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9/03/22 22:21



[오늘의 단상-1월15일] 소련에 대한 韜光養晦

쭌이 회의는 중국 공산당의 소련으로부터의 자발적 젖떼기였다.

1921년 창당한 중국 공산당은 1935년 까지 소련 공산당의 감독과 지도 아래 있었다. 소련 공산당은 중국 공산당의 '산파'였고 '유모'였다.

1921년부터 1927년까지가 코민테른
의 수렴청정기라고 한다면 1차 국공 합작이 와해된 뒤부터는 섭정 시대엿다.

섭정 기간 중 당수였던 취추바이, 샹중파(실질적 당수 리리싼), 왕밍 그리고 보구등은 코민테른의 아바타였다.

장정 초기단계에서 개최한 쭌이 회의에서 마오쩌둥의 군사 지도권이 확립되면서중국 공산당은 농촌 중시 전략과 유격 전술 채용 등 소련 공산당과 다른 '중국 특색의공산주의'로 출항을시작한 것이다.

여기에는 훗날 소련 공산당과 다른 공산주의의 길을걷게 되는 유로 코뮤니즘의 뿌리 지역인 프랑스 등 유럽 에서 유학 생활을 한, 저우언라이를 대표로 하는 유럽파 공산당원들의 역사적인 전략적 선회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은 쭌이 회의 이후에도 소련ㅔ 대해 '칼 빝을 감추고 그믐달이 차오르기를기다리는' 도광양회(韜光養晦)의 자세를 취했다.

중국 공산당은 1949년 중국 대륙을 장악하고 한국전을 거친뒤 소련이 포스트 스탈린 체제로 접어들자 면종 복배(面從腹背)와구밀복검(口蜜腹劍
)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소련과의 적대적 관계를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중국 공산당의 1935년 1월에 있은 선택은 중국 공산당이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이 1991년 12월 붕괴한 뒤에도 일당 독재 체제를유지하는 분기점의 첫 출발이 되었다. <스위프트-버크왈드>의 호


2018/11/07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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