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9/08/20 20:54



[今天歷史-1월16일] 대만 첫 여성 총통 당선, 胡耀邦 실각

鄧小平의 1980년대 비전 , 서울 점령 중공군 유엔 휴전 제의 거부

2016년 1월 16일 대만에서 야당 민진당의 차이잉원 후보가 총통 선거에서 승리햇다. 차이잉원 후보는 1912년 중국에서 청조가 한해 전인 1911년 10월 10일 일어난 신해 혁명으로 타도 되고 공화정인 중화민국이 수립된 이래 중국 지역에서 탄생한 첫 여성 총통이다.

총통 선거와 함께 실시된 대만 총선에서도 야당인 민진당이 압승햇다. 이로써 민진당은 8년 집권의 국민당으로부터 정권을 탈환햇다.
1987년 후야오방(胡耀邦)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1986년 후반기 중국 대핫가를 휩쓴 학생 시위사태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총서기 직에서 사임했다.

당 중앙은 “후야오방 총서기가 정치적 원칙의 주요문제들에 대한 자신의 실수를 자아비판 한 뒤 총서기 직에서 물러났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최고 실권자인 덩샤오핑(鄧小平)과 정치국 상무위에 포진하고 있던 원로들에 의해 해임당한 것이다.

이 정치국 확대회의는 덩샤오핑에 의해 소집되었고 18명의 정치국위원과 2명의 후보위원 외에, 4명의 서기처 서기와 17명의 중앙고문위원회 위원, 그리고 그 외 "다른 동지들"이 참여했다.

총서기 직은 총리를 맡고 있던 자오쯔양(趙紫陽)이 대리하게 되었으며 후야오방은 정치국 상무위원 직은 유지했다.

1982년 12차 공산당 전당대회(12대)에서 선출된 정치국 상무위원은 후야오방, 자오쯔양, 덩샤오핑, 예젠잉(葉劍英), 리셴녠(李先念), 천윈(陳雲)이었다.

2+4의 구조로 후야오방과 자오쯔양이 원로세력의 수렴청정을 받는 체제였다. 후야오방은 개혁의 가속화를 위해 이러한 틀을 타파하려 했다. 그는 '양날의 칼'인 학생시위를 이용하였으나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결국 자신이 당하고 말았다.

1982년 당 주석제가 폐지된 이후 당을 대표하는 총서기가 사실상 해임된 이 사건은 당시 중국 권력구조의 이중성을 외부세계에 확실하게 각인시켜 주었다.( 이를 또 한 번 확인 시킨 것은 후야오방의 사망 을 계기로 대학생들의 천안문 민주화 시위 와중에 중국을 방문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환영 만찬에서 자오쯔양 총서기가 '최종 결정권자는 덩샤오핑이다'라고 한 말이다. 자오쯔양은 천안문 유혈 진압 후 총서기에서 해임됐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외국에 국가 기밀 누설'이라는 것이었다).세 두

이해 ( 1987년) 11월의 중국 공산당 13차 전당 대회(13대)에서 자오쯔양은 총서기에 정식 선출되었으며 덩샤오핑을 비롯한 원로들이 모두 정치국 상무위에서 물러났으나 후야오방 역시 정치국 위원으로 강등되었다. 후야오방은 다른 한 편으로 덩샤오핑이 추구하였던 세대교체의 밀알이 된 셈이었다.

후야오방의 후임자인 자오쯔양은 후야오방의 죽음으로 촉발된 1989년 천안문 시위과정에서 후와 같은 길을 밟다 그 역시 실각하고 말았다.

후야오방의 복권은 그의 사후 26년 뒤인 2015년 11월 20일 그ㅢ 탄생 100 주년 좌담회에 시진핑 당 총서기 겸국가주석을 비롯한 당 정치국 상무위원 전원이 참석함으로서 사실상 이루어졌다.

시진핑의 부친 시중쉰(習仲勳)은 후야오방 총서기 해임에 끝까지 반대한 인물 중 한 사람이엇다.

1980년 = 덩샤오핑(鄧小平)은 당 중앙이 소집한 당, 정, 군 간부회의에 ‘현재의 정세와 임무에 관한 보고’에서 1980년대를 이끌고 나갈 3가지 목표를 제시했다.

그는 첫째는 국제관계에서 반 패권주의를 추구, 세계평화를 유지하자는 것이고 둘째는 대만과의 통일을 실현하자는 것이며 셋째는 경제건설에 박차를 가하여 4개 현대화
를 실현하자는 것이었다.

덩샤오핑은 이 3가지 목표 중 가장 핵심은 현대화 건설이라고 강조했다.

1951년 = 서울을 점령한 중국군(당시는 중공군으로 불리웠음)이 유엔이 제안한 휴전안을 거부했다.


2019/01/16 08:03


경제| IT | 사회 | 정치 | 양안 | 문화 | 대만 | 홍콩 | 한중Biz | 한반도 | 인물동정

 
Copyright 2000 ChinaWatc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