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8/12/19 16:56



[今天歷史-10월7일] 圓明園 파괴

레판토 해전, 미-영군 아프간 테러 기지 공습, 이완용 등 75명에 일제 작위 수여, 유엔 38선 돌파 결의

1860년 = 10월 6일 베이징(北京) 교외에 위치한 청(淸) 황실의 이궁(離宮)인 위안밍위안(圓明園)을 점령한 영불 연합군은 이 곳에 있는 보물들을 마음껏 약탈한 뒤 자신들의 범죄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7일부터 9일까지 사흘간에 걸쳐 조직적인 방화로 이 곳을 폐허로 만들었다.

영불 연합군은 1857년 3월 3일 한 해 전 발생한 영국기게양 중국인 소유 중국 해적선 애로 호 사건과 광시에서의 프랑스인 선교사 피살 사건을 빌미 삼아 청나라에 선전포고 하였는대 이를 애로 호 전쟁( 제 2차 아편 전쟁)
로 부른다.

영블 연합군은 1858년 광둥과 텐진을 점령, 일단 청나라 정부와 텐진 조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조약 체결 장소를 놓고 영국과 프랑스가 베이징을 고집하는 바람에 갈등을 빚는 와중에 청나라군의 반격을 박게되자 베이징을 점령하여 위안밍위안을 약탈 파괴하기에 이른 것이다.

베이징 서북쪽 교외에 위치한 위안밍위안은 명(明)조에 세워졌으며 청조가 들어선 이후 강희제(康熙帝)가 훗날 옹정제(擁正帝)가 되는 넷째 아를 윤정(胤禎)에게 하사했으며 이 때 ‘위안밍위안’이라는 이름도 함께 하사했다.

이후 옹정, 건륭(乾隆), 가경(嘉慶), 도광(道光), 함풍(咸豊)제까지 5대 황제 150년 동안 웅대하고 경치가 수려한 이궁으로 건설되었다. 황제들이 여름이면 이곳에서 피서를 하며 정사를 보았기 때문에 ‘여름 궁전(夏宮)’으로도 불렸다.

위안밍위안은 주위가 10km이며 위안밍위안, 만춘원(萬春園), 장춘원(長春園)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중 위안밍위안이 가장 크다. 이 세 곳을 모두 합하여 위안밍위안으로 통칭한다.

중국정부는 1990년대 초반까지도 역사적 치욕을 상기하는 교육적 도량으로 활용하기 위해 파괴된 상태로 방치해왔으나 현재는 본격적인 복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완성된 복원 사업에 대해 유적지를 공원 수준으로 격하시켰다는 비난도 제기되고 있다.

圓明園 약탈품 狗頭像 홍콩서 경매에 2003/09/16 19:29

세계사 속의 오늘

유럽 신성동맹(神聖同盟)함대가 레판토 해전에서 투르크 함대를 격파했다(1571). 돈키호테의 저자 세르반테스가 참전한 이 해전은 이슬람의 서구침범 시대의 종말과 서세동점의 개막이라는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미군과 영국군이 아프가니스탄 내 테러 및 군사 거점에 공습을 개시했다(2001).

우리나라 역사 속의 오늘

일제가 ‘조선 귀족령’ 제정에 따라 이완용 등 75명에게 작위를 수여했다(1910). 일본은 병탄후 대한 제국 지배층에 대한 회유책 일환으로 76녕에게 훈작과 함께 합방 은사금이란 이름 아래 거액을 나누어 주었는데.은사금을밪지 않고 훈작을 거절한 인물은 박영효 1명 뿐이다. 박영효 외의 75명을 두고 "나라를 팔아 먹었다"라는말은이나오는 것은 이들이 일제의 하사금과 훈작을 감지덕지하며 수령햇기 때문이다.

재야 역사 학자 이덕일이 조사 한 바에 따르면 왕족 외에 당색이 파악되는 64명 중 노론에 속하는 인사가 56명으로 압도적 다수를 차지했고 소론이 6명, 북인이 2명이었으며 남인은 한 명도 없었다.

노론과 소론은 인조 반정을 일으킨 서인이 분파돈 당파다. 노론은 인조 반정이래 나라가 망할 때까지 권력을 독점해온 당파로서 국권 상실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망국 당시 4색 당파의 역학 구도를 반영한 것이라는 일반적 분석과 함께 노론 당파의 정치적 몰염치를 비판할 수 있겠다. 또한 일본이 나라를멸망케 한 공적을 아주 정확하게 파악, 그에 비례하여 보상했다는 비아냥 섞인 역설도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지배층 인사중 이들과는정반대로 병탄에 저항하는 행동으로 만주로 망명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회영, 이시영 등 6형제는 가산을 모두 팔아 40만원(현재 시가로 600억 원) 상당)의 자금을 조성한 뒤 가족은물론 주인들과 뜻을 같이한하인과 그 가족들까지 이끌고 국권을상실한 나라를 떠났다.

이회영은 병탄 1년 뒤인 1911년 신흥 무관학교를 설립햇는데 이는 구권을 되찾기 위한 인재 양성을 위해서였다.

이회영형제들은 조선 선조 때의 며명신 이항복의 후손으로 이항복제자들의다수가 인조 반정에 참여햇으니 이들 형제들은 당색으로 따지면 노론에 해당된다.

이시영은 초대 부통령을 지냈으며 민정당 원내 총무와 국민의 정부에서 국정원장을 역임한 이종찬과 더불어 민주당 원내 대표를 역임한 이종걸이 이회영의 손자다.

유엔총회가 유엔군의 38선 이북 진격과 한국통일부흥위원단(UNCURK)설치를 결의했다(1950).

유엔은 이 결의에서 한반도에 관한 원래의 목적이 통일·독립·민주 정부를 수립하는 것이라는 것을 상기시키고, 한국전쟁 수행을 위해 6월 25일과 27일에 채택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기초, 유엔군의 행동 및 회원국들의 남한에 대한 원조의 중요성을 확인하였다.

이 결의 일주일 전인 10월 1일 한국군 제 3사단은 동부전선에서 38선을 돌파 북진을 개시했으나 유엔 총회에서는 유엔군의 북진이 참전목적에 맞는 것이냐의 문제를 놓고 의견이 갈라졌다. 그러나 7일의 이 결의안 통과로 유엔군의 38선 진격이 허락되어 유엔군의 북진도 본격화되었다.

2018/10/07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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