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8/12/17 17:38



[今天歷史-11월18일] 인민은행 상하이 분행, 李立三

1998년 11월 18일 몇 개의 성시(省市)를 관할 구역으로 하는 인민은행의 최초의 확대 지점인 인민은행의 상하이 지점(上海分行)이 개설되었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의 구조 개편에 따라 1998년 12월 20일까지 각 성, 시, 자치구 별로 하나씩 있던 인민은행의 지점들은 상하이 지점을 포함, 총 8개의 지점으로 통폐합되었다.

개혁개방 이후 20년 을 거치면서 당시까지의 중국의 금융산업은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했다. 1998년 10월 말 현재의 중국 금융기관의 저축 잔고는 9조 3000억 위안, 대출 잔고는 8조 3,000억 이었는데 이는 1978년과 비교하여 각각 82배와 45배가 늘어난 것이었다.

그러나 급속한 발전에 따라 불량채권 액수도 급증하는 추세였다. 당시 중국이 자체 추계한 회수 불가능한 채권만도 6~7%에 달했다. 이러한 불량채권의 누증을 방치할 경우, 금융위기가 발생할 위험성이 있었다.

중국 당국은 이러한 상황은 지방정부가 인민은행 지점을 통해 금융업에 관여한 것이라고 보고 인민은행 한 지점에 몇 개의 성, 시를 묶어 관할하도록 하는 구조개편 작업을 단행한 것이다.

중국이 이러한 금융분야의 구조개혁을 서두른데는 1997년 동남아와 한국을 강타한 금융위기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인민은행의 구조 개혁을 통한 방만한 투자 규제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으나 20년이 지난 2018년 현재는 또 다른 무분별한 투자의 진원지로 등장한 '그림자 은행'을 개혁하지 않으면 안되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잇다 (2018년 3월 추정 중국 그림자 은행 부실 규모 7조 달러 ).

중국 ‘그림자 금융’ 규제 보류...“경기부양 우선”2018/05/31 03:37

중국 ‘그림자 은행’ 규모 6342조원 달한다2014/05/30 12:26

. 한편 1998년 같은 날 중국보험감독관리위원회가 베이징(北京)에서 설립됐다. 1997년 말 현재 중국에는 중국 자본의 보험회사 13개, 외자보험기구 9개가 있었다. 1997년 보험료 수입은 1,080억 9700만 위안으로 전년비 39.19% 성장했다. 보험계약액은 21조 5000억 위안, 보험회사의 총자산은 1646억 위안에 달했다.

1899년 = 리리싼(李立三)이 출생했다.

후난(湖南)성 리링(醴陵) 출신인 리리싼은 1919년 근공검학(勤工儉學)으로 프랑스에 유학, 저우언라이(周恩來) 등과 함께 중국 공산당 파리지부를 결성했다. 귀국 후 당의 중심적 지도자로 성장하면서 도시 노동자 동시폭동을 주창하였다.

‘리리싼 노선’으로 불리는 이 극좌 노선은 동향인 마오쩌둥(毛澤東)의 농촌 중시 전략과 극과극의 대척관계를 이루었다. 마오가 6세 연상이었고 또 외국 유학 경험이 없었다. 리리싼이 개방주의적이었다면 마오는 국수적이었다. 리리싼의 출신지 리링은 마오의 고향 상탄(湘潭)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1930년 사실상의 최고지도자가 된 그는 자신의 노선을 실천에 옮겼으나 공산당에 심각한 피해를 안긴 채 실패했다. 당시 명목상의 최고지도자는 1928년 모스크바 6차 전당대회(6대)에서 총서기 에 선출된 샹중파(向忠發)였으나 도시 노동자 출신의 그는 정치국 후보위원 겸 비서장으로서 선전부장을 맡고 있던 리리싼의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다.

도시 동시 폭동이 철저하게 실패한 뒤 그는 코민테른왕밍(王明)의 비판을 받아 당 지도권을 잃고 1931년 모스크바로 소환되어 1946년까지 그곳에서 마르크스 문헌을 번역하며 지냈다.

1948년 귀국 후 중화전국총공회 부주석이 되고 공산 정권 수립과 함께 정무원(현 국무원의 전신) 노동부장이 되는 등 노동 관련 부문의 일을 주로 맡았다.

1954년 중국공산당 8차 전국대표대회(8대)에서 1930년 자신의 ‘과오’에 대한 철저한 자기비판을 해 참석자들의 찬양을 받았다.

그러나 문화 대혁명이 발발한 뒤 문혁 세력에 의해 혹독한 비판과 탄압을 받았으며 1967년 6월 22일 실의 속에 사망했다.

1980년 3월 추도회가 개최되었고 복권되었다.

리리싼은 선전선동에 아주 능해, 종종 원고없이 연설하면서도 막힘이 없었고 좌중을 휘어잡았다고 한다.





◆ 사진은 대중을 상대로 선동연설을 하는 리리싼.


2018/11/18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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