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9/06/17 08:05



[어제 오늘 내일]2019년 서울평양, 1944년 바르샤바·1945년 베를린

'혹시나'하며 날아갔으나 결국 '역시나'하며 되돌아와야 했다.

4월10일~12일 문재인 대통령의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은 문 대통령 취임 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가진 7번째 대면과 스킨십이었으나 전혀 '럭키' 하지 않았다.

물론 문 대통령의 입장에서다. 북핵 문제와 관련 ‘굿 이너프 딜'을 갖고 갔으나 '빅딜'을 등에 단단히 조여매고 돌아와야 했다.

양안 관계에서 대륙 중국은 대만이 '양국론' 또는 '1변1국론'으로 용어를 어떻게 바꾸든 이를 대만 독립을 통한 ‘두 개의 중국론'으로 인식하는 것처럼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이 입안하고 문정인 청와대 안보 특보가 풀무질하는 '굿 이너프 딜'을 미국은 북한이 하노이 회담에서 내놓은 '스몰딜'과 '비이사(非而似)' 관계로 간주했다.

북한의 '스몰딜' 내용은 영변 핵시설 일부 폐기와 북한 핵실험 뒤 가해진 11개의 대북 제재 중 2016년 1월 4차 핵실험 실시 이후 취해진 북한으로서는 고통스러운 핵심적인 7개 제재 해제를 맞교환하자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개성공단 재개와 금강산 관광 금지 해제를 마지노선으로 한 대북제재 완화를 미국이 약속하면 북한에 특사를 보내 영변 핵시설 일부 폐기에 더불어 프라스 알파를 설득하여 '굿 이너프 딜'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미국의 트럼프-폼페이오-볼턴 트리오가 '스몰딜'을 일언지하 거부한 것처럼 워싱턴은 '굿 이너프 딜'에 단호하고 분명하게 "No"했다.

.'최고 존엄'은 겨울의 끝자락 2월 말 드디어 춥고 길었던 추운 계절이 이제 끝나고 '봄맞이'를 확신하며 달려갔다.

그러나 봄을 여는 3월 초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때 아닌 '삭풍'에 뼈 속까지 시린 한기를 느끼며 도망치듯 되돌아와야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할아버지가 6.25 때처럼, 아버지가 1994년 때처럼 자신도 미국을 속여 넘길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아니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빌 클린턴 행정부가 1994년 속는 척 하며 북미 제네바 합의를 받아들인 것처럼 북한의 핵협상 브레인들은
트럼프의 행정부가 스몰딜 프레임 덫에 빠져 들것이라고 확신한 것이다.

1994년 제네바 북미 핵합의는 영변 핵시설이 에너지 부족 타개를 위한 원자력 발전소 개발이라는 프레임 아래 이루어진 합의로 이는 결국 김정일의 북한에 시간과 2000년 김대중-김정일 남북 첫 정상회담을 전후로 돈을 얻어내 2006년 10월9일 첫 핵실험 실시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김정은의 북한은 하노이 스몰딜을 시발로 하여 궁극적으론 미국으로 하여금 '묵시적 핵무기 보유 인정'을 끌어낸다는 것이었다.

'스몰딜'로 포장했으나 그들이 내놓은 양보는 극히 빈약하다. 상대방의 요구는 '빅딜'이라고 말했으나 '얼티메이텀'이었다.

북미 간 스몰딜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은 직접 워싱턴으로 날아갔으나 중매는 실패했다. ‘매파 이니’는 '매버릭 장사꾼' 으로부터 뺨 석대를 맞을 처지였다. 그러나 '2분 단독 대화'와 10조원 상당의 무기강매를 감수해야 했다. 월드 클래스 모욕이자 슈퍼급 고비용이었다.

얻어낸 것이라면 미국 측 요구 사항을 전달하고 북한의 요구 아니 북한을 설득하기 위한 접촉 기회를 막지 않겠다는 워싱턴의 좁디 좁은 길 터주기였다.

이런 회담 결과는 이미 예고되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강경화 외교장관과 김현종 청와대 안보실 2차장, 정경두 국방장관이 사전 의제 조율을 위해 다녀왔다.

'굿 이너프 딜'의 입안자가 가지 않고 통상 전문가가 간 것은 'good'이 'bad'로 바뀔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정경두가 미국 합참의장으로부터 훈장을 수여받은 것은 미국 군산복합체에 대한 큰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기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4월11일 (미국 현지시간 ) 워싱턴 정상회담 뒤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은 한국 측 발표문을 내놓았다. 우리 따로 미국 따로이다.

정의용은 '한반도 비핵화'로 백악관 세라 샌더스 대변인은 '북한 비핵화'로 다르게 발표했다.

이 개념 차이는 정의용과 볼턴 간에 '구동존이(求同存異)'의 핵심적 다른 부분인 것으로 보인다.

4월13일 북한은 자신의 권리라고 간주한 왼편 뺨 석대를 확실하고 무자비하게 집행했다.

"좌고우면하며 중재자니 촉진자니 오지랖 넓게 행동하지 말고 민족 공조의 자세로 약속한 바를 실행하라"고 쏘아 붙였다.

이 발언은 김정은의 이른바 시정연설에 담겨졌다.

12일에 있은 14기 최고인민회의(북한 국회 격) 1차회의에서 발표된 것이다. 한미 워싱턴 정상회담 결과가 공표된 뒤인 시점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공개는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로 귀국한 뒤인 13일로 하루 뒤였다.


'최고 존엄'은 '이니'에게 " 똑바로 하라"며 귀싸대기를 '우리 민족끼리 확실하게 보라'는 듯 공개 시점마저 하루 뜸을 들였다.

