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9/12/08 13:27



[今天歷史-8월13일]小泉 야스쿠니 참배, 北京 수도 지정

중국 '한 가정 한 자녀 정책' 발표, 중일전쟁 본격 게시, 고르바초프 스탈린 치하 희생자 전원 복권포고령, 베를린 장벽 설치, 한국 베트남 파병안 통과, 윤보선 제4대 대통령 취임, 북일 재일동포 북송협정 체결

2001년 8월 13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등 2차대전 A급 전범 14명의 위패가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를 참배하였다.

이해 4월 모리 요시로(森喜朗) 총리 후임을 선출하기 위한 자민당 총재 경선에서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전 총리를 압도적인 표차로 꺾고 승리한 고이즈미는 유세과정에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공약했다. 그의 공약은 야스쿠니를 적어도 매년 한 차례씩 참배할 것이며 패전 기념일(일본은 이를 '종전 기념일'로 부른다)인 8월 15일에도 참배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총리 취임한 첫해인 2001년 고이즈미는 그러나 한국과 중국 등의 반발을 고려, 8월 15일을 피해 8월 13일에 참배하고 방명록에 ‘내각 총리대신’으로 서명했다.

이후 고이즈미는 2005년까지 일자를 달리하여 매년 한 차례씩( 2002년 4월 21일, 2003년 1월 14일, 2004년 1월 1일, 2005년 10월) 야스쿠니를 참배하는 편법을 썼으나 한중의 강력한 반발을 피할 수 없었다. 특히 중국은 고이즈미의 야스쿠니 참배 이후 정례화 하였던 양국 정상의 상호 교환방문을 중단했다.

한국과 중국은 ‘일본의 총리가 전범의 위패 앞에 고개를 숙이는 것은 일본의 과거 전쟁 책임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한일, 한중 간의 외교관계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 갔던 고이즈미의 야스쿠니 참배는 그가 퇴임을 한 달 앞 둔 2006년 8월 15일 패전기념일에 참배함으로써 자신의 공약을 이행하면서 피날레를 장식했다.

고이즈미에 앞서 총리 신분으로 야스쿠니를 참배한 정치인은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와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가 있다.
이들은 각각 총리로 재직하던 1985년 8월 15일과 1996년 7월 29일에 야스쿠니를 참배했으나 한 차례 참배하는 데 그친 반면 고이즈미는 이를 연례화했다.

고이즈미의 후임 아베 신조는 고이즈미와 마찬가지로 우파성향임에도 불구, 총리 취임 이후 야스쿠니를 참배하지 않음으로써 중국과의 관계를 복원하였다.

아베 총리가 먼저중국 방문을 한 데 이어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답방함으로써 양국의 정상교류가 재개되었다.

원자바오 방일 이후 중국 국방부장이 9년 5개월 만에 일본을 방문하는 등 고위급 교류가 속속 복원되었다.

아베는 2012년 12월 총선에서 승리, 두 번째로 총리가 되었다. 그는 1차 총리 재임 때(2006.9~2007.9) 야스쿠니를 참배하지 못한 것을 통한으로 여긴다고 말해왔는데 2번째 총리 취임 후 처음으로 맞은 2013년 8월 15일 패전 기념일은 피했으나 결국 그해 12월 26일 야스쿠니를 참배했다. 이로 인해 일본의 한국 및 중국과의 관계는 다시 또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들었다.

아베 총리는 이후 야스쿠니를 직접 참배하지는 않았으나 그 대신 패전 기념일과 신년, 봄과 가을 제사 행사에 앞서 개인 돈으로 공물료를 헌납하는 어정쩡한 입장을 취해왔다.

하지만 아베내각의 극우 정치 성향의 각료들 중에서는 패전 기념일 또는 제례 행사 등에 맞추어 개인 자격을 내세우며 직접 참배하는 행동을 연속적으로 취해왔다.

아베와 이들 각료들은 내각 총리대신 내각 대신 등의 명의로 서명함으로써 '눈 가리고 아옹' 식의 행태를 보였다.

1949년 8월 13일 마오쩌둥(毛澤東)이 베이징(北京)을 수도로 정한다고 선포했다.

이로써 국민정부 시절 난징(南京)에 수도의 위치를 빼앗겼던 베이징은 다시 수도의 지위를 되찾게 되었다. 대륙석권을 앞두고 공산 지도부는 베이징, 난징과 우한(武漢)을 두고 검토한 끝에 베이징을 수도로 정했다고 한다.

[今天歷史-7월 6일] 중화민국 수도를 난징으로 결정

우한이 거론됐던 것은 중국의 중심지-베이징은 북쪽에 난징은 동쪽에 치우쳐 있다-라는 것 외에 마오의 고향인 후난(湖南)성과 가까웠던 때문으로 짐작된다. 우한은 후난성 북쪽의 후베이(湖北)성의 성도이다.

