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8/11/13 08:45



[인물- 저명 언론인] 쩌우타오펀(鄒韜奮) 쩌우자화 전 부총리 부친

1895년= 1991년 상하이 서기로 있던 개혁파 주룽지(朱鎔基)를 부총리로 발탁할 때 보수파 후원 아래 함께 부총리에 임명되었던 쩌우자화(鄒家華)의 부친이며 저명한 언론인이자 정치평론가, 출판인으로 활약한 쩌우타오펀(鄒韜奮)이 태어났다.

푸젠(福建)성 융안(永安)에서 태어났으나 조적은 강시(江西) 위장(余江)이다. 본명은 언룬(恩潤)이며 타어펀은 필명이다.

상하이(上海) 성 요한 대학을 졸업했으며 27살이던 1922년 중화직업교육사(中華職業敎育社) 편집주간에 임명되어 월간지 ‘교육과 직업’을 발간하면서 생을 마칠 때까지 언론인으로서의 외길을 걸었다.

쩌우타오펀은 1931년 만주사변 이후 항일전쟁에 미온적이던 국민당 정부에 맞서 항일구국을 촉구하는 글을 발표하였으며 1932년 ‘생활서점’을 설립, 수많은 좌파서적을 발간하였다.

1933년 국민당 정권의 박해로 국외로 나간 그는 영국, 소련과 미국 등을 전전하며 주간지 ‘생활’을 통해 총 30여만 자에 달하는 외국통신문을 기고했다.

1935년 8월 귀국한 그는 1936년 3월 박해를 피해 다시 홍콩으로 활동 무대를 옮겼고 그해 8월에는 상하이로 돌아왔다. 이 기간 동안에도 그는 각종 잡지를 창간하며 언론활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국공합작 기간인 1938년 국민당 참정회 참정원으로 초빙되어 충칭(重慶)에서 항일전을 고취하는 언론활동을 하였으나 그의 잡지가 판금되자 1941년 2월 참정원을 사직하고 홍콩으로 다시 나와 언론활동을 계속했다.

이후 공산당 근거지 여러 곳을 방문했으며 1943년 ‘국가의 일에 대한 호소(對國事的呼訴)’를 발표하며 장제스(蔣介石) 정권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1944년 7월 24일 이암(耳癌)으로 사망했다.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그의 유언에 따라 중국 공산당 정식 당원으로 사후 승인하였다.

쩌우타오펀의 글과 평론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켰으며 그가 창조적으로 시도한 각종 편집 방법들은 후의 언론 종사자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2018/08/07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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