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8/10/21 08:42



[용어 설명] 애로 호 전쟁 (2차 ㅏ편 전쟁)

<개요 발단에서 종결 처리>

- 1856년 2월광서 에서 프랑스신부 피살 삳건 발생
- 1856년 10월 애로 호 사건 발생

- 1857년 영국과 프랑스 청나라에 대해 선전포고
- 영블 연합군 광둥과 텐진 점령
- 텐진 조여체결
- 영불 연합군 베이징 위안밍위안 파괴
- 베이진 조약 체결

<상세 보기>

1856년 10월 중국 청나라 광저우 주강 앞바다에서 영국기를 게양한 중국인 소유 해적선 애로 호에 청나라 관헌이 승선하여 중국인 해적을 체포하는 일이 발생했다. 사건 당시 애로 호는 분명히 중국인의 소유였고 승조원 도 모두 중국인들이었으나 영국은 국기와 국호가 손상당했다고( 청나라 관리들은 해적들을 체포하는 과정엣 영국 국기를 바다에 던져 버렸다) 하면서 배상과 사과, 그리고 책임자의 처벌을 요구했다.

이것이 완강한 보수 배외파였던 양광총독(兩廣總督) 섭명침(葉名琛)에 의해서 거부되자 총독아문(總督衙門)을 포격했다.

당시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으며 다만 영원한 국익만이 있을 쁜이다'라는 말을 남긴 파머스턴이 총리를맡고 잇던 영국정부는 이를 를 계기로 공사의 베이징(北京) 주재권 획득과 내륙지방의 개방(여행권과 양쯔강揚子江의 개방), 아편무역의 합법화 등을 실현시키기 위해 전쟁을 시작하려 했다.

영국은 1차 아편 전쟁(1840 !~ 1842) 승리 결과로 맺은 난징 조약이 기대한 만큼의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줄곧 조약의 개정을 요구했으나 청국 정부는 이를 거부해왔다.

자유주의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영국 의회가 선전포고안을 거부하고 내각 불신임안을통과시켰다. 1차 아편 전쟁 때 외상을 맡아 전쟁을 주도햇던 파머스턴은 하원을 해산, 총선거를 통해서 신임을 재확인했다.
내각 불신임안을 주도한 이는 훗날 토리당(보수당)의 디즈레일리와 총리을 교대해 가며 영국의회 정치를 꽃 피우게 되는 휘그당의 글래드 스턴이었다. 그는 1차 아편 전쟁 때에도 "역사상 가장 더러운 전쟁"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이어 1857년 3월 3일 선전을 포고하고 원정군을 중국에 파견했다.

그러나 인도의 ‘세포이 반란’으로 인해 병력을 할애하게 되어 실질적으로는 그해 말에야 중국원정이 본격화 되었다.

또한 1856년 2월 광시(廣西)에서 프랑스인 선교사가 살해된 사건을 구실로 프랑스도 원정에 참가했다.

영불 연합군은 1858년 광둥(廣東)과 톈진(天津)을 점령하였고 톈진조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조약의 비준교환을 연합군 측이 베이징에서 강행하려고 했기 때문에 청군의 반격을 받았다. 영불 연합군은 1860년 2만 병력으로 원정을 재개하여 베이징을 점령하고 원명원(圓明園)을 파괴, 약탈하였다. 청나라는 이에 굴복하여 베이징조약에 조인하였다.

이 때 파괴된 원명원은 1990년대까지 파괴된 채로 방치한 채 제국주의 침략의 교육도량으로 활용하여 왔으나 20세기 말에 이르러 복구와 복원을 시작했다.

1857년 3월 3일 = 영국과 프랑스가 영국 국기 훼손과 선교사 피살 사건을 구실로 청나라에 선전을 포고하였다.

이 전쟁을 통상 '애로(Arrow)호 사건'으로 부르며 중국에서는 '2차 아편전쟁'으로 부른다.

1858년 6월 26일 = 청나라가 영국과 톈진(天津)조약을 체결, 추가 개항을 하고 아편거래를 합법화하였다.

1860년 = 10월 6일 베이징(北京) 교외에 위치한 청(淸) 황실의 이궁(離宮)인 위안밍위안(圓明園)을 점령한 영불 연합군은 이 곳에 있는 보물들을 마음껏 약탈한 뒤 자신들의 범죄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7일부터 9일까지 사흘간에 걸쳐 조직적인 방화로 이 곳을 폐허로 만들었다.

베이징 서북쪽 교외에 위치한 위안밍위안은 명(明)조에 세워졌으며 청조가 들어선 이후 강희제(康熙帝)가 훗날 옹정제(擁正帝)가 되는 넷째 아를 윤정(胤禎)에게 하사했으며 이 때 ‘위안밍위안’이라는 이름도 함께 하사했다.

