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20/09/21 01:05



[今天歷史-7월24일] 中지도자 대상 과학강좌, 耶律楚材

국민당 정부 대만으로 철수, 흐루시초프-닉슨 부엌 논쟁, 러시아 옛루블화 통용 중단, 일본 오부치 게이조 총리 선출 ,아쿠다가와 자살, 살수대첩, 정미7조약, 이상 오감도 연재 시작, 이승만 초대 대통령 취임, 송시열 사사

1980년 7월24일 중난하이(中南海)에서 중국 최고지도자들을 대상으로 한 과학 강좌가 시작되었다.

이는 덩샤오핑(鄧小平)이 지도부에 실용주의 사고를 확립시키기 위해 취한 조치였다.

중국 최고지도자의 이러한 과학 중시 실용주의 노선은 현 지도부에 이공계통 인사가 다수를 차지하는 한 요인이 되었다.

1989년 이래 현재까지 중국 최고지도자에 오른 장쩌민, 후진타오 그리고 시진핑은 모두 이공계 출신이다.

10강좌로 구성된 강좌의 수강자는 중국공산당 정책의 집행을 담당하는 서기처와 국무원의 영도자, 즉 서기와 부장 등이었다.

첫 번째 강좌는 세계 과학기술 발전의 단계와 그것이 사회진보에 미친 영향을 다룬 ‘과학기술 발전의 개황’이었다. 강좌 담당 교수는 저명한 과학자 첸싼창(錢三强) 교수였다.

다음은 10개 강좌 제목이다.

1. 과학기술방전의 개황(科學技術發展的簡況);

2. 현대과학기술 특징과 발전추세(現代科學技術的特點和發展趨勢);

3. 현대과학기술과 대농업 발전(現代科學技術和大農業的發展);

4. 에너지 자원과학을 통해 본 에너지 위기의 활로(從能源科學看解決能源危機的出路);

5. 자원과 자원의 합리적 이용(資源和資源的合理利用);

6. 인구의 과학 통제(人口的科學控制);

7. 현대화와 환경보호(現代化和環境保護);

8. 컴퓨터와 새로운 과학기술혁명(計算機和新的科學技術革命);

9. 우주과학기술과 국방현대화(空間科學技術和國防現代化);

10. 현대화 건설과정에서의 수학의 작용(數學在現代化建設中的作用)

1982년 = 랴오청즈(廖承志) 전인대 부위원장이 장징궈(蔣經國) 대만 총통에게 편지를 보내 대만 방문의사를 밝혔다.

1190년 7월24일몽골제국 원(元)의 건설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야율초재(耶律楚材)가 태어났다. 야율초재는 거란족으로 요(遼)나라를 건국한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의 9세손이었으며 한(漢)문화에 정통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독서를 통해 천문, 지리, 역법, 수학, 의학, 유교, 불교, 도교 등 모든 분야에 정통했다.

야율초재는 금나라 조정에 출사하였는데 1215년 칭기즈칸이 중도(中都 : 현재 베이징)를 점령하였을 때 정치고문으로 발탁하였다.

그는 칭기즈칸이 죽은 뒤 오고타이 칸에 의해 중용되었고 몽골제국이 중국화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오고타이가 칸의 위에 오른 뒤 그의 형으로 하여금 신하의 예를 올리도록 함으로써 몽골 지배층 내부에 중국과 마찬가지의 군신유별(君臣有別)의 예법이 정착하도록 하였다.

몽골은 건국초기 군 조직만 있을 뿐 행정조직을 갖추지 못했는데 야율초재의 건의로 군조직과 민정조직이 분리되게 되었다.

또한 항복하지 않은 성에 대해 부녀자와 어린이를 제외하고는 몰살시키는 잔인한 보복관행을 완화하도록 했다.

그는 몽골제국의 장량(張良)이자 제갈량(諸葛亮)이었으며 ‘천하를 다스리는 장인(治天下匠)’라는 별칭을 들었다.

하지만 역대 중화제국 중 최 전성기의 몽골 제국의 설계자였지만 그는 중국인 사이에서 제갈공명이나 장량처럼 널리 알려진 존재가 아니다.

몽골제국이 한족이 아닌 이민족 몽골 족이 세운 나라이고 야율초재 역시 한족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나관중의 삼국지에서 제갈공명이 가장 유명하지만 위나라 조조의 한 책사가 더 뛰어나고 실질적인 면에서 후대역사에 더욱 큰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가 있다.

그 조조의 책사가 역할과 영향력에 비해 아주 저평가된 것은 그가 한족이 아닌 북방 민족 출신이었다는 지적이다.

필자가 베이징에 주재하던 때인 1995년 봄 이화원에서 그를 소개한 아주 조그마한 사당 같은 건물을 마주친 적이 있었다.

역시 이민족 정복왕조인 청나라가 세운 궁궐이기에 그렇게나마 야율초재를 기린 것 같다.

