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8/11/13 08:45



[인물-학자 이데올로그]후성(胡繩) 사회과학원 원장 역임

<약전>

2000년 11월 5일 중국의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이며 역사학자로 장기간 중국 사회과학원 원장을 지낸 (1985년~1998년) 후성(胡繩)이 사망했다. 1918년 생으로 향년 82세였다.

장쑤(江蘇)성 쑤저우(蘇州) 출신인 후성은 1934년 베이징(北京)대 철학과에 입학하였으며 1935년 9월부터 공산당 활동에 참여하였다. 항일전쟁 기간 중 주로 언론활동에 종사하였으며 1948년에 아편전쟁 이후 80여년 간의 중국 정치를 다룬 ‘제국주의와 중국 정치’라는 역저를 내놓았다.

공산정권 수립 후에는 인민출판사 사장, 중공중앙 선전부 비서장, 홍기 잡지사 부총편집 등을 역임하며 마오쩌둥(毛澤東)선집 편집에 참여하였다. 1950년대 초기 그가 저술한 ‘중국근대사제강(中國近代史提綱)’과 ‘중국 근대역사의 시대구분문제(中國近代歷史的分期問題)’ 등은 이후 중국 근대사 교육과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

문화대혁명 당시 하방(下放)되어 간부학교에서 노동개조운동을 받았으나 1973년 국무원 정치연구실의 책임자 중의 한 사람으로 임명되어 연구활동에 계속 종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마오쩌둥의 저작들을 정리하는 일과 함께 문화대혁명 와중에서 기능이 마비된 중국과학원의 사회과학부를 복구하는 업무에 종사했다. 이는 1977년 5월 사회과학부가 중국 사회과학원으로 중국 과학원에서 분리, 독립하는 기초가 되었다.

1981년에는 총 70여만 자에 달하는 ‘아편전쟁으로부터 5.4 운동까지’라는 저작을 내놓았다.

개혁개방 이후 ‘건국 이래 당의 약간 역사 문제에 관한 결의’, ‘홍콩 특별행정구 기본법’, ‘마카오 특별행정구 기본법’ 등 당과 국가의 중요 문건의 기초 작업을 지휘하였다.

후성은 사회과학원장으로 오랫동안 재직하면서 ‘쌍백(雙白 : 百花齊放 百家爭鳴)’ 방침 아래 양호한 학술 환경을 만드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홍콩 증시는 10일 미중 무역마찰 확대 경계감으로 보합 개장하고서 중국 증시 동향에 따라 소폭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항셍지수는 이날 전일 대비 7.43 포인트, 0.02% 오른 2만8614.73으로 장을 열었다.

홍콩 증시 상장 중국기업주 중심의 H주 지수는 전일보다 2.54 포인트, 0.02% 내린 1만1017.39로 출발했다.

주요 기업 결산 발표가 본격화하는 가운데 실적 호조 종목에는 매수가 선행하고 있다.

다만 전날 뉴욕 증시 약세에 따른 매물도 출회함에 따라 중국 증시의 동향을 지켜보자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

9일 순익 증대 결산을 내놓은 중국 통신주 중국이동, 내주 분기 결산을 공표하는 시가 총액 최대 인터넷 서비스주 텅쉰(騰訊) HD가 오르고 있다.

중국 부동산주도 동반 상승하고 있으며 홍콩 부동산주 역시 견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미중 무역마찰의 장기화 우려가 여전하고 다음주 나오는 중국 월간 경제지표의 내용을 보자는 관측에 금융주와 자원주는 나란히 내리고 있다.

항셍지수는 오전 10시37분(한국시간 11시37분) 시점에는 85.93 포인트, 0.30% 내려간 2만8521.37을 기록했다.

H주 지수는 오전 10시38분 시점에 9.58 포인트, 0.09% 떨어진 1만1010.35로 거래됐다.

2018/08/11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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