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8/12/16 19:35



[今天歷史-9월16일] 덩샤오핑 兩個汎是 비판

1956년의 대만 인구센서스

1978년 9월 16일 덩샤오핑(鄧小平)이 지린(吉林)성 시찰 도중 행한 연설에서 ‘양개범시(兩個凡是)’에 대해 재차 비판을 가했다.

지방 시찰 기회를 통해 당권 세력의 정책 노선에 대한 비판을 강화하여 본격화하는 방식은 마오쩌둥(毛澤東)이 문화대혁명을 발동한 방식이었고 또 덩 자신이 훗날 남순강화(南巡講話)를 통해 다시 또 한 차례 활용한 방식이었다.

‘양개범시’라는 용어는 당시 당 주석, 국무원 총리, 당 중앙 군사위 주석으로 당정군의 최고 직위를 모두 차지하고 있던(국가 주석은 문화 대혁명 시기 폐지됐다가 덩샤오핑 집권 이후 부활된다) 화궈펑(華國鋒)이 1977년 2월에 제시한 두개의 구호에서 비롯됐다.


‘마오 주석이 결정한 정책이라면우리는 모두 이를 결연히 옹호해야 한다.

(汎是毛主席作出的決策, 我們都堅決擁護)’

‘마오 주석의 지시라면 우리는 모두 시종일관 변함없이 이를 따라야 한다.

(汎是毛主席指示, 我們都始終不?地遵循)’

이 슬로건은 4인방의 축출에도 불구하고 문화대혁명을 발동한 마오쩌둥의 노선은 수정없이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 슬로건을 들고 나온 화궈펑과 왕둥싱(汪東興) 등 화궈펑을 지지하는 ‘반(反)4인방 문혁 세력’은 이후 ‘범시파(汎是派)’ 혹은 ‘범파 (汎派)’라고 불리웠으며 덩샤오핑을 중심으로 하는 실사구시파와 대립하였다.

덩샤오핑은 1977년 7월 17일 정치국 상무위원, 당 부주석으로 복귀한 뒤 당 중앙위 연설에서 마오쩌둥의 사상은 개별적인 자구로 해석해서는 안되며 마오 사상의 전 체계를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실사구시를 강조하였다.

덩이 화의 노선을 공격하면서 들고 나온 말은 ‘실천은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표준(實踐是檢驗一切眞理的唯一標準)’이라는 것이었다.

‘실천이 진리를 검증한다(實踐檢驗眞理)’라는 마오쩌둥의 말을 변용한 이 말은 마오의 정책과 지시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화의 ‘양개범시’ 슬로건을 겨냥했다.

덩샤오핑은 ‘지린강화’에서도 마오쩌둥을 이용해 양개범시 노선을 공격했다. 덩은 “마오쩌둥 사상의 기치를 어떻게 높이 드느냐가 중요한 문제인데 ‘양개범시’는 마오의 기치를 진정으로 높이 드는 것이 아니고 형식적으로 높이 드는 것이며 가짜로 높이 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덩은 이어 이러한 노선추구를 계속하는 것은 마오 사상에 손해를 입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오 사상의 기본점은 ‘실사구시(實事求是)’이며 마르크스주의의 보편적 원리를 중국 혁명의 실천과정에 결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마오 사상의 정수(精髓)는 ‘실사구시’ 4글자라고 덩은 강조했다.

덩샤오핑은 마오쩌둥 사상의 기치를 높이 들고 각종 방침과 정책을 처리할 때는 모두 실제에서 출발하는 자세를 견지해야만 한다고 말하고 ‘양개범시’의 관점은 부정확한 것이며 마오쩌둥이 살아 있다면 그 역시 이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덩샤오핑의 이러한 이론적 공세는 이해 12월의 11기 3중전회를 겨냥한 것이었으며 12월 18일부터 22일까지 진행된 11기 3중전회에서 실사구시파가 양개범시파에 승리를 거둠으로써 덩샤오핑 시대가 개막되었다.

1956년 = 대만에서 인구센서스가 실시됐다.

이날 0시를 기준으로 한 대만 상주인구(국민당군과 외국 주재 인원 포함)는 총 987만 4,450명이었으며 남자는 528만 2,317 명이었다. 여성은 459만 2,133명으로 남자가 69만여 명 더 많았다.

1956년 인구 센서스를 실시한 이유는 1950년대 들어 와 출생률이 급증한데 따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였으며 1960년대부터 가족계획 운동이 본격적으로 실시됐다.

2018년 현재 대만 인구 총수는 2천 369만 4089명으로 집계됏다.

민족 구성은한족이 95%이다.

좀더 세분하면 1945년 이전 대만에서 태어난 본성인이
80%이고 대륙에서 태어난 사람과 그 후손으로 대륙을 조적지로 한
외성인이 15%다.
그밖에 대만신주민이 3.1%2고 대만 원주민
2.4%다 신주민은 1990년 대 이후 동남아 지역에서 이주한 화교와 대륙에서 이주한 사람들을 지칭한다..

인구밀도는 650명/km
2이며
출생율은 1.12명 / 세계 222위다.

3년 전인 2015년 5월 말 현재 대만 인구는 전년보다 0.3% 6만9662명 증가한 2346만명에 달했다.
내정부가 발표한 인구통계에 따르면 대만 인구는 전년에 비해 1년간 하루 91명꼴로 인구가 늘어났다.
남성 인구는 전년에 비해 0.16% 1만8798명 많은 1170만명, 여성은 0.43% 5만864명 는 1175만명을 기록했다.
성비를 보면 여성 100명당 남성이 99.57로 여초 현상을 보였다.
여성 인구가 남성을 처음 앞지른 건 2013년 11월로 이후 그런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대만에서 여초 현상의 주된 이유로는 외국인 여성 배우자가 증대, 여성 평균 수명 신장, 태아 성별검사 금지가 꼽혔다.
인구 신장률이 가장 높은 곳은 5%의 진먼(金門)현이고 그 뒤를 1.68%의 타오위안(桃園)시, 1%의 신주(新竹)현이 이었다.
반면 자이(嘉義)현은 인구가 0.97% 감소했고, 난터우(南投)현도 0.79%, 핑둥(屛東)현은 0.73% 각각 줄었다

그 한 해 전인 2014년 6월 말 현재 인구는 2339만2036명으로 집계됏다. 이는 작년 동기보다 0.4% 감소한 것이었다.

남자는 1168만5478명, 여자가 1170만6558명으로 여초(女超) 상황이다.
2014년 남녀 인구 구성 비율은 49.95 대 50.05이었다.

2008년 당시 대만의 인구는 2,304만 6,177명이었고 그 중 남성은
1,162만7,353명, 여성은 1,141만8,824명으로 그사이 여아 선호의 지속으로 남초에서 ㅕ초로 전환된 것이다.




2018/09/16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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