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8/12/16 19:35



[今天歷史-9월19일] 6자 9.19 공동성명

鄧 군 현대화 선언. 아프간 영국으로부터 독립, 아르헨 페론 정권 군부 쿠데타로 붕괴, 소련 북한 주둔군 철수 계획 발표

2005년 9월 19일 남북한과 미, 중, 러, 일 등 북핵 문제해결을 위한 6자회담 각국 대표들은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 공동성명은 한반도에서 평화적 방식으로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이룬다는 목표를 재확인했다.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프로그램의 포기를 약속하고 미국은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음을 확인했다. 5개국이 에너지 지원 의지를 밝히고 경제협력을 통한 대북지원을 약속하는 것 등이 성명의 주요 내용이었다.

핵포기와 체제보장+經援 교환 2005/09/19 15:18

[4차 6자회담] 공동성명 2005/09/19 15:28

1981년 덩샤오핑(鄧小平) 당 중앙군사위 주석이 화베이(華北) 모 지역에서 있은 군사검열식에서 연설을 통해 인민해방군의 장비개선과 현대화 방침을 밝혔다.

군사위 주석직은 사실상 중국 권력의 최고 핵심 직책이다. 1935년 1월 쭌이(遵義)회의에서 마오쩌둥(毛澤東)은 바로 저우언라이(周恩來)로부터 중앙군사위 주석 직을 인계받음으로써(저우언라이는 군사위 부주석으로 강등되었다) 실질적인 중국 공산당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

당시 당수격인 총서기에 선출된 이는 마오가 아닌 장원톈(張聞天)이었다. 이어 최고 지도부의 집단 체제화의 단계를 거쳐 마오의 실질적 최고 지도자 위상 확립 등 과도기를 경과한 뒤 마오쩌둥이 당정군의 최고 직위를 모두 보유하게된 때는 쭌이 회의로부터 10년이 지난 1945년 6월 19일 7기 1중전회에서였다.

1981년 6월 덩샤오핑은 화궈펑(華國鋒)으로부터 당 중앙 군사위 주석 직을 인계받음으로써 중국의 최고실권자가 되었다. 덩샤오핑은 1989년 11월 그가 사실상 ‘임명’했던 3 번째의 총서기인 장쩌민(江澤民)에게 이 직책을 넘겨주었다.

장쩌민은 2002년 16차 당 대회(16대)에서 국가주석과 총서기 직을 후진타오(胡錦濤)에게 인계하면서도 군사위 주석 직은 계속 보유하다가 2004년 9월 후에게 인계했다.

후진타오는 2012년 말 18대에서 총서기,와 군사위 주석 직을 후임자인 시진핑에게물려주고 2013년 3월 전인대에서 국가주석 직도 물려줌으로써 당정군의 최고 직위를 한꺼번에 인계하는 최고 지도자 계승절차를 확립했다.

그러나 2017년 10월 19대와 2018년 3월 13기 전인대 1차 회의를 통해 시진핑 집권 2기를 출범시키면서 차기 총서기 유력 후보자를 상무위에 진입시키는 '격대지정제' 가 가동되지 않았고 국가 주석의 연임 제한 규정을 삭제함으로써 덩샤오핑이 시작하여 후진타오가 완성한 후게 승계 절차가 2002년 20대에서도 지켜질지 여부가 위태롭게 됐다.

. 세계사 속의 오늘

아프가니스탄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했고(1919), 아르헨티나의 포퓰리스트 독재자 후안 페론 대통령이 군부 쿠데타로 실각했다(1955).

우리나라 역사 속의 오늘

주한미군 사령부가 판문점 일대의 경비업무를 10월 1일부터 한국측에 이양하기로 한국측과 합의했고(1991) 소련이 북한주둔 자국군의 철수계획을 발표했다(1949).

2018/09/19 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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