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9/08/20 09:56



[今歷단상-8월3일] 홍콩과 싱가포르 그리고 대만

리덩후이 전 대만 총통은 1923년생으로 4년 뒤면 출생 100년을 맞는다.

그는 1895년 청일전쟁 패전에 따라 대만섬이 일본에 넘겨짐에 따라 일본제국 신민의 신분으로 태어났으며 일본제국 미래 지도층을 양성하기 위해 세워진 대학교 중 하나인 교토 제국대학을 졸업하고 태평양 전쟁 와중에서는 일본군 학병으로 참전했다.

1945년 일본 패망으로 대만섬이 중국에 귀속되면서 중화민국의 국민이 되었다. 그는 1945년 8월15일 이전까지 중국에 귀속되려는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았다. 아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리덩후이의 국적이 일본에서 중국으로 바뀐 데는 일본에 원자폭탄 두 발을 투하하여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얻어낸 미국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타의에 의한 것이었다는 말이다.

리덩후이는 미국 코넬대학에 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국공내전 패배로 대륙을 상실하고 대만섬에 쫓겨온 중화민국의 대만 섬에서 태어난 그는 다수이자 소수인 이중 신분이었다.

'내성인'으로 불리는 대만 출신인은 대만 인구의 83%라는 압도적 다수였다.

그러나 정치권력은 국공내전 패배로 대륙을 떠나 대만섬으로 옮겨온 대륙 출신 '외성인'이 독점했다.

절대적 다수를 소수가 지배하였기에 대만은 필연적으로 스파르타식 억압정치를 겪어야 했다.

리덩후이는 이런 와중에서도 총통까지 올랐으나 그는 대만은 중국의 일부가 결코 아니라는 정치적 신념을 한길 가슴 속에 묻어두고 있었다.

그의 '양국론'은 이런 정치 신념의 표현이었다.

이런 정치적 커밍아웃을 하고서 그는 대만섬이 독립된 대만공화국이 되어야 한다고 줄기차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추진하는 행동을 보여 왔다.

기독교도인 리덩후이는 '대만의 모세'가 되겠다며 '출중기(出中記)를 써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리덩후이가 국민당 분열의 정치 모략으로 탄생시킨 대만독립을 강령으로 한 민진당 정권의 첫 총통 천수이볜이 내건 '일변일국론‘은 '양국론'의 겉표지만 바꾼 것이다.

천수이볜도 내성인이다.

'양국론'과 '일변 일국론'을 관통하는 논리를 수립한 인물은 현재 총통 차이잉원이다.

차이 총통 역시 내성인이다.

이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대만섬이 싱가포르와 같은 독립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이 156년의 영국 식민시대를 경험한 홍콩을 불가분리한 중국의 일부로 동화시키기 위해 징검다리로 '하나의 국가 둘의 체제'라는 일국양제'를 고안해냈다.

중국은 현재 홍콩에서 심각한 위기 상황을 맞고 있으나 '일국양제'를 징검다리로 하여 '하나의 중국'으로 가려는 입장에는 추호도 흔들림이 없다.

또한 이러한 목표는 홍콩을 디딤돌 삼아 궁극적으로는 대만까지 하나의 중국 울안에 넣겠다는 것이다.

대만 민진당 세력은 홍콩에서 일국양제 실험의 파탄을 뜀틀로 삼아 싱가포르로 가자는 속셈이다.

그러나 민주체제를 지지하는 이들조차 '하나의 중국'에 대한 자세는 확고하다

20세기 말 유라시아 대륙 서편의 우랄산맥 동쪽의 소련에서는 분열이 시대의 흐름이었다. 그러나 그 서쪽은 통합으로 행진이 대세였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중국 대륙의 미래가 '하나'가 역사의 필연적 흐름인지 '둘 또는 다수'가 대세인지는 아직 아스라하다. 시계제로다.

<스위프트-류야저우-버크왈드>

2019/08/03 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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