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20/07/02 07:24



[今天歷史-6월19일]마오 당주석 선출, 문혁 피해자 平反

오스트리아 출신 황제 총살, 자유 여신상 뉴욕시에 인도, 쿠웨이트 , 미 의회 자국 내 노예제 폐지, 케네디 인종차별 금지 교서, 멕시코 독립, 한국 2대 국회 개원,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 방한

1945년 6월19일 중국공산당 7기 1중전회(중앙위원회 1차 전체회의)에서 마오쩌둥(毛澤東)이 중앙위원회 주석, 중앙정치국 주석, 중앙서기처 주석,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에 선출되었다.

7기 1중전회는 4월23일부터 6월11일까지 50일 동안 옌안(延安)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제7차 전국대표대회(7대; 전당대회)가 폐막된 지 8일 뒤에 개최되었다. 현재는 전당대회 폐막 후 곧바로 1중전회를 개최하여 차기 당지도부를 선출한다.

장정(長征) 초기인 1935년 1월 ‘ 쭌이(遵義)회의 ’에서 군권을 장악함으로써 사실상 당의 실권을 차지한 마오쩌둥은 10년 만에 명실상부하게 중국공산당의 최고 지도자가 된 것이다.

쭌이회의에서 당을 대표하는 총서기에는 장원톈(張聞天)이 선출되었다. 명(名)과 실(實)이 분리된 2원체제는 1938년 옌안에서 열린 6기 6중전회에서 총서기제를 폐지하고 7인 서기에 의한 집단지도체제로바뀌었다가 마침내 마오쩌둥의 1인체제로 전환된 것이다(1943년 마오가 일단 당 주석에 올랐으나 정식으로 선출된 때는 1945년으로 간주한다. 당주석제 폐지 과정도 설치 수순과 비슷한 역정을 밟았다.

1978년 12월 11기 3중전회에서 덩샤오핑이 권력을 장악함에 따라 화궈펑이 맡고 있는 당주석 직책은 유명무실해졌고 그나마도 1981년 11기 6중전회에서 덩샤오핑의 오른팔 후야오방에게 넘겨졌다.

당주석제가 정식 폐지된 것은 그로부터 1년 후인 1982년 12대에서다. 이후 다시 총서기가 당을 대표하게 되었으며 이는 현재까
지 이어지고 있다.)

7대는 1928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6대 이후 17년 만에 개최되었으며 코민테른을 앞세운 소련의 지시와 감독을 받지 않은 첫 전당대회라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모스크바에서 열린 6대는 물론 그 이전 당 대회도 모두 철저하게 코민테른의 지시와 감독을 받았다.

소련의 리모트 컨트롤 타워 역할을 수행한 코민테른은 각국 공산당 내부의 복잡한 사정과 나치 독일의 소련 침공(1941년 6월22일)에 따른 미국 등 서구 자본주의 국가와 연합전선 강화를 위해 1943년 6월10일 해체됐다.

동서 양 진영 간 냉전이 시작하면서 코민테른의 후신 격인 코민포름(공산당 정보국)이 1947년 9월 창설됐으나 소련 공산당 외에 유럽 공산당만이 참여 하였을 뿐이다. 그나마 독자 노선의 유고슬라비아는 곧바로 제명됐다.(1948년 6월)

중국공산당 7기 1중전회에서 선출된 지도부와 관련하여서는 기록이 엇갈린다.

중국의 공식기록은 당이 일상 업무를 관장하는 서기처의 서기로 毛澤東, 朱德, 劉少奇, 周恩來, 任弼時, 陳雲, 康生, 高崗, 彭眞, 董必武, 林祖涵, 張聞天, 彭德懷 등 13명이 선출되고 任弼時가 서기장, 부비서장에 李富春이 선출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기록은 당의 최고 의사 결정기구인 정치국의 위원으로 毛澤東, 朱德, 周恩來, 劉少奇, 林祖涵, 高崗, 董必武, 任弼時, 張聞天, 陳雲, 陳紹禹(王明) 등 11명이 선출되고 서기처 서기로는 毛澤東, 周恩來, 朱德, 劉少奇, 張聞天, 陳雲 등 6명이 선출되었다고 적고 있다.

1980년 6월19일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중공 중앙)는 문화대혁명 기간 중 신문 혹은 문건에 거명되어 비판받은 당원들에 대한 일률적인 재평가(平反)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문화대혁명이 발발한지 14년만이다.

세계사 속 오늘쿠웨이트가 62년간의 영국 보호령에서 벗어나 독립했다(1961). 이라크는 사담 후세인 정권이 지배하던 1990년 자국의 고유 영토라며 쿠웨이트를 침공, 무력 점령하였으나 다음해인 1991년 미국과 영국이 주축인 다국적군에 의해 이라크 군이 격퇴되어 독립을 회복할 수 있었다.

미 의회가 자국영토 내에서 노예제도를 폐지했고(1862),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인종차별 철폐에 관한 특별교서를 의회에 제출했다(1963). 101년 시차를 두고 흑백 인종차별에 관한 획기적인 정책을 주도한 당은 달랐다. 전자는 남북전쟁 중으로 공화당의 에이브러험 링컨 대통령이 주도한 것이고 후자는 민주당의 케네디 대통령이었다.

오스트리아 출신 멕시코 황제 페르디난도 요제프 막시밀리안 대공이 베니토 후아레스 대통령의 명령으로 총살형에 처해졌고(1867), 프랑스가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 제작해 기증한 ‘자유의 여신상’이 뉴욕시에 인도됐다(1885).

우리나라 역사 속 오늘

2대 국회(의장 신익희)가 개원됐다. 6.25 발발 6일 전이었다(1950).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현직 미국 국가원수로는 최초로 한국을 방문했다(1960). 아이젠하워는 일본의 기시 노부스케 총리 (현 아베 신조 총리의 외조부)가 밀어붙인 미일안보조약의 파동으로 일본 정정이 불안에 휩싸이자 일본 방문을 전격 취소하고 곧장 한국을 방문했다.

아이젠하워는 대통령 당선자 신분으로 한국전 당시 한국을 방문한 바 있었다. 아이젠하워 방문 당시 한국은 4.19 학생의거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했을 때로 그는 구심점을 잃고 있던 한국 국민으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2020/06/19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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