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8/10/17 23:46



[어제 오늘 내일] 시험 뒤 보자 트럼프 클린턴 따라하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중간선거 지원 활동을 위해 에어포스 1호기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 가진 기자회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2차 북미 정상회담은 중간선거 이후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한마디로 '시험 끝난 뒤라야 만난다'로 요약할 수 있겠다.

장소가 특정되지 않았다. 1차 정상회담이 열린 싱가포르가 제외된 가운데 오스트리아 빈, 평양(북한 희망 장소), 워싱턴, 미국 플로리다 주 휴양지(트럼프의 희망사항으로 추정)와 판문점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일자도 못 박지 않았다.

회담 일시를 특정하지 않았기에 아주 빠르면 중간선거 직후 일수도 올해 연말 이전일 수도 있으나 임기만료 직전까지 가야 열릴 수도 있다. 물론 아예 열리지 않을 가능성도 아주 배제하지 못한다.

영원한 약속도 도저히 해서는 안 되는 파약도 없다. 단지 영원한 국익만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 표현은 19세기 1차 아편 전쟁(1840년 1842년)때 외상으로 애로호 전쟁( 제2차 아편 전쟁), 1857년~1860년) 때는 총리로 이를 강행했던 파머스턴경의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국도 없다. 다만 영원한 국익만이 있다'라는 말을 패러디해 본 것이다.

파머스턴은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을 저돌적으로 이끈 지도자인데 디즈레일리와 더불어 총리직을 교대하며 정권 교체에 기초한 영국 양당정치를 뿌리박게 한 글래드스톤이 소장 정치인 시절 아편전쟁을 두고 '가장 더러운 전쟁'이라고 비난했으며 그 표적은 바로 '대영제국 국익 우선 아편 수출 불사'의 파머스턴이었다,.

파머스턴은 '아메리카 퍼스트'의 트럼프를 연상하게 한다. 19세기 파머스턴도 21세기의 트럼프도 자국에 불리한 통상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기 위해 '포함 전쟁'을 벌였고 '관세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대상 국가는 바로 중국이다.

지난 7일 평양을 방문 북한 '최고 존엄' 김정은과 그의 동복 여동생 '백두 혈통'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과 만나고 3차 방북 때까지 카운터파트인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 부장을 '스킵' 하고 돌아온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최종적이며 완전한 검증된 비핵화(FFVD) 길이 열렸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고 있다.

트럼프는 폼페이오가 평양을 떠난 직후부터 "대단한 진전을 이룩했다"라고 '3전4기'의 '아주 대단한' 추임새를 넣고 있다.

그러나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의 시각은 '풍계리 핵실험장 사찰단 맞을 준비 되어있다'는 등 김정은의 발언 등 공개된 발표 내용을 근거하여 알맹이가 없고 진전됐다는 평가를 내릴 수 없다는 식의 회의적 분석이 지배적이다.

시계 바늘을 18년 전 2000년으로 돌려 보자.

그해 6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간 사상 첫 남북 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열렸다. 이를 계기로 남북화해 국면이 급속히 진행되는 배경 아래서 당시 북한 2인자이던 조명록 북한 국방위원회 제1 부위원장이 군복 차림에 차수 계급장을 달고 김정일 특사 자격으로 워싱턴을 방문, 백악관에서 클린턴 대통령에게 김정일의 초청장을 전달했다.

2000년 10월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이해 6월 15일 남북 공동 선언을 발표한지 4 개월 후였다.

이어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 김정일과 회담하였으며 집단체조 공연을 지켜보았다.

올브라이트 귀국 뒤 클린턴은 북한과 탄도 미사일 타결을 위해 북한을 방문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북한과 미국은 북한 핵개발 의혹 수레의 두 바퀴 중 하나인 핵폭탄 개발 문제를 1994년 10월21일 제네바 기본합의로 정리해 놓고 있었다.

골자는 핵폭탄 개발 가능성이 농후한 흑연감속로 설비를 갖춘 영변 원자로의 개발 진행을 동결하고 미국의 중유 공급과 영변 원자로를 대체할 경수로 핵발전소 2기를 한미일과 유럽연합이 컨소시엄을 통해 신포에 건설하여 이의 완성과 영변 원자로의 폐기를 맞교환한다는 것이었다.

일단 핵폭탄 개발 의혹이 '오리 발갈퀴질'의 수면 아래에 들어간 상황에서 1994년 7월8일 급사한 김일성을 계승한 김정일은 1998년 8월31일 일본 열도를 넘어 태평양 상에 낙하하는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을 지향하는 미사일 실험을 성공시켜 핵무기 개발의 다른 한 축인 핵폭탄 투발체 개발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김정일은 핵폭탄 개발 의혹을 에너지 부족에 따른 원자력 발전소 개발이라는 프레임 아래 제네바 핵합의를 도출해냄으로써 적대국으로부터 에너지 공급을 받고 돈과 물자의 지원을 받는 한편 핵폭탄 개발을 위한 시간을 벌었다.

이렇게 정리된 상황에서 탄도 미사일 대포동 1호를 발사, 제네바 핵합의 이행 여부에 쏠린 미국과 국제사회의 시선을 분산시켰다.

북한은 탄도 미사일 의혹과 관련 인공위성 개발을 위한 것이라는 프레임 아래 북미 제네바 합의 미사일 버전을 노리고 미국과 갈등을 벌이다가 대북 유화적인 김대중 정부를 징검다리 삼아 미국이라는 말을 물가에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당시 클린턴은 민주당 행정부의 3기 연속 집권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평양 방문 계획을 발표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해 대선 결과는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의 아슬아슬한 승리로 끝났다.

클린턴은 앨 고어 후보의 대선 패배로 민주당 정권의 지속이 좌절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평양 방문을 통한 북한 탄도 미사일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결과적으로 신기루로 판명난 꿈을 실현하려 하려 했다.

그러나 '아들 부시' 대통령 당선자의 미사일 방어체제 전도사이자 대북 강경파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지명으로 평양 방문 계획을 스스로 철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를 되짚어 보면 2018년 트럼프의 2000년 클린턴 따라하기로 요약할 수 있겠다.

클린턴이 민주당 행정부의 3기 연속 집권을 겨냥한 것이었다면 트럼프는 중간선거에서 재선 승리의 발판을 마련한다는 결과 실현을 최우선시 하고 있다.

북한의 김정은 정권은 남한 대북유화 정권을 징검다리 삼아 미국의 치열한 선거 국면을 활용하여 2000년 어게인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 중간선거까지 미국과 북한 간 적과의 동침은 화려한 이불 밑에서 지속될 것이다.

선거가 끝난 뒤 어떤 방향으로 일이 진행될지는 모른다. '계약 동거'로 갈지 아니면 파탄이 날지 또 아니면 어정쩡한 동침 유지일지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

다만 확실한 것은 '매버릭 트럼프'는 '기득권 우등생 클린턴'이 아니라는 사실이고 '최고 존엄'은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아버지를 권력게임에서 능가한 그래서 맹랑한 또 아버지에게 두려움마저 주었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정은을 두고 중국은 '아두'로 미국은 '한국의 재벌 3세'로 간주한다는 생각을 여전히 지울 수가 없다.

'어제'와 '오늘'은 한반도의 어떠한 '미래'를 그릴까.<스위프트-버크왈드>

2018/10/11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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