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9/10/15 08:18



[오늘의 단상-1월8일]죽은자의 산자 쫓기 시작

1976년은 공산 중국 역사상 가장 극적인 정치 드라머가 전개된 한 해였다. 시작은걸맞게 '태산 명동'이었으나 끝은 맥빠지는'쥐잡기'아니면 '술래잡기 놀이'였다.

한해 벽두인 1월 8일에 정치 무대의 2인자가 암으로 사망함으로써 '드라머'의 대단원의 막이 극적으로 올려졌다. 예고된 죽음이었으나 모두 긴장했다.

마오쩌둥은6살 연하의 저우가 먼저 떠났다는 부으을 득고 자신에게도 마르크스를 만날 날이 멀지 않았음을 절감하고 후계 질서 구축에 쫓겻다.

4인방은 건곤일척의 카운트다운이 드디어 울리기 시작했다는 초조감에 휩싸엿다. 덩샤오핑 등 반 4인방 세력은 소나기를 앞두고 우산이폭풍우에 날아간 망연자실의 심정이엇다.

이후 10월까지의 사태 전개는 매번모두의 의표를 찌루ㅡ거나 아무도 예기하지 못한 태산 명동의 드라머의 점철이었다.

1월 말 마오의 차기 총리 선택은 '듣보잡'으로 여겼을 화궈펑이었다. 4월 초 천안문반 마오- 반 4인방 대규모 유혈 시위 사태로 수면 하의 민심의 소용돌이가 분출했고 덩샤오핑이 실각함으로써 4인방 세력과 반 사인방 세력 간의불안한 세력 균형이 와르르 무너졌다.

바로 한해 전프랑코의 죽음으로 종말을 고한 스페인 파시스트 체제가소생될 때마다프랑코가 " 신이여 당신을 만나기가 이렇게 힘듬니까"라고 신음을 내었을정도로 몰인정한 생명 연장 '오퍼레이션'으로 버텼듯 문혁 체제는 마오의 억지로 유지된 목숨 줄로 간신히 이어졌다.

7월 초에는 '총구'의 상징 주더가 저우의 뒤를 따랐고 그 달 말에는 탕산 대지진이 일어나수십만이 생매장됐다. 마치 '황제'의 사망에 앞서 수순장시키듯이.

9월 9일 마오쩌둥이 죽었고 한 달이 지나기 전인 10월6일 베이징 정변으로 4인방이 체포됐다.

저우언라이가 죽은지 만 9 개월을 이틀 앞두고서였다.

'죽은 저우언라이가 '산 4인방을 잡다'였다. '태산 명동' 후의 피날레는 총 한 방 쏘지 않은 '술래잡기' 놀이를 연상시켰다. <盲瞰圖子>

2018/12/10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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