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9/12/08 13:27



[今歷단상-8월13일] 두 도시 이야기 베이징과 난징

중국 역사상 통일 국가의 수도는 왕조의 명멸에 따라 바뀌어져 왔다.

그러던 것이 베이징과 난징 두 도시로 압축되어 경쟁하기 시작한 것은 원나라가 베이징을 수도로 정하면서 부터이다.

베이징은 원나라 세조(쿠빌라이 칸)이래 멸망 때까지 수도였다. 명나라도 3대 영락제 이후 천하의 주인 지위를 잃을 때까지 베이징을 수도로 하였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공화체제 국가인 중화민국이 들어선 이후 에도 수도는 바뀌지 않았다. 계속 수도는 베이징이었다.

공산 중국인 중화인민 공화국이건국한 1949년 베이징이 수도로 다시 지정되었으며 오늘까지 지속되고 잇다.

난징은 명나라를 세운 홍무제 주원장이 수도로 정한 이후 3 대 동안 수도였다. 장제스의 국민정부 중화민국이1929년 베이징에서 난징으로 천도했으나 명라라 때와 마찬 가지로 난징 통일 국가 수도 시대는 짧았다. 20년이었다.

베이징을 수도로 정한 원나라와 청나라는 몽골족과 만주족의 정복 왕조였다 그들은 필연적으로 국제주의적일 수밖에 없었으며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슬로건을 추종하였던 중화인민공화국 역시 원나라 청나라와 글로벌주의 차원에서 보면 '동색(同色)이다.

명나라를 세운 한족의 주원장은 몽골 제국의 지배에의 모든 것을 뿌리 뽑으려 한 국수주의 노선을 추구하였다.

중화민국 국민정부의 장제스는 이민족 정복 왕조 청나라의 수백 년 지배체제 잔재를 털어버리고 송-명대의 한족 중심의 전통 사상의 부활을 모색했다. 주원장과 마찬가지로 중화 국수주의였다.

두 도시의 수도 경쟁의 리턴 매치는 미래에 없을 것인가.

공산 중국의 중화인민공화국은 마오쩌둥 말기 주원장을 연상시키는 강력한 중화 민족주의 경향을 보이기는 하였으나 덩샤오핑 이후 시장 경제와 개혁 개방을 국시로 하면서 또 다른 국제주의를 지향했고 현재의 시진핑도 그 노선에서는 이탈하지 않고 있다.

통일 중국의 수도로서 지나치게 북쪽으로 치우쳐 있고 바다와 강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지리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글로벌주의의 수도 자리를 면면히 지켜 온 베이징의 우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스위프트-류야저우-버크왈드>

2019/08/13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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