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9/06/17 08:05



[今歷단상-4월15일] ‘죽은 총서기’, ‘산 시황제’를 내쫓다

오늘은 후야오방의 30주기다. 또 이날은 김일성이 태어난지 107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중국 공산주의 역사에서 개혁과 정치 민주화의 아이콘이자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는 후야오방의 오늘 의미를 공산당 선언의 첫 문장을 패러디 하여 짚어보자.

"하나의 유령이 중국 상공을 배회하고 있다. 그것은 '정치 개혁과 민주라는 이름의 유령이다."

중국 고사에 빗대어 보자.

"'죽은 총서기'가 ''산 시황제'를 쫓다."

30년 전 이날 후야오방을 추모하기 위해 대학생들이 주도한 시위는 우리나라 3.1 운동의 영향을 받아 불타올랐던 5.4 운동의 70주년을 계기로 고조될 때로 고조되었고 천안문 광장에 '민주의 여신상'을 세우기에 이르렀으나 그 며칠 뒤인 1989년 6월4일 덩샤오핑에 의해 무자비하게 유혈 진압됐다.

1989년 천안문 광장에 모인 중국 대학생들은 1978년 말 정치 민주화라는 ‘민주의 벽’ 운동을 일으킨 웨이징성과 마찬가지로 너무 앞서 나갔다. 그리고 덩샤오핑은 1978년과 마찬가지로 레드라인 안쪽에 여전히 머물렀다.

덩샤오핑의 '손오공 개혁 비상'은 '여신의 손바닥' 을 넘어서지 못했다.

하지만 2008년 류샤오보가 '체코의 68 헌장'을 오마주한 '중국의 민주 정치 개혁을 촉구하는 '08 헌장'을 발표하여 민주 정치개혁의 잉걸을 지켰다.

류샤오보는 중국 최초 노벨평화상 수상이라는 영광과 자신의 생명을 교환했다.

시진핑은 1인 독재 강화와 영구 집권을 정력적이며 과감하게 추진하여 이를 거의 성취했다.

거센 북풍의 한파 속에서도 웨이징성, 왕단 그리고 류샤오보로 이어지는 정치개혁의 잉걸은 꺼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후야오방은 하늘에서 '유령'처럼 배회하며 이를 지켜보고 있다

덩샤오핑은 공산주의 버전의 '민주'를 레드라인으로 삼았다. 개혁적이지만 여전히 공산주의자이던 후야오방은 민주의 외연을 넓히고자 했다.

시진핑은 덩샤오핑이 설정한 레드라인에서 후방으로 크게 뒷걸음질을 하고 있다.

중국 대륙 하늘 아래서는 시간이 갈수록 ‘민주’라고 쓰고 자유로 읽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김일성 생일 북한 명절('김씨 조선' 정권은 이를 '태양절'로 기린다)인 이날 후야오방 외에도 역사에 족적을 남긴 인물이 많이 세상을 떠났다.

'킬링필드'와 '킬러 스마일'이 오버랩 되는 폴 포트가 독재자의 추한 몰골을 연출하며 지상을 떠났고 곧바로 정글 밀림 속에서 한 줌의 재
로 화했다.

"그도 프랑스의 영광이다"라며 우파 대통령 샤를르 드골에 의해 '언터처블'의 존중을 받은 공산주의를 옹호한 좌파 지식인이자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샤르트르도 이날 타계했다.

젊은 시절에는 사람들을 은막 속 가공세계로 끌어들였고 은퇴 뒤에는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던 그레타 가르보가 이날 세상과 작별했다.<스위프트--류야저우-버크왈드>

2019/04/15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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