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9/04/21 23:54



[今天歷史-1월22일] 베이징항복, 湘南폭동, 올브라이트

, 제정 러시아 피의 일요일 사건, 올브라이트 미국 첫 여성 국무장관 취임

`1949년 1월 22일 중국 공산당이 베이징(北京)을 지키고 있던 국민정부의 국민당군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냈다.

국민정부가 1929년 7월 6일 수도를 난징(南京)으로 정한 뒤 베이핑(北平)으로 불리웠던 베이징은 공산군의 1개월여 간에 걸친 포위공격을 받은 끝에 국민당군 방어 총사령관인 푸쭤이(傅作義) 가 공산군에 항복한 것이다.

푸쭤이의 투항에 따라 31일 공산군의 베이징 무혈입성이 이루어졌으며 내전의 3대전투 중 마지막인 핑진전투(平津戰役)가 끝을 맺게 되었다.

패장 푸쭤이는 항복 한 달 뒤인 이해 2월 21일 공산군 총사령부가 있던 시바이포(西柏坡)로 가 마오쩌둥(毛澤東)을 만났다.

마오는 반나절 동안의 접견에서 그가 저항을 포기하고 항복, 베이징을 보전한 사실을 치하했다. 푸쭤이는 반나절 동안 단 한 마디만 했다고 한다. “내가 죄를 지었다(我有罪)”라고.

푸쭤이가 항복한 이날은 주더(朱德)와 천이(陳毅)가 이끄는 부대가 1928년 후난성 남부에서 폭동을 일으킨 지 21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중국 공산당은 이를 ‘상남(湘南 : 샹난)기의(湘南起義)’로 부른다.

1927년 8월 1일 ‘난창 폭동(南昌起義)’에 참가했던 주더-천이 군은 이 폭동 후인 3월 중순 ‘상남공농민주정부’를 수립했으나 3월 말에 군벌군의 반격을 받고 패퇴하였다. 결국 주더-천이 군은 마오쩌둥(毛澤東) 부대가 있는 징강산(井岡山)으로 이동, 4월에 마오 군과 합류하였다. 양 부대는 중국 공농홍군 제4군으로 재편되어 마오가 군사위 서기 겸 당 대표를, 주더가 군장(軍長), 즉 군사령관을 맡았다. 총병력은 1만 명 내외였다. 이 군대가 훗날 중국 공산군의 주력으로 성장했다.

세계사 속의 오늘

러시아의 페테르스부르크(현 상트 페테르부르크)르에서 피의 일요일 사건이 발생했다(1905). 러시아 정교회의 게오르기 가폰 신부( 그는 황제와 노동자들 간의 타협을 추구한 인물로 이 사건 후 외국에 망명했다가 귀국한 뒤 1907년 사회 혁명당 인사에 의해 비밀 경찰 밀정으로 간주되어 암살당했다)가 이끄는 노동자, 농민 시위대 10여 만 명은 니콜라이 2세의 초상화를 앞세우고 성가를 부르며 황제가 머무르고 있던 동궁(冬宮: 겨울 궁전)으로 행진했다.

잇단 패전을 겪고 있는 러일 전쟁을 조속히 끝내 줄 것을 요청하는 청원서를 제출하기 위해서였다.

동궁을 경비하고 있던 러시아 군경은 시위대에 밀리자 발포를 했고 그 결과 1,000명의 사망자를 포함, 4,6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사건은 짜르와 짜르체제에 대한 러시아 민중의 마지막 환상을 앗아갔다. 이로부터 12년 뒤인 1917년 마침내 러시아 제정은 종말을 고하고 만다.

'피의 일요일' 사건은 러일전쟁이 진행되던 때에 일어난 사건이다. 중국 뤼순 항 요새를 지키고 있던 러시아 군대는 이해 1월 초 항복했다. 이 함락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러시아 수도에서 터진 이 사건으로 러시아가 전쟁을 계속할 동력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일본 스파이는 가폰 신부가 이날 시위를 조직하도록 공작을 한 것으로 알려졌고 또한 이 첩자는 러시아 군의 데단히 중요한 비밀 문서를 취득, 일본 지휘부에 건넴으로써 러일 젅쟁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하엿다.

매들린 올브라이트가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에 취임했다(1997).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은 앞서 1996년 12월 5일 올브라이트를 국무장관에 지명했다.

올브라이트 이후 2019년 현재까지 6명의 국무장관이 뒤를 이었는데 이중 2명이 여성일 정도로 미국에서 임명직 최고위 공직 직책인 국무장관에 대한 문은 여성에게 활짝 열려 있는 셈이다.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행정부 2기에서 콩돌리자 라이스가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 1기에서 힐러리로뎀 클린턴이 각각 2번째. 3번째 여성 국무장관이 됐다.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취임 10년 뒤인 2007년 1월 20일 빌 클린턴 정 대통령의 부인인 힐러리가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기 위해 출마를 선언했다. 당시 상원의원이던 힐러리는 “나는 이기기 위해 뛰어 들었다(I'm in to win)"이라고 말했다.힐러리는 그러나 2008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에게 패배, 꿈의 실현을 뒤로 미루어야 했다.

힐러리는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되었으나 11월 실시된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에게 예상 밖으로 패배, 미국 정치 세계에서는 적어도 댗통령 직에관해서는 유리 천정이 여전히 견고함을 보여줬다.

2019/01/22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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