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9/10/15 08:18



[今歷단상-9월30일] 홍콩인들이 일어났다.

'홍콩인들이 일어났다.'

공산 중국 건국 70주년을 이틀 앞둔 9월29일 홍콩인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거리로 나와 반중 시위를 벌였다.

이는 70년 전 마오쩌둥이 베이징 천안문 망루에서 "중국인이 일어났다"고 선포한 말을 연상하게 한다.

이날은 홍콩 젊은이들이 행정장관 직선을 요구한 이른바 '우산혁명'을 시작한지 5주년을 맞는 날이었다.

또한 올 6월 중순 '범죄인 인도법(송환법)'가 촉발하여 지금까지 이어온 주말 시위 집회의 연장선임과 동시에 이틀 앞으로 박두한 중국 건국 70주년 베이징 기념행사를 겨냥한 대규모 반중 항의 시위의 예고편이기도 했다.

2014년 젊은 청년들이 주축이 된 홍콩의 '우산혁명' 시위는 1989년 베이징의 대학생이 중심이 된 천안문 민주화 시위처럼 실패로 끝이 났다.

그러나 송환법 반대에서 시작한 2019년 홍콩 시위는 행정장관 퇴진과 직선제등 5개항 요구를 내걸며 줄기차게 지속되고 있다.

시위대의 목소리는 남녀노소를 아우른 채 '민주 홍콩'을 외치는 합창으로 발전했다.

상당 기간 시위든 진압이든 비폭력적이었던 시위 양상은 폭력적이 되었고 경찰의 진압도 경고 발포를 포함, 과잉 양상으로 에스컬레이트했다.

중국의 국기 오성홍기가 불타고 바다에 던져지는 등 중국 중앙 정부의 상징에 대한 비난 훼손과 모욕 양태는 이제 빈번한 시위 퍼포먼스가 되었다.

'범죄인 인도법' 추진은 홍콩인에게 28년 뒤의 미래로 끌고 갔다. 홍콩인도 중국 당국이 범법한 것으로 간주되면 중국 본토에 송환되어 중국 법률에 따라 처벌 받는 길을 열어 놓는 것으로 보았다.

일국양제가 보장한 홍콩 50년 고도 자치의 핵심적 내용인 홍콩인의 시민적 자유와 법의 보호가 22년을 지난 이 시점에서 28년을 앞당겨 물거품이 될 것이라는 위기감을 불렀다.

홍콩인은 홍콩 특별행정구의 빅 브라더 시진핑의 정치 민주화 측면에서 퇴행적 행태에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먼 미래라 하여 일국양제 이후를 애써 의식의 먼 발치에 치워두었다.

그러나 홍콩 정부의 송환법 추진은 시진핑 집권 이후 쌓여만 가던 불안 심리의 화약고 뇌관을 건드린 것이었다.

28년 뒤의 미래가 오늘로 당겨질 수 있다는 공포감은 홍콩인 모두에게 자기 정체성을 성찰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시위 활동을 통해 그 대답은 '공산 중국 인민'이 아닌 '자유 민주 홍콩인'으로 모아졌다.

10월1일 중국이 70년 전의 '중국인이 일어섰다'를 기리는 그날 홍콩인은 28년 뒤의 미래도 오늘과 같아야 한다며 일어서려 하는 것이다.

29일 시위를 스케치한 기사 중 인상 깊었던 것은 휠체어를 탄 한 노인이 시위에 참여했다는 것이었다.

홍콩 주권 회복의 주역 덩샤오핑은 노환으로 시달리면서도 '휠체어를 타고서라도 중국으로 주권이 귀속된 홍콩땅을 밟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그러나 덩샤오핑은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29일 시위 현장의 그 노인 역시 28년 뒤의 홍콩땅을 디디고 있을 것 같지 않다.

하지만 그는 덩이 자신의 사후 후손에게 영국 식민지가 아닌 중국 땅으로 돌아온 홍콩을 물려주고자 한 간절한 마음과 같이 후대의 홍콩인도 자유와 민주를 누릴 수 있도록 휠체어를 타고 시위 현장에 나온 것일 게다.

<스위프트-류야저우-버크왈드>ㅣ

2019/09/30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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