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8/12/17 17:38



[今天歷史-11월26일] 三民主義 첫선, 羅榮桓, 다나카 사임

1905년 11월 26일 중국 동맹회(同盟會)(중국 혁명 동맹회 약칭) 기관지 ‘민보(民報)’가 일본 도쿄(東京)에서 창간되었다. 발간사에서 손중산(孫中山 : 손문)은 처음으로 ‘삼민주의(三民主義)’를 언급했다.

민족주의, 민권주의와 민생주의를 뜻하는 삼민주의는 청조 멸망 후 동맹회가 정당으로 변신한 국민당의 정치강령이 되었다.

민보는 처음에는 월간이었다가 후에 부정기적으로 출간되었다.

‘20세기의 지나(支那)’의 후신인 민보는 후한민(胡漢民), 장지(張繼), 타오청장(陶成章), 잔빙린(章炳麟), 왕징웨이(汪精衛) 등이 편집을 맡았고 천톈화(陳天華), 주즈신(朱執信), 쑹자오런(宋敎仁) 등이 글을 기고했다.

민보는 동맹회의 혁명강령을 선전하며 개량파의 간행물인 ‘신민총보(新民總報)’와 논전을 벌였다. 총 26호까지 발간되었으며 1908년 10월 일본 정부에 의해 판금되었다.

1902년 = 중국 10대원수의 한사람인 뤄룽환(羅榮桓)이 태어났다. 후난(湖南)성 헝산(衡山 : 현재 衡東)출생으로 린뱌오(林彪) 휘하의 제4야전군의 제1정치위원을 역임하는 등 주로 군의 정치공작 분야에서 활동했다. 중국 건국 후에도 인민해방군 총정지부 주임, 간부관리부 부장, 인민혁명군 군사위원회 부주석, 제1, 2기 국방위원회 부주석을 역임했다.

1963년 12월 16일 향년 61세로 사망했다.

세계사 속의 오늘

록히드 사건으로 사임압력을 받아오던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일본 총리가 자민당 총재와 총리 직에서 사임했다(1974).

이해 8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사임( 8일 9일부터 사임하겟다고 발표)에 이어 다나카가 사임함으로써 중국과의 화해를 이끌어낸 미국과 일본의 최고 지도자가 잇달아 불명예 퇴진한 것이다.

중국을 열었다는 공통점 외에 두 사람의몰락 배경도 비슥한 구석이 있다. 닉슨은 미국 정치의 주류인 동부 출신 인사가 아닌 서부 출신이었다. 다나카 역시 메이지 유신 이래 일본 정치를 주무르던 조슈번과 사쓰마번 또는 도사번 출신이 아닌 니카다 출신이엇다.

닉슨은 기득권 계층을 대변하는 워싱턴 포스트의 폭로로 다나카는 역시 기득권 계층을 대변하는 문예춘추의 폭로 기사로 무너졋다.

[今天歷史-7월7일] 두 명의 다나카와 蘆溝橋 사건

2018/11/26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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