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8/12/11 04:03



[今天歷史-11월29일]11대 판첸라마, 彭德懷, KAL 폭파

중국 TV서 첫 외국 드라마 방영, 공산 중국 국민당 잔여 세력 베트남 등 접경지대 군사기지 불용 선언, 대만서 민진당 지방선거서 국민당 꺾어

1995년 11월 29일 중국 정부는 티베트 북부 나구 현 출신의 6세 소년 걀첸 노르부(Gyaltsen Norbu)가 1989년 1월 28일 사망한 판첸 라마 10세의 환생이라며 11대 판첸 라마로 지명했다.

환생(還生)을 믿는 티베트 불교는 종파(宗派)의 지도자가 사망하면 그 후계자를 그의 사후 티베트에서 태어난 티베트 어린이 중에서 환생자를 찾아내 지명한다. 종단 원로들이 티베트 전역을 다니며 찾아낸 환생자 후보 중에서 소정의 시험 절차를 거쳐 ‘환생자’로 인정한 어린이를 후계자로 결정한다.

판첸 라마는 티베트 라마 불교 제2대 종파의 수장의 명칭으로 ‘지용을 겸비한 대학자’라는 뜻이다. 판첸 라마는 아미타불의 환생으로 간주된다.

인도에 망명 중인 티베트 불교 최대 종파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도 이러한 절차에 따라 제14대 달라이 라마가 되었다.

노르부가 판첸 라마 11세로 선정되는 데는 중국 정부의 깊숙한 개입이 있었다는 점이 이전과 확연히 구별되는 점이다. 그는 티베트의 수도 라싸에서 열린 추대행사에서 3명의 후보 가운데 선정되었다. 중국 정부가 티베트 불교 수장의 선출에 직접 개입하기는 사상 처음이었다. 노루부의 부모는 모두 티베트의 중국 공산당 당원이었다.

중국 정부의 이 조치로 인해 티베트에는 2명의 판첸 라마 11세가 있게 됐다.

달라이 라마는 중국 정부의 지명이 있기 6개월 전인 1995년 5월 겐둔 최키 니마(Gendhun Choekyi Nyima)라는 역시 6세 소년을 11대 판첸 라마로 지명했었다.

중국정부가 노부를 판첸라마로 지명하기에 앞서 7월 말 이후 최키 니마는 살고 있던 나그추에서 사라졌으며 그의 집은 중국 경찰에 의해 출입이 통제됐다.

달라이 라마가 1989년 사망한 판첸 라마 10세의 환생자라며 판첸 라마 11세로 인정한 이 소년은 과거 판첸 라마 10세의 경우처럼 베이징(北京)의 한 초대소로 옮겨져 억류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달라이 라마는 1995년 12월 20일 인도 망명지 다람살라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중국 정부가 지명한 판첸 라마를 티베트인들이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자신이 지명한 최키 니마는 세계에서 가장 어린 정치범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종적이 묘연 심지어 독살설까지 나돌았던 최키 니마ㅔ 데헤 중국 당국은 2015년 9월 1일 티베트 자치구 성립 50주년 을 맞아 펴낸 '티베트 백서'를 통해 그의 근황을 소개햇다.이에 따르면 그는 평범한 사람으로 지내고 잇다고 한다.

20년 전 실종 판첸라마 환생 소년 생존2015/09/08 23:52

판첸라마 10세 후계자 티베트에 생존 2004/08/15 14:34

판첸라마지명 실종소년 중국 보호 하에 2000/10/27 15:35

1989년 초 오랜 베이징 억류생활 끝에 티베트에 돌아온 판첸 라마 10세의 갑작스런 의문의 죽음은 이해 3월 초 티베트의 대규모 독립시위의 한 요인이 되었다.

당시 티베트 즉 시장(西藏)자치구 서기로서 이 시위 사태 진압을 진두에서 지휘한 인물은 전임 총서기 겸 국가주석 후진타오(胡錦濤)였다.

중국이 지명한 판첸 라마 11세는 달라이 라마가 그 정통성을 부인했지만, 중국 정부의 비호와 전폭적 지원 아래 나름의 입지를 확보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2010년 2월에는 중국 불교협회 부회장에 선출됐으며 전국정협 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비록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2010년 3월 전국정협 전체회의를 앞두고 부주석 선출이 거론되기도 했다.