야율초재(耶律楚材) : 1190∼1244

몽골제국 초기 공신. 자는 진경(晉卿), 호는 잠연거사(湛然居士). 칭기즈칸에 발탁된 뒤 그의 서역원정에 종군했으며, 오고타이의 즉위에 공을 세워 중서령(中書令)에 중용되었다.

중국 북방의 금나라가 멸망한 뒤 화베이(華北)에 알맞은 정책을 실시했으며 군정과 민정을 분리하여 군관이 민정을 간섭하지 못하게 하였고, 세제를 정비하여 제국의 경제적 기초를 확립했으나 1241년 오고타이 칸이 죽은 뒤 좌천되었다.

시인·문인으로서도 뛰어났으며 문집 ‘잠연거사집’, 서역원정에 종군했을 때의 견문기 ‘서유록(西遊錄)’이 있다.

그의 아들 주(鑄)도 세조 쿠빌라이를 섬겨 고관이 되었고 특히 시인으로 유명했다. 시호는 문정(文正).


1949년 7월24일중국 국민당 정부가 국공내전 패배로 대만으로 철수했다.

대일전을 위해 2차 국공합작을 성사시킨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은 대일전 기간에도 줄곧 갈등을 빚었으며 몇 차례의 군사적 충돌까지 벌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뒤 양당은 일단 내전을 회피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했다.

미국의 중재로 양측은 1945년 10월10일 장제스(蔣介石)와 마오쩌둥(毛澤東) 간 ‘충칭(重慶)교섭’을 기초로 쌍십협정(雙十協定)을 발표하고 이를 근거로 1946년 1월에는 정전협정이 성립되었다.

그러나 국민당군의 공격으로 같은 해 7월 이후에 내전이 발발하였다. 내전 초기 국민당군은 공산당의 항일전 당시 근거지 옌안(延安)을 점령하는 등 우세를 보였으나 1947년 9월 공산당의 인민해방군이 총반격을 선언한 것을 전후하여 전세가 반전되었다.

1948년 9월부터 1949년 1월까지 랴오선(遼瀋)전투·화이하이(淮海)전투·핑진(平津)전투 등 3대전투에서 모두 패배함으로써 국민당 정부는 주력부대와 함께 대만으로 퇴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산당은 세력권 내에서 토지개혁을 실행해가며 국민의 지지를 획득하며 중국 대륙 장악에 성공하였고, 1949년 10월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었다.

세계사 속 오늘

소련 흐루시초프 공산당 서기장이 모스크바에서 열린 미국 무역박람회장에서 닉슨 미국 부통령과 '부엌 논쟁'을 벌였다(1959). 논쟁은 사회주의 경제의 미래에 대한 흐루시초프의 강한 자신감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34년 뒤인 바로 이날 소련을 승계한 러시아의 중앙은행은 옛루블화의 통용을전면 중단하는 화폐개혁 조치를 단행했다(1993). 이는 소련 사회주의 경제실패를 극복하려는 조치의 일환이었다.

일본 자민당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외상을 자민당 제 18대 총재로 선출, 총리가 되었다(1998). 일본 천재 소설가 아쿠다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가 도쿄(東京)에서 음독자살했다(1927). 향년 35세였다.

우리나라 역사 속 오늘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이 살수(薩水 : 청천강)에서 수나라 군대 대파했으며(612) 이승만 박사가 초대 대통령에 취임했다(1948).

한국 천재작가 이상(李箱)이 조선중앙일보에 오감도(烏瞰圖)를 연재하기 시작했다(1934).

일제의 조선 병탄(倂呑)을 위한 마지막 조치인 정미7조약(丁未7조약)이 조인됐다(1907).

정식 명칭이 한일신협약(韓日新協約)인 조약은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 이후 통감으로 와있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사택에서 이토와 이완용(李完用) 간에 체결됐다.

조약은 이토가 제시한 원안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으로 1905년에 외교권 빼앗은 일본에 국권을 모두 넘겨주는 내용으로 되어 있었다.

이 조약 각 조항 시행규칙으로 한국군대 해산, 사법권 위임, 일본인 차관(次官)의 채용, 경찰권 위임 등을 내용으로 하는 비밀조치서가 작성되었다.

그 결과 일본인에 의한 차관정치가 실현되고 대한제국은 단지 껍데기만 유지한 채 사실상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조약에 따른 군대해산 후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하여 무장 항일투쟁이 전개되었다.

강윤군, 조문기 등 독립운동가들이 친일집회 저지위해 부민관(府民館)에 폭탄을 투척했다(1945).

경향신문이 문화방송(MBC)에 흡수 통합됐다(1974).

조선 후기 주류 사상계를 이끌고 노론의 영수로 정국을 주도했던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사사됐다(1689). 1607년생으로 향년 82세였다.

2020/07/24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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