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8/12/11 04:03



[今天歷史-12월6일] 대자보 西單게재 금지

1979년 12월 6일 베이징(北京)시는 자신이 소속한 단위(單位) 이외에 대자보를 붙일 수 있는 장소로 월단(月壇)공원 내 대자보 게시처 한곳을 한정하고 시단(西單)의 담벼락(西單墻)과 기타 지역에서의 대자보의 부착을 금지한다고 하는 내용의 규정을 발표했다.

이로써 1978년 12월 13기 3중전회에서 화궈펑(華國鋒) 체제가 무너지는 것을 전후 해 베이징 의 시단 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덩샤오핑 시대의 ‘백화제방 백가쟁명’의 민주화 운동이 종말을 맞게 되었다.

민주화 운동가들은 시단의 담벼락에 자신들의 주장을 담은 대자보를 붙이는 방식으로 운동을 전개, 시단의 담벼락은 ‘민주의 벽’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대자보의 내용이 공산주의 체제를 근본에서부터 부정하고 새로운 공산당 지도부마저 공격하는 데 까지 이르자 덩샤오핑(鄧小平)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지도부는 이들 운동가들을 1979년 3월을 기해 체포하기 시작했다.

이 ‘민주의 벽’ 운동은 정치적 반대파를 제압하기 위해 고무하고 활용하다가 자신들에게 화살이 돌려지자 탄압했다는 점에서 마오쩌둥(毛澤東)이 1950년대 후반 주도한 ‘쌍백운동(雙百運動)’의 복사판이었다.

덩샤오핑은 마오쩌둥과 경제노선에 있어서는 대척점에 서 있지만 '파워 폴리틱스'와 외교 분야에서는 수제자라고 할 정도로 마오의 책략을 자주 채용했다. ‘민주의 벽’ 운동을 활용하고 탄압한 것 역시 이런 사례의 하나다.

덩샤오핑이 '4대 현대화'를 제시하자 민주화라는 ‘제5의 현대화’를 제기, 민주의 벽 운동의 중심인물로 떠올랐던 웨이징성(魏京生)은 시단 민주의 벽 폐쇄 조치가 있기 9개월 전인 1979년 3월 말에 체포되었다.

베이징에 봄이 찾아 왔을 때 ‘베이징의 봄’은 끝나버렸던 것이다.

민주화 운동에 대한 마지막 못질인 이 조항에는 월단 공원에 대자보를 부착하려는 사람은 성명, 단위, 주소 등을 등기처에 기록하도록 했다. 등기처에 심사 권한은 없으며 따라서 나중에 문제가 됐을 때 필자 자신이 모든 책임을 져야 했다.

인터넷 실명제를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자유로운 표현 수단의 대자보는 이제 사이버 공간으로 대체되었다. 여기에 중국은 '사이버 만리 장성'으로 대응하고 잇다. '대자보 대못질'이 진화한 셈이다.

대자보 금지 조치 34 주년을 하루 앞둔 2013년 12월 5일 중국을 방문 중인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은 주중 미국 상공회의소에서 행한 연설에서 중국이 체제 비판을 포함한 언론 자유를 허용해야한다고 강조하는 강경 비판 발언을 쏟아냈다.

이는 중국이 미국과 국력을 겨루는 G2 국가로 성장햇으나 시단에 박힌 못은 여전히 요지부동함을 일개워 주기 위한 것이엇다.

2018/12/06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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