그러나 태평양 건너의 매버릭에게는 일단 큰소리 치면서 기어들어가는 자세이다.

하노이 스몰딜 제안은 변함없으며 트럼프와 다시 만날 용의가 있다고 말하며 미국의 다른 제안을 올해 말까지 기다리겠다고 말했는데 이는 핵실험과 탄도 미사일 발사를 하지 않는 도발 모라토리엄을 그때까지 준수하겠다는 이야기다.

하노이 북미회담 결렬 후 한미 워싱턴 정상회담 직전까지 저비용 고위협 의 참수작전 훈련 실시 뉴스를 지속적으로 흘린 것이 효과를 본 듯 하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환구시보' 역할을 하는 미국의 소리(VOA)를 통해 북한 정제유 환적 사건과 역시 석탄 밀거래에 한국 기업과 은행들이 연루했다는 혐의를 흘리며 세컨더리 보이컷 가능성을 슬쩍슬쩍 제고해온 것이 최소 양보에 최대 소득을 얻어낸 배경으로 판단된다.

북한이 문재인 정부 망신 주며 압박하는 뉴스에 맞물려 청와대발 대응이 나왔다.

청와대 측에서는 특사 파견을 준비하겠다고 하면서 4월27일 문재인-김정은 1차 남북회담 1주년에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제4차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기는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는 트위터를 통해 “김정은과는 여전히 좋은 관계이며 3차 북미 정상회담의 문은 열려 있다. 그러나 북핵 폐기와 제재 해제는 동일한 시점이라는 점은 변함없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되면 문재인 정부는 대북 마조히즘의 끝판왕 저자세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게 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남한으로부터는 '달러를 쏟아 붓겠다'는 약속을 얻어내고 북한에 대해서는 핵 관련 모든 것을 얻어내겠다는 자세는 요지부동인임을 견지하면서도 9개월 시한의 무도발 모라토리엄을 유지시키는데 일단 성공했다.

문재인 정부에 특사 파견 등 대북 교섭에 대해서는 그린라이트를 켰다.

고래와 상어 및 돌고래가 얽히고 설킨 밀당에서 고래가 완승하고 돌고래와 상어는 모두 패배했다.

1944년 나치 독일군이 독일 본토로 퇴각하기 시작하자 은인자중하며 실력을 키운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의 항독 폴란드 레지스탕스 저항 세력은 대규모 봉기를 일으켰다.

바르샤바강 건너편까지 접근한 소련군이 퇴각하는 독일군의 후방에 타격을 가하기 위해 자신들의 봉기에 적극 합세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것은 폴란드를 두 차례 분할한 강대국들의 자세가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고 착각한 치명적 오판이었다.

소련군은 강을 건너지 않았고 배후가 위험하다고 판단한 퇴각 독일군 주력은 유턴하여 바르샤바 폴란드 저항군을 공격했다.

바르샤바 폴란드 저항군은 강 건너의 소련군에 도와달라고 호소했으나 팔짱을 끼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바릇샤바는독일군에 의해 한마디로 묷사발됐다. 저항군은 대학살극을 피하기 위해 백기를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나치 독일군은 저항군을 완전 궤멸 소탕하고서야 다시 퇴각하였다.

소련군은 그제야 강을 건너 바르샤바로 들어갔다. 무혈입성이었다. 차도 살계, 즉 남의 칼로 닭을 잡는다는 격이었다. 이를 통해 소련은 훗날의 우환을 없앤 것이다.

반러시아 정서가 동유럽 어느 국가보다도 강한 폴란드의 적화는 아주 대단히 쉽게 이루어졌다.

1945년 베를린의 독일군은 동쪽에서 밀려오는 소련군을 막는데 온힘을 다했다.

히틀러의 소련 침공 뒤 독일군이 소련에서 행한 일을 너무 잘 알기에 독일군은 처절하게 버티며 싸웠다. 어린이와 부녀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소련군의 베를린 입성만은 막겠다는 자세였다.

스탈린은 스탈린그라드의 영웅 주코프 장군과 그의 군내 최대 라이벌 장군을 경쟁시켜 가며 미군을 제치고 베를린을 먼저 점령하라고 독려했다.

이런 스탈린의 독려와 독일군의 처절한 저항으로 소련군의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반면에 베를린 너머의 독일 내 서부전선의 방어는 상대적으로 느슨했다. 거의 문을 열러 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제3제국의 최후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 독일군은 미국 등 서방 연합군에 수도 베를린을 포함한 독일 영토의 한 치라도 많은 지역을 넘겨주는 편이 낫다는 전략적 선택을 한 셈이었다.

그러나 미국 사령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전진하지 않았다.

미군 병력의 손실을 막자는 것과 전력 손실을 입지 않고 미군에 항복한 독일군이 전후 처리 과정에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정치적, 전략적 고려가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소련군은 복수심에 불타고 있었고 미군은 냉정하게 프래그매티즘적 판단을 했다. 독일 입장에서는 미국이나 소련이나 더도 덜도 아니게 똑같았다.

소련은 베를린은 점령했으나 막심한 인적 물적 피해를 입었고 독일군 전력도 철저하게 소멸됐다.

2019년 2월에서 4월 사이 미국이 한반도의 남북을 분할 공략 방식으로 철저하게 실리추구를 하는 동안 중국도 러시아도 팔짱을 끼고 있는 자세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4월16일부터 중앙아시아 3개국을 방문한다. 시진핑의 ‘일대일로’ 연결고리를 이어준다며 시진핑의 중국에 손을 건네려 하는 것이다. 문제는 고래들은 결정적인 때에 '적과의 동침'을 한다는 것이다. .

역사는 반복한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내일도 그럴 개연성이 높다. <스위프트-류야저우-버크왈드>

2019/04/15 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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