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9/10/15 08:18



[今天歷史-6월11일] 李立三 노선, 무술개혁, 저우융캉

대처 영국 총리 세 번째 연임 성공, 북한 NPT 탈퇴 유보, IAEA 북한 제재 결의안 통과

1930년 6월11일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가 상하이(上海)에서 리리싼(李立三) 주재로 열려, 그가 기초한 ‘새로운 혁명고조와 한 개 성 혹은 몇 개 성에서 우선 승리(新的革命高潮與一省或幾省’的首先勝利)‘라는 제목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결의안은 훗날 ‘좌경모험주의’노선으로 비판받는‘리리싼 노선’의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상황을 혁명 고조의 방향으로 신속히 옮겨가고 있다고 판단한 결의안은 한 개 성 혹은 몇몇 성에서 우선 혁명을 성공시킨 뒤 전국적인 혁명 정권을 수립할 것을 당면한 당의 목표로 제시하였다.

이에 따라 전국에서 무장폭동을 일으켜 정권을 탈취하라고 지시했다. 우한(武漢)을 중심으로 하여 도시에서 폭동을 일으킬 것과 전국에 흩어져 있는 홍군 세력에 중심 도시로 진공할 것을 명령했다.

결의안은 혁명 성공이 장기간의 시간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주장을 배척했으며 농촌으로서 도시를 포위해야 한다는 노선을 배격하고 ‘도시 중심론’을 제창했다.

리리싼 노선은 자본주의가 고도화한 선진국가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실현된다는 마르크스의 전망과는 달리 유럽에서 가장 후진적인 러시아에서 사상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을 이룩한 레닌 주도의 러시아 혁명 모델을 중국에 교조주의적으로 적용한 것이다.

이는 초대 당수 천두슈와 미래 최고지도자 마오쩌둥의 노선을 동시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리리싼이 자기 노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자신에 가장 위협적인 중국공산당의 '과거' 와 '미래'를 정확하게 짚은 셈이다.

그러나 리리싼 노선의 실행은 창당 이후 도시 지역에 구축해온 공산당의 조직 역량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정도로 참담하게 실패했다.

이는 리리싼의 뒤를 이은 역시 모스크바 맹목 추종의 '28인 볼셰비키 그룹'의 대(對) 국민당 무장저항 과정에서 취한 군사전략 실패와 함께 리리싼과 동향(후난성)인 마오쩌둥의 농촌 중시 혁명전략이 1935년 1월 중국공산당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주요 배경이 되었다.

[今天歷史-6월22일]一國兩制 대만관계법, 向忠發 李立三

[今天歷史-1월15일] 쭌이 회의, 천두슈의 德선생
2015년 = 전 정치국 상무위원 저우융캉에 부패와 뇌물죄로 무기징역 선고.

1898년 = 무술변법(戊戌變法) 시작.

세계사 속 오늘

영국 총선에서 보수당이 승리, 마거릿 대처가 총리에 3번째로 연임되었다(1987).

이로써 대처는 160년 만에 처음으로 3기 연속 재임에 성공한 총리가 되었으며 20세기 들어 최장수 총리가 되었다.

미국 오클라호마 시티 연방청사 폭파범 티모시 맥베이에 대해 사형이 집행됐다(2001).

우리나라 역사 속 오늘

북한과 미국이 제4차 고위급 회담을 갖고 북한의 핵무기 비확산조약(NPT) 탈퇴 유보 등을 내용으로 한 공동성명을 발표했고(1993), 국제원자력 기구(IAEA)가 북한 제재 결의안을 채택했다(1994).

북한과 미국이 제2차 미사일 회담을 뉴욕에서 개최하였고(1997), 베이징 주재 한국대사관 영사부에 일가족 5명을 포함한 탈북자 9명이 진입한 뒤 한국행을 요구했다(2002).

2019/06/11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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