지위를 다시 확립하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밝은 미래를 열게 됐다."
중국 최고 지도자의 이 같은 발언에는 민족적 굴욕에서 벗어나는 것이 대국으로서 대두하기 위한 전제조건이고 대국으로서 대두하는 것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달성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라는 정치적 논리가 적나라하게 관통하고 있다.
'일대일로(一帶一路)'와 '인류공동체' 등 대외적인 전략을 내세우면서 세계의 대국으로 대두하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것은 최대 목표로 설정한 시진핑은 '백년치욕(百年恥辱)'이라는 개념, 논리를 최대한 이용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 강대국에 대한 국민의 대항심과 굴욕감, 반발심을 부채질하면서 역사적으로 중국에 대해 '민족적인 굴욕'을 주었던 '제국주의자'에 용감히 맞서는 자세를 국민에 보여줌으로써 중국공산당의 정통성과 자신의 장기 집권 당위성을 확보, 강화하려고 한다.
영국 역사가이자 철학자 아이자이아 벌린은 내셔널리즘(민족주의)에 관해 "민족적 감정의 강렬한 지원을 얻지 못하면 사회주의의 전체적 설계를 실행하는 건 불가능하다. 정권을 탈취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설파했다.
중국공산당은 이미 정권을 장악해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지 내년으로 70년이 된다. 애초의 혁명당에서 집권당으로 전환한지 오래됐다.
그런데도 민족적 감정의 강렬한 지원을 얻어 사회주의 전체적인 설계를 실행하려는 방식은 지금까지 버리지 못하고 있다.
시진핑 정권 들어서는 대외적인 공세를 확대하고 심화하는 속에서 그런 경향은 더욱 현저해지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공산당 정권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5월18일 중국에서 중국 굴기, 강대국에 대한 저항에 갈채를 보내는 대중 여론과 보수 논객의 지지를 받는 환구시보(環球時報)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류허(劉鶴) 부총리를 만났을 때 협상에 전환점이 생길까"라는 제하의 사설을 내놓았다.
사설 중에는 "미국 측이 요구하는 2년 사이에 대미 무역흑자를 2000억 달러 감축하라는 전혀 터무니없는 주장에 중국 측은 결단코 응해서는 안 된다. ……중국 측도 미국 측처럼 이번 교섭에서 성과를 남기고 싶다고 생각하겠지만 중국 대표단이 '불평등 조약'을 받아들고 귀국할 수는 없다. 중국사회는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대목이 있다.
환구시보는 미국 측이 요구하는 2000억 달러 무역흑자 삭감을 시진핑이 받아들이는 것은 '매국 행위'이자 외국 열강이 강요한 '불평등 조약'에 굴복한다는 의미라는 주장을 편 것이다.
같은 말 외교부 루캉(陸慷) 대변인은 정례 기자회견에서 '2000억 달러 감축'이라는 정보가 사실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 내가 아는 한 관련 협의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교섭은 건설적이다"라고 답해 중국 측이 2000억 달러 무역적자 삭감에 동의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블룸버그 통신은 19일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정책 보좌관인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회의 위원장이 기자들에 "중국 측이 최소한 2000억 달러의 무역흑자를 줄이겠다고 제안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했다.
관련 뉴스와 정보도 엇갈리고 있다. 무엇을 얼마만큼 감축할지, 어떤 수단을 통해 줄일지 등 상세하고 기술적인 문제를 놓고 미중 간 상당한 괴리를 엿보인다.
미중 2라운드 무역협상 후 하루 늦게 양국은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효과적인 조치를 취하면서 미국 측의 무역적자를 실질적으로 줄이도록 한다", "지적재산권 보호에서 협력을 확대한다", "미국의 농산물과 에너지 수출을 유의미하게 증대시킨다" 등이 공동성명에 명기됐다.
그러나 여기에는 구체적인 수치와 일정표가 일절 적혀있지 않다.
류허는 지난 3월 방미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트럼프 대통령을 예방하고 공동성명까지 내놓았다.
"금번 중미 경제무역 교섭의 최대 성과는 쌍방이 무역전쟁을 하지 않고 상호 관세의 부과를 정지한다는 합의에 도달한 것"이라고 류허는 신화통신에 언명했다.
류허의 카운터파트인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은 20일 폭스TV 프로그램에 출연해 "미국은 무역전쟁을 정시하고 관세 부과를 일단 보류하는데 합의했다. 이 틀을 이행하고자 계속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동성명은 문면에 대한 해석은 미중 양측이 자신에 유리하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많이 두었다.
이로써 양국 간 최대 현안의 불씨 크기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어 북한 핵문제와 대만문제 등으로 갈등을 벌여온 관계가 완화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중국 사회와 여론도 류허의 귀국을 "미국에 무릎 꿇지 않는 애국전사"로서 맞이할 공산이 농후하다.
하지만 앞으로 어떤 형태로든 "실은 중국 측이 미국 측 요구를 수용하는 식으로 타협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확산하면 중국민의 비판 창끝이 미국에서 중국공산당으로 향할 것은 분명하다.
이는 결과적으로 중국공산당의 정통성을 위협하는 사태로까지 비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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