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9/10/15 08:18



[今歷단상-7월11일] ‘핵 마이너스’ 무너진 버팀목 복원 손짓

한국전 이래 한반도에서 전쟁 발발 위기가 가장 고조되었던 1994년 6월 한반도 남쪽의 한국에는 미국과 한미 상호방위조약이라는 군사동맹조약이 있었다. 그리고 북의 북한에도 이에 대응하고자 중국과 맺은 군사동맹조약이 도사리고 있었다.

한미 방위조약은 1953년에, 북중 군사동맹조약은 1961년에 체결됐다.

북한은 같은 해 소련과도 군사동맹조약을 맺었으나 1994년은 소련이 해체된 지 이미 3년이나 지난 때였다.

소련은 해체 이전에 이미 북소 동맹조약을 실효시켰다. 소련을 승계한 러시아는 군사동맹 복원은 커녕 북한과 군사협력 관계조차도 아무 관심이 없었다.

빌 클린턴 행정부의 미국이 북한 핵개발 추진 사전차단을 위해 영변폭격을 감행한다면 미국과 중국은 각각 군사동맹조약에 따라 한반도에서 군사 충돌을 벌일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그러나 전쟁은 회피됐다. 클린턴 행정부가 영변폭격 계획을 거두어들였기 때문이다.

젊은 지도자들이 불가역적인 전쟁판으로 들어가기 직전 노인들이 나섰다.

북한 김일성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실권을 넘겨준 아들 김정일로부터 최고권력을 회수, 전면에 나섰고 13년 전인 1981년 1월 대통령직에서 퇴임한 미국 지미 카터가 평양으로 날아 왔다.

중국의 명목상 최고지도자는 총서기, 군사위 죽석 그리고 국가주석 등 모든 직위에 올라선 장쩌민이나 최고 결정권자는 덩샤오핑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이 전쟁 결사반대를 외치며 힘겹게 브레이크를 밟아대는 가운데 덩샤오핑, 카터 그리고 김일성 등 3인의 노인이 클린턴과 김정일을 밀어 내버리고 이심전심으로 전쟁이 터지는 것을 막는 결정을 내렸다.

사반세기가 지난 2019년 7월 25년 전과 마찬가지로 남북한은 여전히 각각 미국, 중국과 군사동맹 관계다.

그러나 중요한 변화가 있다.

북한은 사실상 핵을 보유하고 있다. 북한은 침을 지닌 벌처럼 사용과 동시에 죽는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위해 온 국력을 쏟아 부었다.

그 결과 남한과 대결에서 화려하지만 실속은 없는 '마이더스 효과‘를 미국과 관계에서는 도리어 '마이너스 효과'만을 거두고 있다.

중국과는 과거와 같은 끈끈한 연대가 없다.

1994년 김일성이 노구를 이끌고 움직이는데 덩샤오핑이 못본 척 할 수는 없었다.

그 이전 덩은 김일성이 베이징에 올 때면 자신이 직접 베이징 역까지 나가 마중하였고 함께 카퍼레이드도 한 적도 있었다.

어느 국가원수에게도 하지 않은 인민대회당 앞 광장에서 환영식을 해줄 정도로 예우가 각별했다.

1992년 한중수교에 앞서 80회 생일에 국가주석 양상쿤이 돼지고기를 듬뿍 가지고 가서 축하를 해주도록 했을 정도로 덩은 김일성의 마음을 세밀하게 어루만져 주었던 것이다.

덩과 김일성 간에는 이런 친밀감과 동지애가 있었으니 북한 최대 위기 상황에서 중국은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이다.

하지만 25년이 지난 지금 그때 북한의 사실상 실권자로 전쟁 위기 상황으로 몰고 갔던 김정일보다 더 젊은 나이의 김정은이 지도자를 맡고 있다.

그리고 중국 지도자들과 스킨십을 축적한 고모부 장성택은 친중적이라는 바로 그 이유로 인해 고사포 총격 방식으로 참혹하게 처형됐다. 중국 지도자들로서는 불쾌한 기억이다.

시진핑은 철저한 실리적인 계산 아래 북한을 돕더라도 도울 것이다. 시진핑과 김정은 사이에는 덩샤오핑과 김일성 간의 끈적끈적한 동지애는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는다.

김정은도 이를 의식했음인지 러시아와 군사동맹 복원에 생각이 있는 듯하다.

지난 5일 러시아 의회 대표단이 북한을 친선 방문한 것은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김정은이 올해 들어와 불과 반년 동안에 중국, 미국 그리고 러시아 정상과 모두 대면회담을 가진 것은 스킨십의 절박성 때문은 아닐까.

그러나 벼락치기 공부로는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없다.

<스위프트-류야저우-버크왈드>

2019/07/11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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