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9/07/16 10:06



[今歷단상-7월12일] 등 떠밀린 것과 제발로의 차이

고교 시절 세계사 교과서 근세사 편에서 천두슈의 사진을 처음 보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학자풍의 책상물림 선비형 인상이었다.

중국공산당을 창당한 인물이라는 사진 설명을 보며 '전혀 무섭고 음험한 빨갱이 같지 않은데'라는 생각이 스쳤다.

1990년 7월12일 TV 모니터를 통해 보리스 옐친이 한 소련 정치 회의(공산당 회의로 기억 된다)에서 소련공산당 탈당을 선언하고 나가는 장면을 보았다.

천천히 그러나 단호한 발걸음으로 회의장을 떠나는 옐친의 뒷모습을 잡던 카메라 앵글은 고개를 좌우로 내젓는 군복 차림의 한 젊은 참석자를 비추어 보인 뒤 미하일 고르바초프 모습을 잡았다.

멍하니 물끄러미 옐친의 퇴장 모습을 지켜보며 입맛을 쩍쩍 다시는 모습이었다.

고르비는 이해 4개월 전인 3월15일 소련 대통령에 선출되어 1917년 볼셰비키 러시아 혁명 후 줄곧 견지되어 왔던 공산당 우위 체제를 변혁시켜 소련의 최고 지위를 계속 굳건히 잡고 있었으나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직책 역시 보유하고 있었다.

옐친은 고르비의 체제 개혁을 화끈하지 못하고 맨숭맨숭하다고 격렬히 비난해오다가 결국 소련 공산당에서 탈당을 결행한 것이다.

옐친은 우락부락하고 험상궂은 인상이다. 가장 '빨갱이' 같은 그가 ' 빨갱이 당'을 떠난 것이다.

그리고 스마트한 인상과 그에 걸맞은 행동과 처신으로 소련과 공산당에 대한 기존의 '빨갱이' 이미지를 '인간의 얼굴로 한 모습'으로 확 뒤바꾸어 놓았던 고르비는 남았다.

천두슈와 옐친은 '생긴 대로 논다'는 말처럼 행동했다. 수미일관하게.

천두슈는 장제스의 1927년 4월12일 상하이 쿠데타로 국공합작이 최대의 위기를 맞은 이후 우왕좌왕하다 3개월 뒤인 1927년 7월 12일 당권을 맥없이 빼앗겼다.

천은 빼앗긴 당권을 되찾고 그가 틀린 방향이라고 확신을 가졌던 후임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의 노선을 돌려놓기 위해 투쟁했으나 그 결과는 출당 조치였다.

시간이 갈수록 존재감이 급속히 사위어져 가던 천두슈는 죽음을 앞두고 사회주의 신념을 공개적으로 포기했다. 그러나 찻잔 속의 태풍이었을 뿐이다.

옐친은 1991년 6월 러시아 공화국 대통령 직접 선거에 출마했다.

당시 모스크바에 출장간 필자는 대통령 후보 TV토론 중계 장면을 보았는데 최고 유력 당선 후보자 옐친의 좌석은 비어 있었다.

공산당을 탈당했으나 그는 여전히 소련 공산당 하면 떠오르는 레닌, 스탈린 그리고 유엔 단상에서 구두를 벗어 연설대를 탕탕 치던 후르시초프 등 으스스함과 거침을 불러일으키던 '빨갱이 최고지도자'의 모습을 여전히 풍기고 있었다.

러시아 대통령 TV 토론회에서 꿩 대신 닭 아니 붕새 대신 독수리와 솔개 역할을 한 인물은 전 내무장관 바카틴과 영락없는 극우 성향의 지리노프스키였다.

러시아 공화국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고르비를 만나 악수하던 보도 사진에서 거구의 옐친이 그보다는 키가 작은 고르비를 내려다보는 인상이었다.

공화국 대통령이지만 옐친이 직선인데 반해 연방 대통령 고르비는 대의원 선출이었다.

옐친은 2019년 8월 야조프 국방장관이 야나예프 부통령을 앞세워 쿠데타를 일으켜 모스크바에 탱크를 진입시키자 그 탱크 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쿠데타 3일천하 뒤 옐친은 연금됐던 휴양지에서 모스크바에 돌아온 고르비와 함께 전 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기자회견을 하던 중 고르비를 아랫사람 아니 잘못 저지른 하급자 다루듯 하였다.

고르비가 옐친이 건네준 쿠데타 연루자 명단의 공개를 주저하며 "다음에"라고 말하자 "당장 여기서 발표하세요"라고 윽박질렀다.

르몽드는 이를 전한 기사 말미에 "고르비는 그로기가 되었다"고 썼다.

결국 1991년 12월 초 옐친은 소련 해체의 혁명을 일으켰고 그달 12월25일 고르비가 대통령직에서 사임하도록 만들었다.

피니시 블로우엿다. 마치 등을 돌리고 달아나던 세계 헤비급 챔피언 조 프레이저의 뒤통수를 가격하여 붕 떠서 캔버스에 나가 떨어지게 한 도전자 조지 포어맨의 게임을 결정짓는 한 방을 연상시켰다.

옐친의 소련 공산당 탈당 1년5개월 채 안되어서 였다.

중국에는 호걸이 창업하고 선비가 수성한다는 말이 잇다.

공산 중국의 경우 창업자는 마오쩌둥으로 호걸형이었고 수성은 선비형의 저우언라이가 이룩했다.

천두슈는 전형적인 수성형 인물이다. 그런 책상물림이 창업의 대업 임무를 담당했으니 실패는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소련에서는 수성형의 고르비와 창업형의 옐친이 동시대에 출현하여 중차대한 역사적 임무를 맞게 되었으니 엘친의 창업이 무혈로 이루어지고 시대적 사명이 이미 끝난 구체제가 안락사한 것 같다.

공산 중국은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뀌어져야 하는 순간에 마오와 어금버금한 반골형의 창업형 인물 덩샤오핑이 우뚝하여 수성형의 경쟁자들을 제압하고 새로운 창업을 이룩하였기에 간판을 바꿔달지 않은 채 혁명을 성공시킨 것으로 보인다.

<스위프트-류야저우-버크왈드>

2019/07/12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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