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9/06/17 08:05



[今天歷史-4월15일]胡耀邦 타계 김일성 출생 폴포트 옥사

中印 국교 회복, 그레타 가르보 별세, 사르트르 타계, 타이타닉호 침몰, 영국 거문도 점령

1989년 4월15일 = 후야오방(胡耀邦) 중국공산당 전 총서기가 심장병으로 갑자기 사망하였다. 향년 74세.

그의 죽음이 전해지자 베이징(北京) 대학 학생들이 추념 시위를 벌였다. 추념활동은 결국 전반적인 민주화를 요구하는 천안문 시위로 발전하였으며 이해 6월4일 유혈 진압으로 막을 내렸다.

[今天歷史-6월4일] 천안문 사태, 鄧 병력 100만명 감군 선언

추억...6.4 천안문 사태 야근2005/06/03 22:06

천안문 민주화 시위와 천안문 유혈 진압을 포괄하는 천안문 사태로 인해 후야오방에 대한 당의 제대로 된 평가가 늦춰졌다.

후야오방의 복권은 그의 사후 26년 뒤인 2015년 11월20일 탄생 100주년 좌담회에 시진핑 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을 비롯한 당 정치국 상무위원 전원이 참석함으로서 사실상 이루어졌다.

시진핑의 부친 시중쉰은 후야오방 총서기 해임에 끝까지 반대한 인물 중 한 사람이다.

1976년 = 인도와 중국이 국교를 회복했다. 1962년 10월20일 중국과 인도가 국경 충돌을 벌인지 14년 만이었다.

[今天歷史-10월20일] 중印 국경충돌, 몽골 독립, 서부대개발

이날은 세계적으로 저명한 인사가 많이 타계했다. 미국 할리우드의 전설적 여배우 그레타 가르보가 뉴욕에서 향년 84세로 사망했으며(1990),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가 향년 74세로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1980). 가르보는 1941년 35세로 영화계에서 은퇴한 뒤 독신으로 베일 속에 살면서 문자 그대로 '살아 있는 전설'로 지냈다.

크메르 루주의 지도자로 킬링필드의 주역인 폴 포트가 심장병으로 사망했다(1998). 1928년생으로 사망 당시 나이는 70세였다. 본명은 살로스 사르(Saloth Sar)다.

47세이던 1975년 4월부터 베트남군이 침공한 1978년 12월까지 캄보디아의 최고 지도자인 그는 축출 후에도 게릴라 항쟁을 지휘하다 사망 한 해 전인 1997년 6월 부하들에게 체포되어‘민족 반역’과‘ 동지 살해’ 죄를 범했다는 이유로 그해 7월25일 종신형에 처해져 감금 생활을 하다가 죽었다.

폴 포트는 농촌 공산혁명과 절대적 평등으로 요약되는 마오이즘을 크메르와 같은 작은 나라에서 극단적으로 실시될 때 어떠한 지옥이 연출되는 가를 보여준 인물이다.

그 과정에서 숱한 동족을 살해하고 기아에 내몰아 '평등의 공산낙원'이 아닌 '살해와 주검의 벌판'을 만들었다.

폴 포트는 '덕의 공화국'이라는 이상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기요틴을 무자비하게 동원한 프랑스 대혁명의 로베스피에르를 연상시킨다.

처형 공포에 가위눌린 부하에 의해 몰락한 점도 로베스피에르의 몰락과 흡사하다. 그러나 로베스피에르를 기요틴으로 보낸 프랑스에서와는 달리 폴 포트는 비록 감옥에 갇혔으나 '와석종신' 했다.

그러나 순간에서 모든 것을 끝맺게 한 프랑스 방식보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 시달리게 하다가 심장 발작으로 죽게 한 것이 그에게 합당한 단죄인지 모른다.

밀림 게릴라 기지에서 있은 폴 포트 재판 광경과 죽은 뒤 화장되는 모습 등이 동영상으로 공개됐다.

동영상 속 폴 포트는 최고 지도자였던 이의 위엄과는 거리가 멀었다. 불안해하고 수치심에 찌들려 행동이 부자연스러운 한 노인네의 모습일 뿐이었다.

영국 호화여객선 타이타닉호가 첫 출항 3일 만에 북대서양에서 빙산과 충돌하여 침몰하여 1500명이 목숨을 잃었다(1912).

우리나라 역사

김일성이 태어났다(1912).

영국이 거문도 섬을 점령했다(1885 ).

2019/04/15 04:05


경제| IT | 사회 | 정치 | 양안 | 문화 | 대만 | 홍콩 | 한중Biz | 한반도 | 인물동정

 
Copyright 2000 ChinaWatc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