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20/09/21 01:05



[今天歷史-7월18일] 英, 윈난-버마루트 폐쇄, 淸英 아편협정

淸-英 아편협정 체결, 축음기 발명, 히틀러 나의 투쟁 발간, 프랑코 인민정부에 군사반란, 대한매일 창간, 미국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지지, 박홍 주사파 발언 파문

1940년 7월 18일 영국이 일본과 타협하여 윈난(雲南)-버마 루트를 폐쇄. 중국 국민정부 외교부가 영국에 항의했다.

이 시기는 일본이 1941년 12월7일 진주만을 기습, 2차대전에 참전하기 전이다. 이에 앞서 1940년 6월20일 = 프랑스의 베트남 식민정부가 일본의 요구를 받아들여 윈난(雲南)성과 베트남을 연결하는 철도, 즉 디엔위에(?越)선을 봉쇄하여 베트남과 중국 간 물자이동을 단절시켰다.

프랑스는 이해 6월5일 프랑스를 침공한 나치 독일군의 전격전에 채 2주일을 버티지 못하고 6월14일에 수도 파리가 점령됐다.

1차대전 때 베르덩 저지 전투의 영웅 페탱 원수를 수반으로 한 프랑스의 비시정부는 파리 함락 이틀뒤인 6월 16일 마지노선 방어를 포기하고 독일에 항복했다.

이런 사정이었기에 인도차이나의 프랑스 식민정부는 일본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나치 독일군에 프랑스가 점령됨으로써 유럽 대륙에서 영국섬에 고립된 영국은 유럽에서 나치 독일과 전쟁에 전념하기 위해 일본의 압력에 굴복한 것이다.

윈난-버마 루트는 윈난성 성도 쿤밍(昆明)과 버마(현 미얀마)를 잇는 길이 958km의 도로로 버마의 공로(公路)와 곧바로 연결되며 중국에서는 ‘뎬몐(?緬)공로(公路)’로 부른다.

또한 장제스를 지원하기 위한 루트라는 의미에서 ‘원장(援蔣)루트’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1937년 중일전쟁발발 이후 동부 해안 지역을 일본군에게 점령당한 중국에는 이 루트가 외국의 원조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이로부터 70년 뒤인 2010년 중국과 미얀마는 쿤밍에서 미얀마 서부 항구 차욱퓨 항으로 연결되는 가스-원유 수송관 건설을 시작했다.

이중 가스 수송관 7676km을 완공하여 2013년 10월부터 가스 수송을 시작했다. 일단 미얀마 해상의 천연 가스전에서 생산된 가스를 수송하고 있는데 연간 120억㎥의 가스를 수송할 것으로 보인다.

동일한 경로의 원유 수송관 역시 완공된다. 이는 '송유관 만리장성'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쿤밍에서 인도와 국경을 접하는 미얀마 서부 해상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70여년 전 대중 지원 루트와 현재의 루트는 전략적 개념에서 같다.

중국으로서는 인도양으로의 해상 출구선이다. 과거에는 미국과 영국 등 서방과 연결되는 숨통이었고 현재는 중동 지역과 아프리카 대륙으로 이어주는 또 다른 에너지 수송로의 기능을 겨냥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압도적인 해군력으로 통제하는 남중국해의 믈라카(말래카) 해협에 대한 중국의 원유와 가스 등 에너지 수송 의존도를 줄이는 효과를 갖는다.

대륙국가인 중국이 해양국가의 대륙 봉쇄 가능성을 대처하기 위한 예방책이라는 점에서 대상 국가가 일본에서 미국으로 바뀌었을 뿐 세계 전략적 개념은 같다.

1885 = 영국-청나라가 아편협정을 체결했다.

세계사 속 오늘

일제 도조(東條)내각이 태평양전쟁의 패색이 짙어짐에 따라 총사퇴했다(1944).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가 ‘나의 투쟁IMein Kamp)’1권을 발간했으며(1925), 스페인의 프랑코 장군이 마드리드의 인민전선 정부에 대한 무장정변을 선포했다(1936).

스페인 내전은 이해 3월 총선을 통해 인민전선 정부가 수립되면서 시작, 프랑코 장군의 반란군이 1939년 2월 마드리드에 입성하면서 끝났다. 프랑코 장군의 파시스트 체제는 그가 사망한 1975년까지 지속됏다.

‘오만과 편견’을 쓴 영국 작가 제인 오스틴이 사망했으며(1817), 미국의 발명왕 에디슨이 축음기로 인간의 목소리를 처음 녹음, 재생했다(1877).

제21회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루마니아 체조 요정 나디아 코마네치가 체조 부문서 사상 최초로 10점 만점을 기록했다(1976).

우리나라 역사 속 오늘

쿠바가 대한민국을 승인했다(1949), 1959년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주도한 사회주의 게릴라들에 의해 친미 종속 바티스타 정권이 붕괴하고서 한국과 단교하였던 쿠바는 2016년 윤병세 외무장관의 방문을 계기로 재수교를 모색하고 있다. 미국이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지지를 천명했다(1973).

박홍(朴弘) 서강대 총장이 주사파 관련 발언으로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1994).

영국인 배설(裵說)이 양기탁(梁起鐸) 등 민족인사의 도움을 받아 일간지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 창간했고(1904), 대한제국 이완용 내각이 친일 기관지 `대한신문(大韓新聞)'을 창간했다(1907).

김대중씨가 정계복귀 후 신당 창당을 선언했고(1995), 민주당이 박순천(朴順天)씨를 총재로 창당했다(1963).

조선 조정이 백성의 민원 해결을 위해 신문고를 설치했다(1401).

2020/07/18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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