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9/06/17 08:05



[今歷단상-4월11일] “동은 동 서는 서 둘은 하나 안돼”

'동은 동, 서는 서, 둘은 하나가 될 수 없다'

'정글북'을 쓴 영국의 작가 러드야드 키플링의 말이다.(필자는 역시 이 명구를 송성문의 '성문 정통 종합영어'에서 처음 접했다. 어쨌든.)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로 보유하는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이던 시절의 키플링에게 있어 ‘동’은 인도라는 프리즘을 통해 본 아시아이고 ‘서’는 영국을 포함한 서양을 지칭했다.

동과 서는 서로 이질적인 존재로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인데 각각에 대한 이해 관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울러 동과 서의 이해를 동시에 맞출 수 없다는 지적으로도 이 말의 의미를 확대할 수도 있겠다.

4월11일은 우리나라 역사에 있어 잊지 못할 중요한 영향을 끼친 두 사람과 관계있는 날이다.

본의는 아니었으나 그의 세계 전략 정책으로 우리나라 역사 상 단군 이래 가장 참혹한 전쟁을 치르게 만든 딘 애치슨의 기일이다.

그리고 더글러스 맥아도가 한국전 와중에서 미국 의 해리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 한국전 참전 유엔군 사령관과 미 극동군 사령관직에서 해임된 날이다. 한국전 지휘봉을 박탈당했다. 그의 해임으로 우리나라의 분단은 '일시적'인 것이 아닌 '장기적'인 것으로 굳혀졌다.

애치슨은 유럽 중심주의자엿다. 맥아더는 아시아 적극론자였다.

1950년 1월 애치슨은 중국 국민정부에 대한 방어를 사실상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동'을 버리고 '서'에 대한 보호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그의 큰세계전략 그림 아래서 '무(無)대접' 대상이었다.

1950년 6월의 한국전 개입 선택은세계 전략 상 방치할 수 없는 일본이 위협받기 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현해탄까지 밀어닥친 소련 팽창 세력을 그대로 방치하다가는 미국의 전력이 분산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고 유럽이 취약해지고 위험 상황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 로 이어졌다.

맥아더의 큰 그림에 있어 한반도는 '득롱망촉'의 '농'이었을 뿐이었다. 그는 '촉', 즉 중국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인천 상륙 뒤 웨이크 섬에서 트루먼을 만나 중국군이 한국전에 개입할 기회는 이미 놓쳤다는 자신의 판단을 설득시키는데 성공했다.

맥아더는 "크리스마스 때에는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하고 워싱턴이 보내온 동복군복을 돌려보내기까지 하였다.

유럽 전선에서 2차대전 직후 조지 패튼이 항복한 독일군을 미군에 배속시켜 볼셰비키 소련과 싸우자고 한 것과 같이 승리에 고무된 맥아더가 만주로 넘어갈 것을 걱정하는 트루먼과 조지 마셜을 안심시키기 위한 심리전이다. 워싱턴은 이에 안도했으나 '똑똑한 한 놈'을 속이는데는 실패했다. 마오쩌둥이다.

마오는 손자병법을 사숙하여 청출어람한 인물이니 맥아더의 일련 전략적 수를 '궤(詭)'로 간주했던 것이다.

'새로운 전쟁'에 직면한 1951년 봄 트루먼은 '동'과 '서'를 함께 아우를 수 없었다. 선택을 해야만 했다. 그의 선택은 '서'였고 그것은 맥아더의 해임이었고 한반도의 분단 지속화였다.

2019년 4월 미국은 '서'와 이저진 ‘인계 철선' 중동과 '동'의 도미노 첫 패인 '한반도''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쫓아야 하는 처지다.

1951년처럼 제로섬 게임의 선택인가. 아니면 '동'과 '서'를 모두 아우르느냐다.

내일은 어제의 반복일까. 아니면 반면교사일까. <스위프트-류야저우-버크왈드>

2019/04/11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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