전국(戰國)시대 이래 지방 정권의 수도였던 베이징이 처음으로 통일국가의 수도가 된 것은 1263년 원나라가 이곳에 대도(大都)성을 건설하면서부터이다.

이후 베이징이 통일국가의 수도가 아니었던 기간은 명나라 1대 홍무제(洪武帝)부터 3대 영락제(永樂帝 )집권 초까지 동안과 국민정부 시절 두 차례뿐이다.

두 차례 모두 난징(南京)이 수도였다.

국민정부가 1929년 난징을 수도로 정한 이후 마오가 다시 수도로 정하기까지 베이징은 베이핑(北平)으로 불렸다.

베이징의 별칭으로는 옌칭(燕京)이 있는데 이는 이곳이 전국시대 연나라의 수도 계(薊)였기 때문이다.

연나라 이후 베이징은 지방 정권의 수도로, 또 북방의 이민족을 막는 거점도시로 기능해왔다.

수(隋)나라 때 고구려 원정군의 집결지였으며 당 현종(玄宗) 때에는 반란을 일으킨 안록산(安祿山)의 군사거점이었다.

중국 북부지역을 장악한 거란족의 요(遼)나라가 936년 국도로 삼았으며 뒤이어 여진족의 금나라가 이를 점령하여 천도한 뒤 중도성(中都城)이라 이름 짓고 2배로 확장했다.

몽골족의 원은 중도성의 북동부 쪽에 대도성을 세웠다. 훗날 베이징성의 내성 부분에 해당되는 지역이다. 몽골인은 칸발릭(Khan-balik : 커한청 可汗城)으로 불렀다고 한다.

명 태조 주원장(朱元璋)은 쫓겨난 몽골족을 방어하기 위한 군사거점으로 이곳을 활용하기 위해 넷째 아들 주체(朱棣, 본부인의 자식 서열로 넷째이며 이복형을 포함시키면 순서는 열 번째 뒤로 밀린다) 를 연왕(燕王)으로 봉하고 그 휘하에 대군을 주둔시켰다.

연왕은 주원장이 죽은 후 수도 난징으로 진격, 3년간의 전투 끝에 조카 건문제(建文帝)를 타도하고 명의 3대 황제로 즉위했다. 그는 1421년 자신의 거점으로 수도를 천도하고 베이징으로 개명했다. 현재 베이징시의 골격은 이 때 확립되었다.

2017년 말 중국 수도 베이징 상주인구는 2170만7000명으로 집계됐다.

베이징시 통계국이 발표한 관련 자료에 따르면 2017년에는 2000년 이래 베이징 상주인구가 처음으로 감소했다.

통계국 부국장 겸 대변인 팡장첸(龐江倩)은 기자회견에서 시내 상주인구의 감소가 인구발전 변동 추세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계 자료로는 2011년 베이징 상주인구는 전년 대비 56만7000명이 증대했지만 계속 줄다가 2016년에는 고작 2만4000명이 늘어났다.

팡 대변인은 중국 노동연령 인구가 해를 거듭할수록 줄고 있으며 전국 도시화 건설 추진으로 도시와 농촌 간, 지역 간 차이가 부단히 축소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한 팡 대변인은 베이징이 비수도 기능을 이전 분산하고 경제구조 고도화를 진행함에 따라 노동집약형 전통산업의 취업인구가 감소, 인구 총량 변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2017년 베이징 상주인구 가운데 자연증가 인구는 8만2000명으로 2016년에 비해 7000명 줄었다. 주된 요인은 작년 베이징 출생인구가 5000명 감소한 반면 사망 인구는
2000명 늘어난데 있다.

1979년 = 중국이 한 가구에 한명만 출산하도록 하는 산아 제한정책을 발표했다.
중국의 인구증가를억제햇던 한 자녀 정책은 2016년 1월을 기해 '한 가구 두 자녀 ' 정책으로 전환함으로써 폐지되었다.

1937년 = 상하이(上海) 주둔 일본군이 국민정부의 중국군에 대해 대규모 공격을 가함으로써 중일전쟁이 본격화 하였다. 중국은 이를 ‘팔일삼 전사(八一三 戰事)’라고 부른다.

세계사 속 오늘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스탈린 치하의 희생자 전원을 복권시키는 포고령을 발표했고(1990) 동독이 자국민 탈출을 막기 위해 베를린 장벽을 설치했다(1961).

우리나라 역사 속 오늘

베트남 파병안이 야당 불참 속에 가결되었고(1965), 윤보선이 제4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1960). 일본과 북한이 재일교포의 북송협정에 조인했다(1959).

2019/08/13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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