이후 옹정, 건륭(乾隆), 가경(嘉慶), 도광(道光), 함풍(咸豊)제까지 5대 황제 150년 동안 웅대하고 경치가 수려한 이궁으로 건설되었다. 황제들이 여름이면 이곳에서 피서를 하며 정사를 보았기 때문에 ‘여름 궁전(夏宮)’으로도 불렸다.

위안밍위안은 주위가 10km이며 위안밍위안, 만춘원(萬春園), 장춘원(長春園)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중 위안밍위안이 가장 크다. 이 세 곳을 모두 합하여 위안밍위안으로 통칭한다.

중국정부는 1990년대 초반까지도 역사적 치욕을 상기하는 교육적 도량으로 활용하기 위해 파괴된 상태로 방치해왔으나 현재는 본격적인 복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완성된 복원 사업에 대해 유적지를 공원 수준으로 격하시켰다는 비난도 제기되고 있다.

圓明園 약탈품 狗頭像 홍콩서 경매에 2003/09/16 19:29

1860년 10월 24일 = 베이징(北京) 조약 체결.

이 조약은 1857년 이래의 애로전쟁(제2차 아편전쟁)을 종결시킨 조약으로서 영국, 프랑스와 개별적으로 체결됐다.

이 조약은 1858년의 톈진(天津)조약을 확인한 외에도

① 톈진조약에 규정된 배상의 증액(각 800만량)
② 톈진의 개항
③ 중국인 근로자의 모집과 도항의 승인
④ 영국의 주룽사지방(九龍司地方 :주룽반도 남단의시가지 부분)의 할양
⑤ 몰수한 가톨릭교회 재산의 프랑스로의 반환을 승인했다.

보수 강경 세력의 반대로 켼진 조약 이행을 거부하다 영불 연합군에 의해 수도 베이징이 침범 당하고 원명원이 파괴되기에 이르자 더욱 가혹한 조건을 받아들인 것이다.

한편 이해 11월 러시아와도 협정을 체결하여 1858년의 아이훈조약에서 국경확정 때까지 양국에서 공유(共有)하기로 한 우수리강 동쪽의 옌하이(沿海)지방을 러시아령으로 할 것, 쿠룬, 카유가르, 장자커우(張家口) 등을 무역지로서 인정할 것 등으로 되어 있다.

청나라 왕조는 이 조약 체결을 계기로, 보수 배외파가 궁정정변으로 인하여 후퇴하고 조약체결에 임했던 공친왕(恭親王) 혁흔(奕忻) 등이 중심이 되어 외교전문기관인 총리각국사무아문(總理各國事務衙門)을 설립하고 대외화친정책으로 전환하였다.


홍콩 증시는 20일 미중의 추가관세 발동 여파에도 뉴욕과 중국 증시가 상승하면서 투자 안도감이 확산해 오름세를 이어가며 개장했다.

항셍지수는 이날 전일 대비 198.35 포인트. 0.72% 오른 2만7605.72로 거래를 시작했다.

홍콩 증시 상장 중국기업주 중심의 H주 지수는 전일보다 89.16 포인트, 0.83% 상승한 1만830.85로 출발했다.

미국이 24일부터 대중제재 3탄으로 중국산 제품 2000억 달러에 추가관세를 부과하는데 대해 중국 측도 600억 달러 상당의 보복관세로 맞서겠다고 공표했지만 예상보다 관세율을 낮추면서 통상마찰에 대한 과도한 우려가 후퇴하고 있다.

또한 위안화의 달러에 대한 환율 하락이 주춤한 것도 투자 심리를 상향시키고 있다.

시가 총액 최대의 중국 인터넷 서비스주 텅쉰(騰訊) HD가 2.3% 상승하며 장을 주도하고 있다. 미국 장기금리 인상을 배경으로 영국 대형은행 HSBC도 0.6% 오르고 있다.

금융주와 자원주가 동반 강세를 보이고 있고 기술주는 급등하고 있다. 초상은행이 2%, 중국공상은행 등 국유 4대 은행은 0.3~0.8%, 중국핑안보험과 신화보험, 중국타이핑양보험은 1.2~1.5% 각각 상승하고 있다.

음향부품주 루이성 과기가 7.7%, 광학부품주 순위광학 2% 치솟고 있다.

유가 제품 인상에 중국석유화공과 중국석유천연가스는 2.2%, 1.8% 각각 뛰고 있다.

반면 그간 하락 장세에서 매수 우위를 보인 방어 관련 종목은 이익확정 매물에 밀리고 있다. 가스공급주 홍콩중화가스 등 공익주가 내리고 있다.

중국 통신주 중국이동이 0.7% 떨어지고 중국 스마트폰주 샤오미도 0.1% 하락하고 있다.

부동산주와 소비 관련주는 개별 상황에 따라 들쑥날쑥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항셍지수는 오전 10시20분(한국시간 11시20분) 시점에는 103.46 포인트, 0.38% 올라간 2만7510.83을 기록했다.

H주 지수는 오전 10시21분 시점에 74.70 포인트, 0.70% 상승한 1만816.39로 거래됐다.

2018/09/21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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