중국 지명 판첸 라마 11세는 중국 일부 지식인들이 만든 노벨 평화상에 대항하여 만든 공자 평화상의 2011년도 수상자 후보에도 올라 눈길을 끌었다(그해 수상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

티베트 불교의 제1대 종파 수장과 제3대 종파 수장이 모두 인도로 망명한 가운데 제2대 종파 수장인 중국 지명 판첸 라마는 정통성에 대한 의문 제기에도 불구, 티베트와 중국 중앙 정부 간의 가교 역할을 해오고 있다.

달라이 라마는 2011년 들어 와 인도 망명 정부에 중요한 개혁을 단행했는데 이는 중국 정부의 비호와 전폭적 지원 아래 중국 지명 판첸 라마 11세가 입지를 굳히고 있는 사실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달라이 라마는 정치 지도자의 역할을 티베트 망명 정부가 선출한 총리에게 넘겨 주었다. 또한, 환생자를 찾아내 후계자로 삼는 전통적 후계 승계 방식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이는 두말할 것도 없이 자신의 사후 티베트 망명 정부 내 권력 공백과 판첸 라마의 경우처럼 환생 후계자 선정에 중국의 개입이 있을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총리에 선출된 롭상 상가이는 1968년 생으로 인도 망명지에서 태어났으며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연구교수로 활동했다. 그의 출생과 학력 배경을 살필 때 달라이 라마(1935년 생으로 올해 83세)는 장기적 포석 아래 이 같은 개혁을 실시했음을 알 수 있다. ‘젊은 세대’ 중국인 판첸 라마 11세에 대항하여 미국 유학파 출신인 ‘장년’ 상가이 총리를 내세워 티베트의 미래를 놓고 경쟁을 벌이도록 한 것이다.
롭상 상가이 총리는 2016년 4월 27일 재선에 성공했다.

1977년 = 중국 최초로 외국 TV드라마가 CC-TV를 통해 방영되었다. 외국 드라마는 유고슬라비아에서 제작한 ‘적후방 침투(巧入敵後)’였다.

1974년 = 중국인민해방군 창설자 중의 한 사람이며 한국전 당시 중국 인민지원군 총사령관을 지낸 펑더화이(彭德懷)가 장칭(江靑) 등 4인방의 박해 속에서 베이징에서 사망했다.

1898년 생으로 향년 76세. 마오쩌둥(毛澤東)과 같은 후난(湖南)성 상탄(湘潭)현에서 태어났다.

독재 국가 최고 지도자의 동향 측근은 어김없이 죽고 죽이는 관계로 끄티 났다. 후난성 출신의 류사오치(劉少奇)와 펑더화이는 사실상 마오에게 죽임을 당했고 후베이(湖北)성 출신으로 역시 동향에 포함될 수 있는 린뱌오(林豹)는 마오를 죽이려다 실패하고 죽었다.

한국의 경우에도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한 인물은 다름아닌 그와 동향이고 육사 동기로 권력 2인자 위치인 중앙정보부장으로 있던 김재규였다.

1949년 = 저우언라이(周恩來)는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장 명의의 성명을 내고 국민당 잔여세력이 베트남 등 중국 접경 국가에서 군사기지를 유지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명은 인민공화국과 인민정부는 베트남을 통치하고 있던 프랑스와 접경 국가 정부들에게 국민당 군대를 철저하게 소멸시킨다는 것이 중국 정부의 변함없는 정책이라고 강조하고 국민당 군이 어느 곳으로 가던 이를 추격할 권리를 중국 정부는 갖고 있으며 국민당 군대의 주둔을 허용하는 국가의 정부는 이로 인해 야기되는 결과에 책임을 져야한다고 정중히 밝힌다고 말했다.

1997년 = 대만 현, 시장 선거에서 야당인 민주진보당이 대승을 거두었다. 민진당이 12석, 집권당인 국민당이 8석을 획득했다. 이는 3 년 뒤인 2000년 치러진 총통선거에서 1949년 국공 내전 패배로 국민당이 대만으로 쫓겨온 이래 처음으 이루어진 여야 권력 교체였다.로

우리나라 역사 속의 오늘

대한항공(KAL) 858기 여객기가 북한 공작원 김현희 등이 설치한 폭약에 의해 미얀마와 태국 상공에서 공중 폭발, 승객과 승무원 등 115명이 사망했다(1987).


2018/11/29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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