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8/12/19 16:56



톈안먼 사태 당시 시진핑 푸젠성서 학생과 대화

유혈 사태로 끝난 1989년 6월4일 톈안먼(天安門) 사건을 종착역으로 하는 민주화 시위가 벌어졌을 당시 푸젠(福建)성 지구 서기이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겸 당 총서기가 현지 대학생들과 대화를 시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홍콩 명보(明報)와 중앙통신은 톈안먼 사건 29주년을 맞아 4일 현재 중국 최고 지도부의 그때 행적을 추적해 보도했다.

중국 최고 권력기관인 당중앙 정치국위원 가운데 군직에 있지 않은 시진핑 국가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총리를 포함해 23명이 민주화 시위 동안 어떤 자리에서 무엇을 했는지를 이들 매체는 소개했다.

시진핑 주석은 푸젠성 닝더(寧德) 지구 당서기라는 지방 수장으로서 현지 최고학부인 닝더 사범전과 학교를 직접 방문해 각지에서 일어난 민주화 시위에 흔들리는 학생들과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그는 비록 베이징에서 먼 임지에 있었으나 가족이 사는 자택이 베이징에 있기 때문에 민주화 시위 정황을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었다고 매체는 전했다.

시 주석이 닝더사범에서 학생들과 얘기한 구체적인 내용은 전해지지 않지만 과격한 시위와 행동을 자제하도록 설득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리커창 총리는 공산주의 청년단(공청단) 중앙서기처 서기 겸 전국 청련(靑聯) 부주석으로 베이징에 있으면서 민주화 시위를 생생히 지켜보았다.

리 총리는 청년 문제를 관장하는 조직의 책임자 자격으로 당시 지도부를 도와 단식투쟁을 벌이는 학생들에 중단을 권유하는 역할을 맡았다.

톈안먼 사태 때 베이징에는 리 총리 이외에도 4명이 더 있었다.

광명일보(光明日報) 부총편집이던 왕천(王晨) 정치국위원 겸 전인대 상무위 부위원장, 국가계획위 산업정책사 산업결구처 부처장인 류허(劉鶴) 정치국위원 겸 부총리, 칭화대학 당위 학생공작부장 겸 공청단 서기이던 천시(陳希) 정치국위원 겸 중앙조직부장, 중앙당교 교장, 외교부 번역실 참찬 겸 처장이던 양제츠(楊潔篪) 정치국위원 겸 중앙외사공작위 판공실 주임이다.

이중 학생 민주화 운동이 대학과 공청단, 언론기관을 중심으로 활발히 전개됐기 때문에 리커창 총리, 왕천 부위원장, 천시 중앙조직부장은 혼란의 와중에 휩쓸렸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특히 천시 중앙조직부장 경우 민주화 시위에 참여했을 칭화대학 재학생에 대한 지도를 담당하는 위치에 있는 탓에 그렇다.

그러나 천시 조직부장은 이후 미국 유학까지 가는 등 승승장구한 점에서 지도부의 방침에 따라 처신한 것으로 짐작된다.

리잔수(栗戰書) 정치국 상무위원 겸 전인대 상무위원장 경우 허베이성 공청단 서기, 왕후닝(王滬寧) 정치국 상무위원 겸 중앙서기처 서기는 상하이 푸단(復旦) 대학 정치과 주임교수, 후춘화(胡春華) 정치국위원 겸 부총리는 티베트 자치구 부서기로서 지방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들도 현지에서 뜨겁게 달궈진 민주화 시위의 열기를 피부로 느끼면서 다른 지도부보다 톈안먼 사건에 대한 깊은 인상을 각인시켰다고 한다.

3대 지도부에 걸쳐 책사로 활동하는 왕후닝 상무위원은 1989년 미국에 방문 교수로 갔다가 귀국한 후 민주화 시위 기간을 피해서 3개월간 프랑스에 머무는 눈치 빠른 처신을 했으며 끝내 시위에 대한 지지 표명을 하지 않았다.

2018/06/04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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